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짧은 메모>
이것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그림책이다.
숀 탠은 걸작을 창조해 냈다- 존 마스던(호주의 대표적 청소년 문학작가)
{빨간 나무} 한 장 한 장에서 느끼는 공감은 독자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림의 힘이기도 하다. 우리 하부의식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그토록 매혹적으로 해석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숀 탠의 천재성때문이다. -- Notable Australian Children\'s Books 2002
이 작품이야말로 \'그림책\'의 진정한 예이다. 그림만으로도 대단히 명료하고 힘찬 이야기를 보여준다.--Fiction Focus
이 작품은 언어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철학적인 느낌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숀 탠의 놀라운 예술적 능력으로 그려진 일련의 이미지들로 표현된다. 일종의 우화처럼 이 그림책은 나쁜 감정은 불가피하지만 언제나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 오스트레일리아 SF 온라인 eidolon.Net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어둠은 자신에게만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지나쳐 가고, 모든 일은 한꺼번에 터져 버리고, 끔찍한 운명은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게다가 그런 하루가 끝나가도 여전히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면…….
이 책은 바로 그런 날을 다루고 있습니다.
절망하는 순간에도 늘 어딘가 우리 옆에 있는 것, 바로 눈앞에서 피어나는 것
...바로 \'희망\'
누구나 때로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때로는 아픔과 슬픔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날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도 희망은 어딘가에 있음을 작가 숀 탠은 글과 그림으로 보여준다. 중국계 혼혈인 숀 탠은 이미 호주는 물론 다른 영미권에서도 그 독특한 그림 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이 책 『빨간 나무』에서도 그 특유의 사색이 짙게 묻어나고 있다. 책 전체에 흐르는 우울하다 못해 음산한 그림 속에 언제나 숨어 있는 빨간 나뭇잎.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어딘가에 꼭꼭 반드시 숨어있는 빨간 나뭇잎. (모든 페이지에 있는 그 나뭇잎을 꼭 찾아보세요!)
그것은 바로 숀 탠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희망\'의 모습이다. 하지만 숀 탠이 말하고 있는 희망의 모습은 언제나 거창하거나 밝기만 하지 않다. 때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때로는 아주 작게, 때로는 정면에서 나타난다.
그건 바로 희망이 절망 속에선 감히 꿈꾸기 어려운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란 절망과 괴로움과 슬픔의 경계에서 작은 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 바로 자기 자신이 바라던 그 모습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 서 있다.
아이들도 때로는 우울하거나 슬퍼하거나 절망한다. 친구와 싸워도, 선생님께 혼나도, 시험을 잘 보지 못해도 계절이 바뀌어 입을 옷이 없어도…….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나이를 먹는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다.『빨간 나무』는 어렸을 적 아이들의 사소한 슬픔과 절망에서 그 아이들이 성장하며 겪게 되는 커다란 어려움 앞에 언제나 조용히 밝고 빛나는, 자신이 바라던 바로 그 모습의 희망이 함께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른들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작가는『빨간 나무』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자신이 서 있는 슬픔과 괴로움 위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좌절과 괴로움을 저마다 자신만의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빨간 나무 뒤에서 속삭이고 있다.
숀 탠
1974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혼자 그림 공부를 하여 이미 16살부터 공포소설, 공상과학소설, 판타지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 최근에는 그림책에도 관심을 두어 존 마스던, 게리 크루의 글에 그림을 그리는 한편 스스로 글을 쓴 그림책을 선보이고 있다. 1992년 국제 미래 출판미술가상을 수상한 후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언스 픽션 베스트 아티스트 상, 크리치턴 일러스트레이션 상 볼료냐 라가치 어너 상을 수상했다. 『빨간 나무』는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으로 어린이가 느낄 수 있는 우울함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른 그림책으로는 『잃어버린 것』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다.
김경연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김경연 선생은 \'독일 아동 및 청소년 아동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문학관련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동문학가이며 번역가인 선생은 많은 어린이책 번역하고 좋은 외국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행복한 청소부』『바람이 멈출 때』『애벌레의 모험』『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여우를 위한 불꽃놀이』『신나는 텐트 치기』『생각을 모으는 사람』『잠자는 책』『루카―루카』 등이 있다.
