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우리를 만든 한국 철학
“저 보리수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와 보아라.” “여기 따왔습니다.”
“그것을 쪼개라.” “예, 쪼겠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씨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쪼개 보아라.” “쪼겠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총명한 아들아, 네가 볼 수 없는 이 미세한 것, 그 미세함으로 이루어진 이 큰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아라.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있음을 믿어라.”
한국 철학이란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한국 철학은 어떤 의미인가? 고대 인도 철학서 우파니샤드에서 진리를 찾는 아들과 그 아들에게 보리수나무의 씨앗으로 진리를 설명하려는 아버지의 대화는 이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지금의 우리가 한국 철학을 배우는 것이란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거슬러 보이지 않는 생명의 정수를 찾는 일과 다름없다. 왜 그럴까?
한국 철학은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이 몸담고 살아온 자연 조건과 사회 상황에서의 경험들을 추상화하고 체계화해 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과 세계에 대한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독자적인 사유 체계를 만들거나 외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사상으로 다듬어 갔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 민족이 만들어 낸 보편적 사유 체계가 바로 한국의 철학 사상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철학’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첫 번째는 한국 철학이 우리 민족의 삶의 역사와 함께 한 우리 정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생각의 덩어리인 사상은 삶과 무관할 수 없고, 잘 짜여진 사상의 그물인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사상이 나오게 된 삶의 배경을 되짚는 작업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한국 철학을 아는 것은 우리 민족의 삶과 거기서 태어난 사상을 동시에 알게 되는 일이다. 두 번째는 한국 철학이 우리 정신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기에 현재의 나를 알려주고 앞으로의 나를 계획해 보도록 하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세계 속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그 모든 질문의 답을 한국 철학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철학은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현대인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필수 과목인 셈이다.
■ 우리 정신의 지도를 새롭게 그린 《한국 철학 스케치》
한국 철학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제 한국 철학을 제대로 아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철학 스케치》는 한국 철학을 알기 위한 살아있는 나침반과 지도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먼저 이 책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한국 철학의 핵심 사상이 형성되고 발전해 온 과정을 통사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선 ‘우리 문화 모든 것의 싹’인 단군 신화를 우리의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어서 유교, 불교, 도교가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생성되고 성장한 과정을 차례로 보여 준다. 삼국 시대가 유교, 불교, 도교가 각각 수용된 시기라면, 고려 시대는 유교에 비해 불교와 도교의 힘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 특징이다. 도교는 고려 창건 때부터 도참사상으로 자리 잡았고 곳곳에 도교의 신을 모시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전들이 있었을 만큼 그 중요도가 컸다. 불교는 의천과 지눌이 신라 시대 원효의 합침사상을 발전시켜 여러 분파로 갈라진 불교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고려가 도교와 불교의 시대라면 조선은 유교 국가였다. 고려 말에 송나라로부터 들어온 성리학이 조선 건국 이후 민생 교육과 통치의 수단으로 쓰이는 한편,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으로 발전되면서 성리학은 학문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화담 서경덕과 회재 이언적과 같은 성리학의 대문호들이 조선 시대에 배출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은 사상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성리학의 자리는 실학으로 교체되었다. 조선이 민생 안정과 외세 대항이라는 현실 문제에 부딪치자 학문의 실리적 성격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고, 이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학문으로 실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근대에 이으러 실학과 성리학은 각각 애국계몽사상과 위정척사사상으로 이어졌고, 유교?불교?도교의 이론을 종합한 동학사상 또한 근대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한국 철학은 단군 신화의 고신도를 시작으로 유교, 불교, 도교가 세 축을 이루어 발전한 우리 사상의 총체다. 《한국철학 스케치》는 이와 같은 사상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 철학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고 핵심 사상의 유기적 흐름을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한다.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 철학에 대한 책들은 한국 철학 사상을 단편적이고 분절되게 소개해서 독자들이 우리 사상의 핵심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인물 혹은 사상의 단면을 한국 철학 전부로 이해하도록 하는 데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하나의 사상이나 그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각각의 사상이 어떠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고 소멸했는지 그 연결 고리를 찾는 일에 집중했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상을 균형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철학 스케치》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철학 스케치》의 또 다른 장점은 어려운 것을 쉽게, 재미없는 것을 재미있게 변화시킴으로써 내용과 형식에 모두 충실했다는 점이다. 이 책이 결코 짧지 않은 우리 사상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만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룰 경우 각 시대와 사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권위 있는 여덟 명의 필자들이 수차례에 걸친 토론과 세미나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절충한 뒤에 각각 자신의 주 전공 분야를 나누어 서술했다. 이로써 이 책은 전문성과 통일성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살려냈다.
