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친구를 만들어 주기도 하며,
끝없는 모험의 세계를 펼쳐 주기도 하고,
겁쟁이 친구를 용감하게 바꿔 줄 수도 있다.
여기 바로 그런 책.
하이델바흐 특유의 환상적인 멋진 책 이야기가 시작된다.
<브루노를 위한 책>
책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요즘은 특히 그렇다. 아이들은 온갖 형태의 새로운 장난감이나, 컴퓨터 게임, TV 속 만화 주인공 등 다양하고 현란한 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더욱 익숙하다. 책 읽는 것은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예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바로 브루노가 그런 아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새로운 피노키오』에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피노키오를 그려낸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가 멋진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루노, 책 속으로 들어가다
두 아이가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울라와 책 읽는 것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브루노. 책읽기를 좋아하는 울라는 하루 종일 서재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브루노는 스티커, 스케이트 보드 등 새로운 물건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울라는 브루노와 좀 더 오래 놀고 싶다. 그래서 책을 함께 보려고 하지만 브루노는 전혀 생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울라는 꾀를 내어 큼지막한 반창고를 목에 붙이고 브루노 앞을 막아선다. 왜 반창고를 붙였는지 궁금해하는 브루노에게 울라는 책에서 나온 뱀이 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울라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브루노에게 어떤 커다란 책을 펼쳐 보인다. 그런데 정말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닌가.
브루노, 뜻하지 않은 모험을 하게 되다
책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울라가 괴물에게 붙잡혀 간다. 혼자 남은 브루노. 하지만 이제 브루노는 책 속으로 들어오기 전의 브루노가 아니다. 책 속의 마법의 세계를 믿지 못하고 새로운 모험에 겁을 내던 아이가 아니다. 친구 울라를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멀리까지 노를 젓고, 험난한 바위산을 올라 무서운 괴물을 용감하게 무찌른다. 특히 이 부분은 20여 컷의 글자 없는 그림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긴장감을 더해 준다. 뿐만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브루노의 모험을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브루노가 기다리는 모험, 그건 바로 책!
『브루노를 위한 책』은 특별한 책 모험을 통해 아이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에 대한 감정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애들이나 보는 책이라며 책에는 관심도 없던 브루노. 하지만 브루노는 책 속의 모험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적극적이고 용감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되레 앞장서 모험을 떠나고 싶어한다.
{브루노를 위한 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다양한 매체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이란 아이들의 무한한 호기심을 이끌어 내고, 그 호기심을 통해 자기만의 재미를 찾고, 그 재미를 통해 스스로 그 재미를 즐기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책 세계를 알게 된 브루노는 이제 책이 시시하지 않다. 또다시 기다려지는 즐거운 모험이자 여행이다. 왜냐하면 이미 브루노는 책의 매력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책이든 간에...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1955년 독일의 란슈타인에서 화가 카를 하이델바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쾰른과 베를린에서 독문학과 예술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쾰른에 살면서 특히 어린이책 분야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 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놀라움과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올덴부르크 어린이 책 상, 트로이스도르프 그림책 상,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그림책 상, 볼로냐 라가치 상, 오일렌슈피겔 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수상했다. 특히 두 번이나 안데르센 상 후보에 지명되었고, 2000년에는 전 작품에 수여하는 독일 청소년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김경연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김경연 선생은 ‘독일 아동 및 청소년 아동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문학관련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동문학가이며 번역가인 선생은 많은 어린이책 번역하고 좋은 외국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행복한 청소부』『바람이 멈출 때』『애벌레의 모험』『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여우를 위한 불꽃놀이』『신나는 텐트 치기』『생각을 모으는 사람』『잠자는 책』『루카―루카』『빨간 나무』등이 있다.
와~ 책속에 신나는 세상이 숨어있네 `브루노를 위한 책`(조선일보 2003년 6월 3일)
당신의 자녀가 책 읽기에 눈곱만큼의 흥미도 없다면 이 책에서 위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울라와 브루노는 친구 사이인데, 두 아이의 관심사는 전혀 다르다. 울라는 아빠 서재에 파묻혀 책 읽기를 좋아하고, 브루노는 스티커나 티셔츠 등 새로운 것이 생길 때마다 울라에게 자랑하러 오는 소심한 소년이다. 브루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지독한 편견도 갖고 있다. “이까짓 애들이나 보는 책!” 정말 재미난 책이라고 울라가 아무리 꼬드겨도 시시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콧방귀를 뀐다.
친구 브루노를 책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울라가 ‘목에 붙인 반창고!’가 바로 이 책이 주는 위대한 힌트다. 목이 왜 그러냐고 묻는 브루노에게 “뱀이 물었어”라고 대답하는 맹랑한 소녀는 그 뱀이 바로 “책에서 나왔다”고 해서 브루노를 더욱 놀라게 한다.
이후 11장에 걸쳐 펼쳐지는 글자 없는 그림 부분은,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난 브루노가 괴물에게 잡혀간 울라를 구출하는 줄거리를 담는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브루노의 변신이다. 매사에 수동적이고 냉소적인 브루노가 울라가 괴물에게 잡혀 먹힐 위기에 놓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보트와 칼, 통닭 한 마리를 들고 ‘출정’하는 장면! 바위산에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해괴한 동물들에게도 괴물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브루노는 무시무시하게 큰 괴물을 통닭 한 마리로 지혜롭게 물리친 뒤 친구를 구출해낸다.
‘책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란 편견을 아이가 갖고 있다면, 책을 읽지 않는, 혹은 재미있는 책을 골라준 적이 없는 어른들 책임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브루노처럼 목석 같은 아이를 책의 세계로 인도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니까. 처음 책나라로 들어갈 땐 울라의 등에 업혀 밧줄을 겨우 잡고 딸려가던 브루노가 마지막 장엔 울라를 부축해 자신감 있고 환한 얼굴로 돌아오듯, 일단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면 그 변화는 놀라워서 이전엔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게 해준다.
‘독서는 즐거운 놀이’라고 강변하는 독일의 그림책 작가 하이델바흐란 이름도 기억해두자. ‘새로 나온 피노키오’의 삽화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이번엔 자신의 동양적 취향을 맘껏 드러냈다.
울라의 원피스, 울라네 집 대문, 브루노의 조끼, 하늘에서 내려온 끈, 브루노의 칼에 베인 괴물의 목덜미에 밴 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뿌려진 선홍색 물감은 노란색, 푸른색 등과 어우러져 섬뜩할 만큼 생생하다.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