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진짜 자신을 찾는 또 다른 여행이죠”
도시 퇴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숨은 고수들의 살아 있는 시골 이야기
? 인생의 갈림길에 선 두 중년, 시골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다
시골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매일 만원 버스와 지하철,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출퇴근하는 바쁜 현대인에게 한편으로는 언젠간 이 무미건조한 삶의 끝에서 인생의 차분한 종착역으로 점찍은 이상적 공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삶이 힘들 때마다 푸념처럼 마음속으로만 되뇌는 정신적 안식처이기도 하다. 늘 꿈꾸지만 지금은 아닌 언젠가, 혹은 매일 밤 베개맡에서 꿈으로만 실현되는 개인의 작은 유토피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진 시간과 공간이 ‘시골’의 진짜 이름일까? 실체는 없고 이름만 있는, 가상의 시공간.
사십 대에 들어서 지금까지의 도시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과연 이렇게 계속 가는 게 맞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두 중년의 인물이 있다. 모두 가정을 꾸려 토끼 같은 자식들이 하루하루 커 가는 걸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도시에 사는 평범한 중년 남성들. 한 사람은 잘나가는 대기업을 다니며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과 큰일이 없다면 평탄한 승진의 단계를 차근히 밟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갑자기 멈추고 창밖을 보다 차문을 열고 나와 가만히 하늘을 보았다. 과연 이 길로 계속 가는 것이 맞는가. 가슴 한구석의 씁쓸함과 의구심은 액셀러레이터 대신 브레이크에 발을 얹게 한다. 또 다른 한 사람. 남 밑에서 일하는 것, 주문받은 일감을 밤새워 마무리해 납품하는 일을 하는 내내 과연 내 삶은,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디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열심히 일은 하고 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틈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단란한 휴식의 시간도 없는 모조리 ‘남’을 위한 이 삶이 맞는 것일까. 질문은 커다란 안개가 되어 그를 뒤덮는다.
그런 방황의 틈 속에서 둘은 바람도 쐴 겸 시골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한 귀촌인을 만났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 제일 건강하고 직업적으로도 한창일 때 아내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자금도 없이 내려와 산책길에 주워 온 돌을 하나하나 쌓아 가며 집을 짓고 삶을 꾸린 한 남자. 어느새 20년 시골지기가 된 그 앞에서 방황하던 두 중년은 복잡한 마음을 접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시골의 부름에 집중한다.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의 시골.
? 시골의 인생 고수들과 나눈 대화
이 책의 시작은 이렇게 우연히, 아주 작게 이뤄졌다. 소박한 삶이지만 내면의 풍성함으로 가득 찬 멋진 기운은 자연스레, 소신껏 시골에서 제2의 인생을 가꿔 나가는 귀촌인들과의 만남으로 향하게 했다. 두 사람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의 소박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앎을 넘은 지혜를, 거짓 자부심이 아닌 진짜 소신과 철학을, 담백하지만 명쾌한 통찰을, 매섭지만 따뜻한 울림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 결과물이 《갈림길에 듣는 시골 수업》. 이 책에 소개된 여덟 분은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도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고 싶게 만드는 ‘성공한’ 귀촌인이다. 그러나 성공이란 단어를 오해하지 말자. 흔히 생각하는 축적된 재산, 높인 쌓인 명성, 알아주는 지위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이 가진 그대로에 자족할 줄 아는 힘,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 나가는 지혜, 전진과 속도 대신 주위를 둘러보고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진정한 여유를 가진 자유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내면의 풍성함. 두 중년은 이들을 인터뷰하고 내용을 기록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자신들처럼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으면서 한 번쯤은 귀촌을 꿈꾼 이들에게 그들이 얻은 값진 교훈을 전한다는 심정으로.
? 스텝바이스텝 귀촌 가이드
이 책은 귀촌을, 시골살이를 권유하는 책이다. 귀촌 선배들의 말씀을 빌려 여행 가듯 가볍게 시골로 나서 보라고,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도시에서 숨은 재능이 시골에서는 환하게 빛날 수 있다고. 그런데 석연치 않다. 과연 귀촌이 말처럼 쉬울까.
귀촌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라고 한다. 우리 가족 밥 굶지 않고 시골이라는 타향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지가 귀촌을 결심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은 이런 현실적인 고민에 단계별 귀촌 접근법을 나열함으로써 귀중한 답을 주고 있다. 가장 처음 해야 하는 건 모색. 시골이 과연 살 만한 곳인지, 지금까지의 내 삶의 패턴 및 재능을 가지고 살아질 수 있는 곳인지를 탐색해야 할 텐데, 이에 대해서는 전북 완주에서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나가며 대장장이로서 꿈을 키워 나가는 박용범 씨가 대답한다. 그는 뚜렷한 목표나 계획 없이 시골에 내려와 2~3년간 노는 듯 쉬는 듯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시골을 몸소 겪어 알게 되고 그곳에서 전환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생 후반에 대장장이라는 새로운 꿈을 갖고 도전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것은 “옆집에 마실 가듯 시골에 가서 살아 보라”는 것이다. 도시에서 이론으로 시골을 공부하려 하지 말고 시골에서 부대끼며 직접 살아 나가는 것이 귀촌에 다가가는 실제적인 한걸음이라 말한다. 모색의 시간을 겪는 동안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 시골이 가진 장점이라는 것을 체험하면서 말이다.
