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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부모들 크게보기

무너지는 부모들

딱 적당한 엄격함을 가져라
저자

레너드 색스

옮김

안진희

발행일

2018-09-19

면수

150*215

ISBN

296쪽

가격

979118501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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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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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부모의 권위가 아이를 망가뜨린다
‘친구 같은 부모’.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부모로서의 권위를 버리고 ‘친구 같은 부모’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다정함’과 ‘이해심’이 자녀를 양육하는 키워드가 되었고, ‘엄격함’이나 ‘훈육’ 같은 말은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취급받고 있다.
부모들은 독재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를 위해 아이에게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대신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고 만다. 이를 테면, 아이가 채소를 거부하고 그 대신 피자를 요구했을 때 순순히 굴복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가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해도 말이다. “먹기 싫으면 굶어.”라며 한 끼쯤 굶든 말든 내버려두는 일은 이 부모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다. 부모들에게서 아이들에게로 거대한 권력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이동과 함께 부모가 아이의 의견과 취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도 변화가 생겼다. 요즘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의 생각과 취향과 욕구가 부모의 생각과 취향과 욕구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아이가 결정하게 하자.”는 좋은 자녀 교육을 위한 공식이 되어 버렸다.
선의에서 비롯된 이러한 변화들이 과연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까?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며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인 레너드 색스 박사는 부모가 권위를 버리는 것은 아이들에게 대단히 유해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레너드 색스 박사는 25년간 진료실에서 많은 부모와 아이를 만나면서 9만번 이상의 진료를 행했고, 그동안 어떤 중대한 변화들이 일어났는지를 관찰했다. 즉, ‘무너지는 부모들’을 직접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는 저서 《무너지는 부모들》에서 부모가 권위를 버림으로써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권위를 포기한 부모가 만든 ‘무례함의 문화’
부모가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는 일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 여러 문제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문제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무너지는 부모들》에서 레너드 색스 박사가 지적하는, 부모가 자신의 권위를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례함의 문화’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스스럼없이 욕을 섞어 말하면서도 그것을 기분나빠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서 무례함을 보이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무례함의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부모나 교사를 무서워하지도 않을뿐더러 무례하다. 말대꾸는 예사이고 “신경 끄시지?”라든지 “엄마가 뭘 안다고 잔소리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이런 무례함은 1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서도 발견된다.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버릇이 없다’고 생각하고 걱정한다.
왜 이런 무례함의 문화가 생겼을까?
부모들이 권위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이가 부모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하는데, 레너드 색스 박사는 ‘아이는 부모와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첫 번째 임무가 아이에게 우리 사회의 ‘문화’를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이러한 ‘문화’를 가르쳤고 아이들의 ‘사회화’를 담당했다. 정정당당하라,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라, 잘못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같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행동 규칙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가 가장 크고도 중요한 이들 기관의 ‘덕목’이 되었고, 문화를 가르치는 일은 부모에게로 넘어왔다.
그렇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만 하는 지금 시대에, 정작 그 일을 해야 할 부모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이다. 현재 우리는 아이가 자기 부모의 의견보다 또래 친구들의 의견을 더 중시하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 아이는 더 이상 부모의 문화를 배우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린아이의 문화, 10대의 문화를 배우고 싶어 한다.
요컨대, 색스 박사는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우선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아이와 또래 친구 사이의 관계가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보다 우위에 서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대신 또래 친구들과 인터넷에 의존하여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양육할 수 없는 사람, 즉 또래에 의해서 양육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례함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은 이제 고전에서나 나오는 말이 되어 버렸다.
무례함의 문화 뿐만이 아니다. 레너드 색스 박사는 권위를 잃은 부모들로 인해 요즘 아이들은 ADHD 같은 정신 장애 질환들로 진단 받는 비율이 높아지고, 더 뚱뚱하고 덜 건강해졌으며 더 나약해졌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딱 적당한‘ 자녀 양육 방식은 무엇인가
《무너지는 부모들》에서 레너드 색스 박사는 발달 심리학자인 다이애나 바움린드 박사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무엇이 가장 적당한 자녀 양육 방식인지를 이야기한다.
바움린드 박사는 40여 년 간 부모가 어린 자녀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평가했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연구했다. 바움린드 박사는 부모들의 자녀 양육 방식을 크게 3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너무 엄격한 양육 방식’, ‘너무 부드러운 양육 방식’, ‘딱 적당한 양육 방식’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너무 엄격한’ 부모는 자녀에게 다정함이나 사랑을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이처럼 가혹한 부모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20년 후 본인 스스로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너무 엄격한’ 부모의 자녀는 성인이 된 후 이성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
‘너무 부드러운’ 부모는 보통 자녀에게 사랑과 애정을 잘 표현한다. 하지만 규칙을 시행하는 일에 취약하다. ‘너무 부드러운 부모’의 자녀는 성인이 된 후 알코올 남용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실질 소득에 상관없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데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딱 적당한’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면서도 공정하고 일관되게 규칙을 시행한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상황에 따라 규칙을 약간 조정하지만 절대 규칙을 깨지는 않는다.
40년 넘게 연구를 하면서 바움린드 박사는 ‘딱 적당한 양육 방식’이 가장 건강한 자녀 교육 방식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엄청나게 많이 모았다. ‘딱 적당한’ 부모의 자녀는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어떤 분야의 결과를 살펴보든 말이다. ‘딱 적당한’ 부모는 자녀에게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엄격하고 그와 동시에 사랑이 넘친다.
요즘의 부모들이 ‘딱 적당한 부모’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허용적인 부모’에 가깝고, 그들의 부모 세대가 ‘딱 적당한 부모’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권위 있는 부모’일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바움린드 박사는 ‘엄격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부모들은 ‘엄격함’과 ‘다정함’ 사이가 긴장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엄격하거나 다정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지 둘 다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움린드 박사의 연구는 이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박사가 발견한 ‘딱 적당한’ 부모들은 엄격한 동시에 다정했다.

자녀 교육 분야 최고 전문가가 제안하는 해결책
부모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반드시 냉정하고 엄격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아이와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걸음마기 아기뿐만 아니라 10대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정 안팎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임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주고서 메시지를 보내고, 게임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 자유 시간을 몽땅 다 쓰도록 내버려둔다면, 아이들은 점점 더 또래 집단과 미디어에 의존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부모에게는 그러한 도움을 받지 않고 말이다.
색스 박사는 어떻게 하면 부모가 권위를 다시 회복함으로써 아이를 도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가정의학과 의사와 심리학자로서 쌓은 25년 이상의 경험과, 세계 각지의 아이들, 부모들,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백 번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 부모들은 이 청사진을 이용하여 아이와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가는 세상 속에서 아이가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