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그리움을 달래 주는 엄마의 특별한 이야기
엄마와 단둘이 사는 한 아이가 어느 날 묻습니다. “엄마,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가 엄마를 사랑한다면, 엄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러자 엄마가 대답합니다. “아빠 얘기니?” 그러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고 합니다.
어둠만이 가득한 밤에 침대에 누워 있을 때처럼, 뜨거운 여름날 어느 것 하나 움직이지 않는 산을 바라볼 때처럼, 어둠을 뚫고 맹렬히 달려가는 기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나무에서 바스락거리는 새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그러면 저 멀리에서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요?
■ 외롭고 쓸쓸할 때는 가만히 귀 기울여 보렴
때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문득 외로움에 빠지는가 하면 슬픔에 잠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여러분은 어떻게 달래시나요? 아이들이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을까요?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엄마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합니다. 온통 어둠뿐인 밤에 침대에 누워 있을 때처럼, 어느 뜨거운 여름날 가만히 적막한 산을 바라볼 때처럼 귀 기울려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아련히 전해 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문득 어디선가 교회 종들이 연주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때처럼, 저 멀리 안개 낀 강으로부터 뱃고동 소리가 들려올 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언덕 너머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올 때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엄마는 말합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렴.”
“그러면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가 너에게 보내는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마음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비록 볼 수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안아 주는 것도 느낄 수 없겠지만 아빠가 보내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사랑을 미처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더욱 쓸쓸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와 뱃고동 소리,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우리는 그 사랑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질문에 대한 엄마의 특별한 대답으로 꾸며진 <귀를 기울이면>은 의미 없는 수많은 소리로 가득한 우리의 삭막한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은 가만히 귀 기울여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동안 미처 듣지 못한 소중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고 전해 줍니다.
샬로트 졸로토 글
1915년 미국 버지니아 주 노포크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졸로토는 대학에서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배웠다고 회상합니다. 졸업 후 뉴욕 시로 가서 어린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되었고 또 직접 어린이들을 위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75권이 넘는 책을 썼고, 칼데콧 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1988년에는 졸로토의 업적을 기려 어린이 책 분야에서 그 해의 뛰어난 그림책 작가에게 주는 샬로트 졸로토 상이 제정되었습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으로는 <바람이 멈출 때> <잠자는 책>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 <우리 동네 할머니> 등이 있습니다.
김경연 옮김
서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일 아동 및 청소년 아동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일 판타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주제로 박사 후 연구를 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행복한 청소부> < 바람이 멈출 때> <잠자는 책> <빨간 나무> <엘리베이터 여행> <책 먹는 여우> ‘핀두스의 특별한 이야기’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이 있습니다.
귀는 참 희한한 감각기관이다. 귀는 눈처럼 적극적이지 못하다. 자유자재로 대상을 쫓아가지 못한다. 들리는 것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귀는 그렇게 다소 엉성하게 기능하고 그런 의미에서 눈에 비해 후진적인 감각기관 이다.
그런데 그런 귀로 듣는 예술인 음악은 고도로 정제돼 있다. 가장 허술하게 기능하 는 감각기관인 귀가 가장 철저하게 짜여진 형식의 예술을 감상하는 통로가 되는 것 이다.
그래서 귀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특히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좋아하는 현대인들 은 가끔 눈을 감고 대신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럼 놀라운 일이 생긴다. 좋은 음악을 듣자는 얘기가 아니다. 굳이 베토벤의 교향 곡을 듣지 않아도 그저 귀를 기울이면 좋은 일이 생긴다.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동화책 '귀를 기울이면'은 눈 감고, 귀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을 안 겨주는지 조용히 알려준다.
오래전에 가족 곁을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는 소녀 이야기다. 엄마는 외로움을 타는 아이에게 말한다.
"외롭고 쓸쓸할 때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렴."
아이는 가끔 눈을 감는다. 교회는 보이지 않지만 종소리가 들려온다. 저 멀리 안개 낀 강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도 들려온다. 과수원 나무 곁에 서서 눈을 감고 있 으면 '툭' 사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적막한 거실에 홀로 앉은 아이는 이제 화병 꽃에서 꽃잎 한 장이 스르르 떨어지는 소리도 듣게 된다.
보이지 않는 아빠의 음성과 사랑을 느낄 줄 알게 된다. 참 희한한 기관인 귀는 그 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준다. 샬로트 졸로토 글,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김 경연 옮김. 풀빛 펴냄.
[2006.04.28. 매일경제 이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