이런 모색의 시간을 갖은 다음에는 자신에게 있는 재능을 알아가고 시골에서 이를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여기에는 건설회사 영업부서에서 일하다가 시골에 내려가 그간 쌓아 온 영업 감각을 유통 조합을 하면서 제대로 발휘한 충북 단양의 박형채 씨, 본업을 던지고 취미로 해 왔던 목공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이제는 ‘나무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시골의 삶을 즐기고 있는 강원 원주의 용형준?임주현 부부, 장 담그기라는 어쩌면 일상적일 수 있는 일에 대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장 사업을 전통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일구어 나가는 경남 밀양의 송남이 씨가 해답이 된다. 이들 모두 자신의 재능과 시골이 가진 장점을 조화롭게 맞추어 나가며 새 삶을 성공적으로 꾸려 가고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참았던 질문이 다시 튀어나올 것이다. 정말 우리 식구 손가락 빨지 않고 먹고살 수 있어요? 있다! 《할머니 탐구 생활》의 저자 정청라 씨는 시골은 절대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딱 1년만 살아 보자’라고 홀로 내려왔던 시골인데, 그곳에서 시골의 생명력과 시골 사람들의 지혜를 배워 나가며 지금은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시골이 어떠한 오염도 없는 진공 상태의 유토피아라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의연히 받아들이면서 벌이를 늘리기보다 생명을 가꾸고 소박함을 늘려 나가는 방식으로 마음도 생활도 풍요롭게 가꾼 결과다. 자연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최대한 단순하게 사는 것이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런데 먹고살면 다인가, 아이들 교육은? 시골 텃세는? 잠잘 집은? 너무 골치 아프니 이쯤에서 귀촌 결심을 접겠다고? 아직 이르다. 이 또한 지혜를 빌릴 수 있다. 경남 합천의 김형태?박미영 부부는 자녀 셋을 모두 홈스쿨로 키워 냈다. 어느새 성인이 다 되어 자신들의 밥벌이를 해 나갈 정도의 독립심과 소신 있는 철학까지 갖춘 세 자녀는 시골에서 자신들을 훌륭하게 키워 주신 부모를 존경하며 앞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그들처럼 홈스쿨로 양육하겠다고 말한다. 시골이건 도시건 가능한 것이 홈스쿨이지만 부부는 시골이라는 터전이 공부의 범위를 넓히고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 게 하는 좋은 자양분임을 확신한다.
굳게 닫힌 철문과 높은 벽으로 구분되는 도시의 동네 풍경과 완연히 다른 시골이라는 공동체. 이 특수한 환경은 귀촌을 꿈꾸지만 막상 결심하는 데 큰 장벽이 되곤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견고한 벽도 ‘진심’이라는 큰 힘을 막아 낼 수는 없는 법. 강원 원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명진 씨는 시골에 내려온 지 5년밖에 되지 않아 마을 이장이 되었을 정도로 빠르게 시골에 적응했다. 그러나 말 못할 속앓이가 많았는데, 결국 나와 이웃, 마을 전체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돈도 아니요 무리한 노력도 아닌 자연스럽고 진심 어린 마음에 있음을 강조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실패하지 않겠다는 도시적 목표의식을 버린다면 시골 또한 사람살이의 자연스러운 한 곳임을 이해하며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수 있다고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내 한 몸 뉘일 곳은 있는가. 전북 순창에서 흙건축연구소 살림을 운영하며 집짓기와 고쳐 짓기를 가르치고 있는 김석균?이민선 부부는 큰 부담이 되는 집을 짓는 것 대신 ‘시골집을 잘 고르고 고른 집을 잘 고치는 법’이 먼저라고 말한다. 시골에 산다는 건 단순히 사는 거처를 바꾸는 것 이외에 시골의 삶을 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니 도시 삶의 습성대로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 기존의 시골집의 골격에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현명한 자세라고 한다. 경제적 이득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알려 주는 시골집을 고르고 고치고 또 여력이 되어 짓는 방법에 대한 책 속에 담긴 노하우는 실제 바로 실행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다.
? 귀촌을 넘어 삶의 지혜를 배우는 넉넉한 시골 수업
이들 여덟 분의 귀촌 선배의 가르침은 절실하게 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된다. 직장과 도시에서 쌓은 재능을 살려 시골에서 행복하게 먹고살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림길에서 이들을 만난 두 엮은이는 이들의 가르침이 역설적이게도 귀촌은 공간이 아닌 ‘마음’의 문제라고 한다. 아무리 굳은 각오로 내려가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시골에서도 절절매며 각박하게 살게 된다는 것을 이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들으며 새삼 깨달았다. 마음을 다르게 갖는다면 시골이 아니어도 도시에서도 맑고 향기롭게 살 수 있음을 말이다. 진정한 시골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마음속 공간인 것이다.
이 책은 ‘도시 퇴사’를 꿈꾸지만 당장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공간을 바꿀 수는 없어도 마음을 바꿀 수는 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을 바꾸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를 ‘살기 딱 좋은 곳’으로 가꿔 나갈 수 있다. 도시의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도시에서 찾기 어려운 가치들-소박함, 단순함, 창조성, 이웃 간의 정, 자연 친화적 자녀 교육 등-을 도시 안에서도 구현할 수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위대하고 단호한 결단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며, 때로는 걸어감으로써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길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 주고 싶을 따름이다.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 어느 길을 선택하건 삶은 길섶마다 갖는 선물을 감추고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한층 더 여유롭고 그윽해질 것이다. 부디 이 책이 당신에게 다른 이들의 삶을 먼발치서 바라보는 창문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삶 속으로 훌쩍 뛰어드는 문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