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왜 다시 아도르노인가?
90년대 중반, 한국 지식 사회에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 하나의 이론적 흐름으로 대세를 이루었다. 그 흐름 속에서 아도르노라는 사상가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유행처럼 번졌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사그라들면서 아도르노 또한 관심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고, 이제는 시대적 공소시효가 지나 잊혀진 사상가가 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누가 아직도 아도르노를 보나?’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반 독자들도 이론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요즘,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의 저자 이순예가 아도르노의 사상을 다시 ‘새롭게’ 읽어 보자고 제안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도르노의 저술을 읽으면서 필자는 행복할 권리를 새삼 환기하게 되었다. 전후 혼란기에 태어나 개발독재의 핍박을 받으며 성장한 우리 세대는 주관적인 느낌이 항상 사회의 관행과는 어긋나는 체험을 하면서 민주시민으로 자신을 형성시켜야 했다. 올바른 민주시민이 되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행복을 방기하면서 살아왔다는 의식은 뚜렷하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 상태를 교정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아도르노를 읽으면서 찾아왔다.
저자는 한국 사회라는 공간에서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부터 아도르노의 사상에 접근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이론서이자 학술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점이 국내 저자로서는 처음으로 아도르노의 사상을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 들어간 이 책이 다른 아도르노 저서의 번역서들이나 단순히 그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그친 책들과는 다른 의의를 지니는 이유이다.
아도르노는 철저하게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문제삼은 사상가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급속하게 편입하면서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상을 새롭게 고민해야 할 이때, 아도르노를 다시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의 저술들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아울러 현재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가 사회비판서 《계몽의 변증법》, 철학서 《부정변증법》, 그리고 미학서 《미학이론》으로 옮겨가면서 엮어낸 일련의 생각들은 오늘날 한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근대화’라는 세계사적 과정이 불러온 문제의 원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근대화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현재를 조건 짓는 상수이지 않은가!
2. 아도르노의 저서를 ‘읽다’
이 책은 아도르노의 주 저서인 《계몽의 변증법》, 《부정변증법》, 《미학이론》을 차례로 ‘읽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도르노의 저서를 이러한 ‘차례’로 읽어가는 이유는 단순히 쓰여진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아도르노는 철학적으로 정립한 ‘부정사유’라는 원칙을 예술의 영역에서 실현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철학서’를 읽은 뒤 ‘미학서’를 읽는 순서는 전기적이라기보다는 논리적인 근거를 갖는다. 저자는 ‘현실을 비진리로 선언하고, 미적 사유에 미래를 거는 아도르노의 문제의식에 주목’해 이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왜 아도르노의 저서를 ‘읽는’ 방식을 택했을까?
아도르노의 사상은 독일, 관념론, 유태인, 철학적 미학, 시민예술 등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적은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추상화 과정이 얼마만큼 우리의 근대의식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읽기’라는 방법론을 택해 그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이러한 의도에 적합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필자는 우리가 아직 아도르노를 평가할 시점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이른바 ‘한국적 수용’ 역시 내키지 않는 방법론이었다.
관념론자였던 아도르노의 이론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저자의 말대로 그의 사상이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섣불리 아도르노의 이론을 분석하고 평가하기보다는 독자들과 함께 아도르노의 저서를 차근차근 ‘읽어’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각 저서의 ‘읽기’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개념들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을 첨가했다. 이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온전히 아도르노의 저술들을 읽길 바라는 저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3.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유토피아적 감성 회복하기
사회비판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철학서 《부정변증법》을 거쳐 미학서 《미학이론》에 이르는 아도르노의 사상적 곡예는 한 마디로 서구 문명의 인간적 의미를 묻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으로 정리될 수 있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서구의 합리적 이성이 추진해온 계몽의 한계와 문제점을 짚는다. 그리고 관습에서 벗어난 사유를 주장한 《부정변증법》에서는 현재 세계 상태에서 철학적으로 참된, 그러면서도 경험 세계의 감성을 배척하지 않는 사유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예술이라는 비일상적인 영역으로 눈을 돌린다. 여기서 《미학이론》으로 넘어오는 지점이 형성된다. 《미학이론》은 《부정변증법》이 당위적으로 요청한 ‘부정하는 사유’가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경험 영역을 예술로 정의하고, 그 가능성을 진단한 논의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이론적 전개를 통한 아도르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아도르노 주장의 핵심은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개인의 몫이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변증법에서 종합 명제를 도출하도록 매개하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부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당위를 정치적으로 서술하면, 현실추수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어떤 사회적 행위도 거부해야 한다는 요청이 된다.