국민일보/어머니께 드리는 귓속말 희망은 어둠을 비추는 작은 불빛
문득 내가 누구인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지요.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아무런 희망은 보이지 않고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처럼 까마득해집니다. 어둠은 한꺼번에 터져버리고 마음 속에는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친구도 날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자꾸 내게서 멀어져 가고 우두커니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자갈밭에 뒹구는 보잘 것 없는 병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빨간 나무』(글 그림 숀 탠·풀빛)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전하고 있는 철학적인 그림책입니다. 화면은 어린 소녀가 자신을 마치 기계화된 도시문명의 한 부품으로 느끼는 듯한 암울한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낙엽지는 늦가을의 풍경처럼 어린 소녀의 마음은 우울하고 절망은 온 도시를 뒤덮을 만큼 힘이 센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둠에 비유되는 절망은 작은 불빛 하나로 말끔히 걷히고 맙니다. 불빛이야말로 희망이겠지요. 희망은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하지만 성냥이나 촛불처럼 일단 타오르기만 하면 주위를 환하게 밝혀 마음을 억눌렀던 절망을 한꺼번에 몰아냅니다. 희망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희망이 자라고 있어도 너무 작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아주 희미한 불빛에서 시작됩니다. 잠자리에 들려고 방문을 빼곰히 여는 순간,캄캄한 방에서 마치 소녀의 가슴으로부터 새어나온 한 줄기 빛을 받으며 자라난 빨간 나무가 서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의 나무는 아닐까요. 나무가 빛으로 자라나듯 사람은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2002.11.15/정철훈 기자
문화일보/북리뷰 살갑게 그린 죽음과 절망 아이들에게 속삭이듯
아이들에게 ‘죽음’과 ‘절망’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응, 할머니는 저 하늘 높이 천국이란 곳으로가신거야.” “아침에 일어나도 아무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거지. 누구도 보고 싶지 않고 어디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심지어 숨을 쉬기조차 어렵단다.” 어떤 식으로 얘기하든 나부터 스스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두 책은 죽음과 절망이란 무거운 주제를 정면에서, 또는 옆에서 슬쩍 흘겨보는 방식으로 건드리면서 살갑게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여우가 모는 차에 치여죽은 꼬마토끼 오쁠라. 수탉은 죽음을 알리고 고슴도치는 수의를 만들고 고양이는 관을 만들고 두더지는 무덤을 파고 종달새는 노래를 해주고 다람쥐는 장미나무를 심는다. 누가 오쁠라의 죽음을 슬퍼할까? 바로 이들 모두, 오쁠라를 사랑했던 친구들이다. 파리에서 활약하는 폴란드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투박한 한지에 물감과 파스텔 색칠, 뜯어붙이기의 혼합기법을 이용해 고즈넉한 죽음의 느낌과 잔잔한 애도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냈다.
아름다운 것들은 날 그냥 스쳐 지나가고, 아무리 기다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아무도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우울과 절망으로 불러도 되리라. 호주의 일러스트레이터 숀 탠은 중국계 혼혈답게 동·서양의 미묘한 정서차를 그림과 글에 기막히게 녹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친구와 싸우고, 선생님께 야단맞고, 시험을 망치고……. 어린이의 불행도 어른의 그것과 색깔이 다를 리 없다. 작가는 그러나 결국 희망의 빨간나무를 보여줌으로써 절망은 극복되는 법이라고 나무 뒤에서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
이 보기드문 책들은 밝고 희망차고 예쁜 것들만이 동화의 소재라고 생각하는 ‘어른아이’에게 아이들도 인생의 희노애락을 알고, 그것을 당연히 누려야할 ‘애어른’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2002.11.15/노성열 기자
경향신문/책마을
하루가 시작돼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어둠은 자신에게만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지나쳐 가고, 끔찍한 운명은 피할 수 없을 것만 같고, 게다가 그런 하루가 끝나도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런 날들이 있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희망’이다. 우울하다 못해 음산한 그림속에는 ‘희망’을 나타내는 빨간 단풍잎이 때로는 아주 작게, 때로는 잘 보이지 않는곳에 반드시 숨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이 바라던 그 모습으로 정면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누구나 슬픔과 괴로움 속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어린이가 느낄 수 있는 우울함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 책을 꼽는다.
2002.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