2015년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세계 죽음의 질 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80개국 중 18위를 차지했다. '죽음의 질 지수'는 임종 환자의 통증을 덜어 주고, 가족이 심리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2010년에는 32위였으니 상당히 오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죽음과 관련된 의료·사회 서비스나 배려의 질이 경제 발전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웰다잉(well-dying)법(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으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거부하고 임종 환자가 자기 의사에 따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이 웰다잉(존엄사)의 관건이다!
죽어가는 임종 환자에게 꼭 맞는 효율적인 치료나 정서적인 배려 문제는 우리 사회만 겪는 고충은 아니다. ‘죽음의 질 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유럽 국가들도 초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의료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독일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독일과 스위스, 유럽에서 존엄사와 연명치료, 완화의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이 책의 저자 지안 도메니코 보라시오는 완화의료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서비스망을 구축하기 위해 의사로서의 본업 외에 각종 학술 대회나 강연 등에 참석하고 스스로도 수많은 대중 강연을 했다. 이후 강연 참석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 책 《낯선 죽음(Uber das Sterben)》을 펴냈는데, 책은 1년여 만에 10쇄를 찍는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의사로서 실제로 활동하는 완화의료 현장을 바탕으로 호스피스나 완화의료 서비스의 현실적인 개선책은 물론 의대에서 완화의료 과목을 교육하는 문제, 웰다잉을 위한 명상 문제까지 세심하게 다룬 이 책은 지난해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하는 우리나라에 그야말로 반면교사이자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웰다잉을 희망하는 임종 단계의 환자나 가족들에게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임종 단계의 환자나 가족의 요구와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완화치료를 시행하는 것이다. 의사의 생각이나 치료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자신의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배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 가족과 의사 사이의 거리감 없는 소통이 중요하다.
또한 완화의료 주치의는 환자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 관심을 갖고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임종 단계에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소망을 이야기한다.
‘통증으로부터의 자유’와 ‘보호받는 느낌’이다.”
여기서 완화의료에는 협진 시스템이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완화치료는 전문의 혼자만의 치료(주로 통증 치료)가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사제나 승려 같은 영성 치료사, 자원봉사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협진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야 환자가 사회나 국가, 병원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 들 수 있고,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환자의 의식이 명료한 시점에 법에서 정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와 ‘건강 대리인’의 위임장 작성, 그리고 자신의 소망과 생각을 대리인(보통은 가족), 담당 의사와 상의하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임종 단계에서 자신의 소망이 실제로 존중받을 수 있는 최상의 준비라 할 것이다.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는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위급 상황에 처할 때 어떤 치료를 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하고 어떤 죽음을 맞을지를 선택하는 것이고, ‘건강 대리인’이란 환자가 판단력을 잃었을 때 환자의 평소 의향에 맞게 치료 등을 대신 결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전 준비가 이루어진다면 환자는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평안하게 누리며 임종을 맞이할 것이다.
실제로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은 실현될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고 싶은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다. 현명한 대비야말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처럼 자신만의 의미 있는 죽음을 맞는 지름길이다.
오, 주여, 각자에게 그만의 죽음을 허락하소서.
각자의 사랑과 의미, 고난이 담긴 삶을
마무리하는 열매로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누구나 소중한 가족에게 둘러싸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며 생을 마감하기를 소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례들처럼 실제로 우리의 현실은 대부분의 환자나 가족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병원의 연명치료에 의존하기 일쑤고, 환자들은 요양원이나 병원의 응급실 같은 곳에서 죽어간다. 이를 ‘품위 있는 죽음’, ‘존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저자의 현실적인 조언대로 환자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치료 의견이나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등을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가족들도 환자가 소생할 거라는 희망에 기대기보다는 최대한 고통 받지 않고 웃으면서 떠날 수 있도록 치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환자의 입장을 배려한 존엄한 죽음의 동행 과정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생을 웃으며 마감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오롯이 환자와 가족의 몫이다. 따라서 사회 제도적으로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의료계에서도 적절한 완화치료 시스템을 시급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는 물론 우리 가족이나 친지의 존엄한 죽음은 소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