여기에 청소년 이상의 일반인들이 이 책의 독자라는 것을 고려해 딱딱하고 전문적인 서술에서 과감히 벗어나 쉽고 친근한 이야기식의 서술 방식을 택했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어는 원 뜻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썼다. 또한 한국 철학 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도표로 보는 한국 철학의 흐름’과 ‘한국 철학 여행의 길잡이’를 실었다. 이와 함께 글의 흐름과 내용에 맞는 그림과 사진 자료를 덧붙여서 재미와 흥미를 더했다. 쉬운 서술과 흥미로운 도판으로 이루어진 《한국철학 스케치》는 딱딱하고 지루한 철학, 진부하고 재미없는 한국 철학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릴 흥미롭고 친절한 한국 철학의 길잡이인 것이다.
■《한국 철학 스케치》-오늘의 나를 찾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가는 진정한 힘!
글로 어떻게 표현하며 말로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영원하고도 끝이 없는 큰 도를
꿈결엔가 생시엔가 깨달았도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동학사상을 깨달았을 때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영원하고도 끝이 없기에 글로도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큰 도는, 과거의 역사로 배우고 있지만 현재와 미래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질 한국 철학의 속성과 같다. 한국 철학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것으로서 정체되고 고여 있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바라보고 관찰하는 대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한국 철학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재의 우리가 또 미래의 우리 후손이 앞으로의 한국 철학을 만들어 가는 진정한 주체다. 이때 우리가 올곧은 사상을 갖을 수 있도록 정확하고 균형 잡힌 판단의 잣대가 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한국 철학인 것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우리의 옛 조상이 지금까지 쌓은 우리 정신의 사유 체계인 한국 철학이 미세한 먼지 같은 입자들이 모여 보리수나무로 자란 결과라 한다면, 《한국철학 스케치》로 한국 철학을 배우는 일은 보리수나무 열매에서 씨앗을 찾고 씨앗을 쪼개 먼지와 같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철학 스케치》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나를 찾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을 것이다.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한국 철학사상연구회는 철학 연구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이를 확산, 심화시킴으로써 한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1989년 8월에 창립되었다. 연구 활동을 위해 서양철학부와 동양철학부 산하에 여러 연구 모임을 두고 연구 발표회와 학술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열며, 기관지〈시대와 철학〉그리고 여러 권의 학술 저작물과 대중 교양서를 펴내고 있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
권인호 대진대 교수
이종란 동현초등학교 교사
이현구 가톨릭대 강사
김홍경 뉴욕주립대 교수
이철승 성균관대 연구교수
김형찬 고려대 교수
박정심 부산대 교수
《한국 철학 스케치》를 펴내며
도표로 보는 한국 철학의 흐름
한국 철학 여행의 길잡이
1부_원시 시대와 고대의 철학 이야기
우리 철학의 시작 |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역할
고대사상의 발자취 | 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사상
2부_불교 철학의 한국적 전통
불교는 언제 어떻게 들어왔을까 | 한국 불교의 으뜸 - 원효
고려 시대의 불교 | 조계종을 다시 일으킨 지눌 | 어둠의 시절 - 조선의 불교
3부_성리학의 수용과 전개
성리학의 등장 배경 | 개혁 세력이 성리학을 받아들이다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 과정 | 조선 초기 성리학의 전개
4부_성리학을 꽃피운 철학자들
송도의 자랑 - 화담 서경덕 | 성리학을 뿌리 내린 철학자 - 회재 이언적
도덕 이상주의 철학자 - 퇴계 이황 | 현실 참여의 철학자 - 율곡 이이
5부_성리학의 한계와 그에 대한 도전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철학 사상의 대두 | 조식과 정인홍의 실천적 철학 사상
예학 논쟁 | 양명학 이야기 | 성리학을 반대한 철학자와 옹호한 철학자의 싸움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의 본성은 같은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