한편, 아도르노가 주장한 ‘부정의 철학’은 이상주의적 사유의 틀을 유지하는 문학과 예술에 하나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적 반성에서 철학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미학이론은 철두철미하게 철학적 미학의 전통에 서 있다. [……] 그는 개개인의 특성을 억압하지 않는 사회적 질서가 있어야 하며, 오직 그런 질서만이 추구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도르노는 강도 높은 지적 긴장을 요구했으며, 예술이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예술은 예외적인 존재로서의 위상을 보장받아야 했다. 현실을 구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반성하는 사유는 느슨한 관계 속에서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논지 전개를 기반으로, 이와 같은 아도르노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유토피아적 감성 회복’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기술 문명과 국가 기구의 지배를 받는다. 이들은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 우리의 의식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주체로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은 기술과 조직이 행사하는 지배의 규정들에서 벗어나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도르노는 억눌린 감성을 회복함으로써 고정된 지배관계의 실행을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도르노의 감성 회복 주장은 르네상스나 계몽주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표방했던 것과는 무척 다르다. 이들이 대체로 화려한 색채를 구가했다면, 아도르노의 감성은 아직 어둡다. 과제를 수행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회복된 상태를 위해 노력하는 감성이기 때문일까. 이 어두운 감성을 필자는 유토피아적 감성이라 칭했다.
개인의 욕구를 온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을 끊임없이 방기하도록 강요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감성을 ‘유토피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총체화되고 수량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이 보호해놓은 공간’에서 가능하다.
나를 회복하기 위해, 즉 미적으로 실존하기 위해 예술이 보호해놓은 공간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 이 자유로운 의식의 공간에서 나는 수량화와는 또 다른 계산법을 우선 꿈꾸고, 그래서 감성도 다시 회복시켜 나갈 수 있다. 예술이 지닌 고유한 원칙들은 이 또 다른 계산법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자본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자율적으로 판단내리는 훈련을 하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개성과 인격이 요청되는 이론을 기초한 아도르노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고통스럽게 느낄 줄 알아야 유토피아를 소망할 수 있는 안+K47목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적으로 물질이 배열되는 현 세계 상태가 다른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당위, 그리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상가였다.
4. ‘나’의 행복할 권리 찾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문학자로서 아도르노가 지닌 면모를 새삼스레 부각시키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도르노가 실존적인 문제와 이념적인 문제를 개인의 행복에 대한 요구를 통해 결합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처럼 가치 판단의 준거들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아도르노의 사상은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치 집권과 망명, 종전, 분단, 그리고 서독 사회 건설의 시기를 유태인 신분으로 살아야 했음에도 자신을 피해자, 혹은 피억압자의 처지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던 아도르노의 저서를 새롭게 읽음으로써,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체제를 ‘비진리’로 선언하고, 즉 체제를 부정하고 거스르면서 개개인의 ‘나’가 스스로의 행복할 권리를 추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순예는 서울대학교와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박사학위 논문 ?독일 고전문학과 조화미 범주의 아포리?(2000, Bielefeld)가 《Aporie des Sch?nen》이라는 제목으로 독일 Aisthesis 출판사에서 2002년 출간되었다. 이 책은 빌레펠트대학 철학과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적이 있으며, 도서관의 연중 대출목록에 오르고 있다.
아우구스트 베벨의 《여성론》(까치, 1987)을 번역했고, 독일 무용잡지 《Tanz Archiv》의 기사를 번역하여 정기적으로 월간 《춤》에 싣기도 했다. 최근에 발표한 논문으로는 ?계몽, 비판 그리고 예술?(《美學》, 2004), ?우연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을 때, 질풍노도―비전공자를 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독어교육》, 2004)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책머리에
왜 아도르노인가?
1. 이념형으로서의 자연사 - 《계몽의 변증법》을 일으키는 자연사와 역사의 이중주
1.계몽에 대한 재계몽 기획으로서의 비판이론/ 2.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의 관념론
3.개념과 객체의 변증법-실증적 이념의 전일적 지배가 야만을 부른다
4.시민적 주체 형성-그 파탄의 해부학/ 5.계몽의 변증법 속에서의 체계와 가상
6.복지국가 이념의 자연 지배/ 7.인문학적 사회비판서
2.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관념철학하기 - 《부정변증법》으로 재정립해야 할 물질과 사유
1.계몽의 철학적 요청으로서의 부정/ 2.자본주의적 고전관념론
3.관념철학에서의 근대적 물음과 동일성 사유. 4.비동일자와 부정사유
5.칸트와 헤겔/ 6.다시 아도르노/ 7.미학의 전제로서의 철학
3. 유토피아적 감성 회복을 위하여 - 《미학이론》이 제시하는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
1.미적 물음의 이론화/ 2.이론의 미학화/ 3.유토피아적 감성 회복을 위하여
보론 아도르노 미학과 서구 시민문화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연보
주(註)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