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탈출할 선명한 로드맵
개미처럼 일만 해도 베짱이처럼 노래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 ‘헬조선’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에 도착한,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 한 통
집단적 조직, 오랜 기간의 꾸준한 실천,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교육, 노동시간의 단축. 북유럽 사회의 역사적 경험이 전하는 자본주의 문제 해결의 이들 요인은 헬조선의 해법을 어디에서부터 찾기 시작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그것을 실천에 옮길 우리의 의지가 아닐까? 마르크스가 찾았던 해법, 노동해방은 어느 날 갑자기 먼동이 트듯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메시아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스파르타쿠스처럼 해방되어야 할 사람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행청소년 12번으로 출간된 《수취인: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는 마르크스 《자본》의 정통 연구자인 동아대학교 강신준 교수가 역사적 경로를 따라 자본주의 문제의 원인과 위기의 해법을 청소년 독자에게 맞는 쉬운 설명으로 살펴 가는 책이다.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네 단계의 경제제도를 순차적으로 짚어 가면서 지금의 경제가 왜 병들었고,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차근히 알아보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해법을 제시하며 쓴 방법이다. 이제 《수취인: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를 펼치고 시간의 길을 따라 ‘헬조선’의 원인과 처방을 찾아가 보자.
* 헬조선의 원인과 해법, 과연 어디에?
‘헬조선!’ 우리 사회의 경제 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단어다. 이 단어 외에도 비슷한 단어들이 우리 사회에는 넘쳐 난다. ‘취업 깡패’, ‘열정 페이’, ‘N포 세대’, ‘비정규 노동’, ‘잉여’, ‘투명인간’, ‘미생’, ‘흙수저’, ‘갑질’ 등등,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삶에 어느 것 하나 희망을 주지 못하는 단어들이다. 과연 이렇게 공부를 해서 대학에 합격하면 장밋빛 미래는 열려 있을까, 퇴직하신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는 없고 학자금 대출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취업은 보장될까, 겨우 취직을 한다 해도 전셋값 대란이라는 요즘 상황에 결혼은 하고 월세로라도 집을 얻어 살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하고 있으면 수학 문제 풀 의욕마저 꺾어는 것이 요즘 청소년들의 하루하루다. 결국 문제는 먹고사는 것! 우리는 세대를 떠나 모두가 먹고살 걱정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먹고사는 것은 경제를 의미하고,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은 경제가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아픈 경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며 치유의 길을 알려 주는 경제학이 왜 지금은 작동을 멈춘 것처럼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로부터 출발한다. 원래 경제학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임금을 주는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자본가 경제학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 입장에서 설명하는 노동자 경제학이다. 흔히 경제학이라고 칭할 때 주로 생각하는 것이 주류 자본가 경제학이다. 임금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경제 문제를 풀고 있는 주류 경제학이, 취업을 하면 모두가 노동자가 되는 다수의 삶과 경제를 진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동자가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푸는 해법을 자본가의 입장에서 경제를 논하는 자본가 경제학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수취인: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는 헬조선의 원인과 해법을 노동자 경제학에서 찾고 있다. 그것의 대표 이론이 마르크스의 《자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원인과 결과를 두 가지 방식으로 정리하는데, 하나는 구조적(분석적)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간적(역사적) 방식이다. 아픈 상태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가치, 가격, 자본, 재생산, 축적, 이윤, 이자, 지대 등-을 찾고 이들 요소 사이의 관련을 추적하여 아픈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전자의 방식이고,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제로 이어지는 경제제도 전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피며 병의 원인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후자의 방식이다. 이 책은 둘 중 후자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전자의 방식에 따라 쓴 책은 동일 필자의 다른 책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이다).
* 역사적 흐름에 따라 자본주의의 원인과 결과를 톺아보다
경제제도의 출발, 혹은 인류의 시작은 원시공산제이다. 최초의 인류는 생산력에서 집단성을 출발점으로 삼았고, 생산관계도 집단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생산된 결과물 또한 생산력을 이룬 집단의 공동소유였다. 공동으로 생산해서 공동으로 분배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사회, 이런 사회제도를 원시공산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집단적 생산 활동이 정착되어 가면서, 한 번의 생산을 통해 얻는 물자는 생존에 필요한 물자보다 점차 많아지게 되었고, 이 잉여의 생활물자는 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여가시간을 발생시켰다. 말하자면 인류의 시간은 생존을 위한 노동시간과 그 외 개인적으로 쉴 수 있는 여가시간으로 나뉜 것이다. 여가시간 동안 인류는 노동시간을 줄여도 생산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제 여가시간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간접적 생산력 증가의 비법으로 활용되었다. 이제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는 생산력이 높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뉘면서 경제적 상태가 양극화된 새로운 공동체, 고대 국가가 등장하였다.
