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와 관련한 책은 수없이 많다. 이 책도 한국사 책이다.
이 책은 기존의 한국사 책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출간의 의의를 갖는다.
저자 신복룡 씨는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교수로서 한국 정치사를 전공해 왔다. 한국 정치사 연구의 첫 걸음이 우리역사 연구여야 함은 당연한 일. 1950년대 말 우연히 친구의 집에서 조우하게 된 이가 한국 현대사의 전설적인 인물인 박창화 옹이었는데 박옹은 일본 궁내부 도서관의 촉탁으로 10여 년 동안 동경에서 생활하면서 일본이 약탈해 간 자료를 읽으며 식민지 사학으로 왜곡된 역사의 이면을 소상하게 밝혔던 인물이다. 박옹은 1999년에 사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화랑세기花郞世紀』의 원元 소장자가 였다.
그에게서 강렬한 영향을 받으며 신복룡 교수는 제도권 사학과 기성 사학의 오만과 아집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한국사학사를 멍들게 한 것이 일차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지사학이었지만, 지금의 싯점에서 더 무서운 것은 내부식민지사학으로 우리의 역사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또 삼국시대를 조명하면서 신라 중심으로만 보려는 시각에 동의하지 못했으며, 왜 발해를 가르치지 않는지, 왜 백제는 저주받은 땅처럼 기술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교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없이 역사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이 묘청妙淸이든, 신숙주申叔舟든, 김성일金誠一이든, 원균元均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변론을 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 믿었고, 저들을 옹변擁辯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그에게 힘든 싸움이었다.
이 모두는 결국 \'잘못 배운 한국사\'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잘못 배운 한국사\'를 교수의 처지에서 가르치기가 더 어려워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 갈등 끝에 쓰기 시작한 책이 이 {한국사 새로 보기}이다.
이 책에는 예민한 대목들이 많다. \'한국인은 단일혈통이 아니다\' \'최만리는 한글창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명성황후의 초상은 없다 \' \'전봉준은 동학교도도 접주도 아니었다\' \'기미년 3월 1일에 있었던 일\' 등의 대목이 바로 그러하다.
이 글들은 동아일보에 \"\"신복룡의 한국사 새로 보기\"\" 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어 우리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았으나, 이런 신교수의 역사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나 독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은 단호하며 구체적인 전거를 들어 다만 학자로서 사실만을 말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사학계에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풍토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 학계의 현실이고 보면 이 노 교수의 주장은 매우 용기있고 신선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부분이, 사실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책이 바로 이 {한국사 새로 보기}이다.
이 책에는 신문사와의 입장 차이로 게재되지 못했던 10편을 추가 수록하였고 연재시 반론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도 함께 실려 있다.
신복룡
건국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79-현재)
한국정치학회 이사 감사 역임(80-현재)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상임이사(83-현재)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찬위원(94-현재)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건국대학교 대학원장(2000-2001)
한국인은 단일 혈통이 아니다 / 서낭당은 원시 석전 시대의 병참 기지였다 / 풍수지리설의 신비 /
화랑은 모계 사회의 궁남들이었다 / 의자왕과 3천 궁녀의 허구 / 삼국 통일은 허구이다 /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다 / 빗나간 신라중심사와 약소 민족의 논리 /
훈요십조 제8조 호남 기피에 얽힌 비밀 / 묘청은 반역자가 아니다 /
최만리는 한글 창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 성삼문과 신숙주 /
조광조는 편집된 이상주의자 / 임진왜란과 김성일의 책임 / 이순신과 원균 /
환곡과 장리쌀 / 당쟁은 식민지사학의 희생양 / 광해군을 위한 변명 /
김옥균의 생애 / 전봉준은 동학교도도, 접주도 아니었다 / 대원군과 개혁 정치 /
명성황후의 초상은 없다 / 기미년 3월 1일에 있었던 일 / 망국의 책임을 묻지 않는 역사학 /
미국은 당초 4대국 분할을 획책했다 / 이승만과 김구 / 김일성의 진위 논쟁 /
두계학파와 실증주의 사학의 허구 / 오역의 역사 /기독교의 수용과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