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반의 왕따야.’
초등학교 5학년 주민이는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요. 3학년 때 사소한 일을 계기로 시작된 따돌림은 2년 째 계속되고 있어요. 주민이네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어서 같은 아이들과 6년 내내 같은 반이거든요.
어른들은 말해요. 왕따는 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키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만 주민이를 피하고 따돌리는 아이들은 말해요. 주민이에게 문제가 있다고요. 아이들은 똑같은 실수를 해도 주민이만 비난하고 으르렁대요. 작은 일로도 비웃고 놀려대고요.
주민이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지옥같아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면, 따돌림이 없었던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지요. 전학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조르기도 하고요.
그런 주민이에게 친구가 생겼어요. 수업시간에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학년 아이와 고민 상담 편지를 주고받는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알게 된 희인이가 바로 주민이의 새 친구예요. 희인이는 구독자 수가 5만 명도 넘는 유튜버래요. 채널 이름은 ‘순수’. 주민이는 희인이와 문자도 주고받고 전화 통화도 하면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아요. 희인이랑 주민이는 마음이 잘 맞아요. 그래서 이제 주민이는 따돌림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희인이가 있으니까요. 마음속에 든든한 지원군을 품고 사는 기분이랄까요.
주민이는 희인이가 유튜브에 올리기 전에 먼저 보여 주는 영상도 바로바로 보고 싶고, 문자가 아닌 SNS 톡으로 희인이와 길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주민이의 휴대 전화는 키즈 폰이어서 그럴 수 없었어요. 하지만 생일을 앞두고 삼촌이 쓰던 스마트폰을 물려받게 되면서 신이 나서 제일 먼저 SNS 톡부터 깔고 희인이에게 톡을 보냈지요.
희인이는 주민이에게 인스타그램도 하라고 말했고, 둘은 바로 맞팔을 하게 되었어요. 희인이의 계정은 비공개였는데, 게시물은 없고 스토리에 영상만 올라가 있었어요. 주민이는 스토리의 영상을 보기 위해 희인이의 프로필을 꾸욱 눌렀지요. 그런데 그 영상을 주민이는 끝까지 볼 수 없었어요. 희인이가 올린 동영상 속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은 안경 낀 여자아이가 서 있었어요. 그리고 희인이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은 그 여자아이를 비웃고 놀려 댔고요. 영상 속 희인이는 전형적인 학교 폭력 가해자였어요…….
내 유일한 친구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면?
‘따돌림’ 혹은 ‘왕따’에 대해 심각하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는 어른들이 많아요. “친구랑 사이 좋게 지내렴.”이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어른들도 있고요.
하지만 따돌림은 엄연한 학교 폭력이에요. 몸을 때리거나 상처를 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에요. 몸이 아니어도 마음을 때리고 상처입히는 것 또한 폭력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 반 친구 중 아무도 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요?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던진 공을 받지 못했을 때 반 친구들이 모두 나를 비웃는다면요? 나랑 같은 모둠이 된 게 싫다면서 짜증을 내면요? 이런 일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겠지요.
그런 일을 당하면 주민이처럼 학교가 지옥 같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새로 생겼다면 아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겠지요. 다른 친구들에게 아무리 시달려도, 그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의지가 되고, 힘을 얻게 될 거예요.
그런데 만약 그 친구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이 이야기 속 주민이처럼 내가 학교 폭력 피해자인데 내 유일한 친구가 알고 보니 또 다른 가해자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유일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 친구가 학교 폭력을 가하는 걸 모르는 척 내버려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유일한 친구를 잃게 되더라도 그건 옳지 않은 일이니 그만 두라고 단호히 말해야 할까요?
이 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학교 폭력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피해자에게는 학교 폭력의 그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것, 둘째,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 셋째는,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주민이 같은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 봐요. 그리고 혹시 내 주변에 내가 모르는 학교 폭력은 없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학교 폭력은 없는지 생각해 봐요.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기로 해요.
▶ 글 임수경
좋은 이야기가 좋은 아이를 기른다는 말을 믿습니다. 2021년 <동양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며 등단했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부단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좋아요 조작 사건》, 《무영이가 사라졌다》, 《그 아이의 비밀 노트》, 《이상한 규칙이 있는 나라》 등이 있습니다.
▶ 그림 김규택
가장 즐거운 일도, 가장 힘든 일도 그림을 그리는 일이에요. 이야기에서 받은 감정들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에요. 지금까지 《수상한 미래에 접속하였습니다》, 《와우의 첫 책》, 《롱과 퐁은 지구인이 될까요?》 등에 그림을 그렸고 ‘초록뱀’ 이라는 필명으로 만화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