고대 사회는 생산력을 기준으로 하여 사회가 계층적으로 나뉘는 것이 특징이다. 높은 생산력(경제력)을 갖춘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높은 생산력을 가진 사람은 상층의 귀족 관료가 되었고, 생산력이 부족하여 빚을 지게 된 부류는 하층 평민에서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때 생산 활동은 노예가 전담하고 귀족들은 여가시간만을 즐기는 사회적 시간 분할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노예제 사회라고 한다. 그런데 노예에만 의존하는 생산 활동은 노예 수의 한계에 부닥치게 되었고, 공동체 존속을 위한 세금이 개인의 사적 탐욕으로 인해 거두어지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노예제 사회는 금이 가게 된다.
이로써 마을 단위의 공동체로 뭉쳐지며 방어적 형태의 장원 경제가 나타난다. 이것이 영주를 중심으로 한 신분제 봉건 사회이다. 봉건 사회에서는 생산력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아서 사회적 위신이 낮았던 교환의 매개체 상인들이 국내 나아가 국외의 거래를 통해 큰 이익을 남기며 사회적 위상 또한 높아지는 기회를 얻는다. 이들의 힘은 영주는 물론 국왕의 그것을 넘어서며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그것은 자급에서 교환으로 경제의 중심이 바뀌는 자본주의의 서막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이룩되기까지의 과정을 인류의 출현부터 고대, 중세, 근대를 거쳐 온 역사에 대한 탐험으로 세세히 살핀다. 이후로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라나 반복되는 과도기를 거쳐 지금에까지 이르렀는지를 경제사적 관점에서 재미있게 그려 낸다. 처음 자본주의는 사적 이익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유방임주의의 노선을 걸었다. 그런데 이런 사적 이익의 최대치를 존중하는 경제제도는 경제를 만들어 내는 실제 주체인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모조리 생산력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이들의 소비력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과도한 공급과 부족한 소비력이라는 부조리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소비력을 확장시키는 방식, 즉 국가가 대신해서 돈의 흐름과 이익을 조정하는 규제적 자본주의 체제(케인스주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시 효율성이라는 벽에 부닥쳐 금융자본가 및 산업자본가의 규율을 완화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귀결되어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다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정리가 겉으로 보면 단순한 사회사적 흐름의 요약 같지만, 이 책은 그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 가는 큰 핵심 고리, 즉 공동체적 이익과 사적 이익의 대립(정확하게는 생산관계의 사적 성격과 공동체적 성격의 대립이다)으로 설명해 내기에 매우 특별하다. 공동체적 이익과 사적 이익 간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제가 우선하는 가치가 순서대로 공동체적 이익-사적 이익-공동체적 이익-사적 이익의 순서다. 즉, 한 가지를 우선하다가 그것의 폐해가 커지면 다른 가치를 우선하고, 그것이 한계에 봉착하면 다른 가치를 우선하는 시도를 인류 역사는 자생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의 우선순위는 자본제가 자유방임주의-규율적 자본주의(케인스주의)-신자유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이 책은 하나의 단편적 사실, 혹은 결과적 정리로만 사회사 혹은 경제사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원인이 결과를 만들어 내고 그 결과가 다시 새로운 흐름의 원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면, 지금의 문제, 즉 자본주의의 위기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로부터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선명하게 알아챌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 책의 출발이 헬조선과 그것의 해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인류 경제사의 흐름을 되짚어 갔던 것은, 지금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알아가는 방법이 과거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 올바른 미래로 나아갈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를 탈출할 실천,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런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이 책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해법은 생산관계의 사적 성격과 공동체적 성격이 균형을 이루면서 동시에 자본주의보다 생산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부의 크기는 인간의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보다 생산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량이 늘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이미 과도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노동량을 늘리지 않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고찰한 방법을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가의 사적 생산수단을 사회 전체의 공동소유로 만들어 자본가 또한 직접 노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말하자면, 생산관계를 사적 성격에서 공동체적 성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의 자발성에 기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실질적 실행자이자 주인인 노동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력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한다. 이 자발적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금껏 자본가의 재산으로 귀속되었던 노동자의 추가 노동시간을 원래의 여가시간으로 되돌려 주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인류의 여가시간이 결국은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실질적 방편으로 기능했음을 증명해 보였다. 따라서 노동시간의 단축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실질적 해답이 될 수 있다.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여가시간을 충분히 가지게 되고 이것이 생산력 확장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모순인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해법임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다른 말로는 이 책의 출발이 되었던 헬조선의 탈출구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의지이고 그것을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수행해 나가며 걸리는 시간이다. 역사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으며 곧바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많은 사람이 혹은 많은 나라가 실천해 나가지 않는다 하여서 실패라고 정의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이론적 확신과 의지적 실천력이다. 이 책은 이론적 확신을 위해 만들어졌다.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많은 이의 의지를 모아 구체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추진력이다. 이 책이 지금까지 불가능했기에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자포자기를 극복하고, 지금부터라도 이룩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동참의 힘을 끌어내는 구심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수취인: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를 읽는 독자가 그 촛불이 될 수 있다. 그 촛불이 많아진다면 적어도 헬조선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