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대 남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살아가기
무엇이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만들고,
어떻게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로 성장하는가?
양성불평등이라는 무의식의 소산, 그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역추적
요즘 들어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남성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못생긴 여자들의 불평운동이라고 불편해한다. 페미니스트가 남자를 적으로 삼아서 여자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이기적인 권력집단쯤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심지어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IS에 가입하겠다는 충격적인 소년도 있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어떻게 받아들여진 것일까? 무엇이 페미니즘을 추문거리로 만들었을까? 이런 사회적 현상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판단, 왜 이런 오해가 생겨났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사회적 편견은 어떻게 굳어져 왔는지 그 오랜 역사적 과정을 밟아 나가며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일깨우려는 책이 출간되었다. 풀빛 〈비행청소년〉 시리즈 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된 《발레 하는 남자, 권투 하는 여자: 문학으로 찾아가는 양성평등의 길》이 그것이다.
여성 대통령, 여성 CEO, 여성 대법원판사, 여성 장군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여성이 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높은 양성평등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갖는 믿음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2014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한국의 양성평등지수는 142개 국 중 117위를 기록하였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도달했다고 믿는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수준과 우리의 실제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현실과 우리의 고정된 상식 안에 자리 잡은 양성불평등 수준은 매우 견고하게 높은데도, 그것을 부정하려는 우리 무의식 속의 작용은 그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속에 내재한 견고한 무의식인데, 이 무의식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양성불평등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중요해진다. 《발레 하는 남자, 권투 하는 여자》는 남자와 여자,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양성불평등이라는 이 무의식의 생성 과정을 하나하나 들추어 본다. 한편으로는 고대신화 및 중세와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각기 어떻게 존재했고 어떤 사회적 대우를 받으며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의 산물로서 지금의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위상은 어떤 것인지 책 전체를 관통하여 설명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 여자의 물리적 성장 과정 속에서 사회와 그 개인이 맺는 관계성을 통해 ‘여성성’ 혹은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유년기 때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사회적 성별 기대, 그것을 지나 십 대의 청소년기에 사회가 개별 인간에게 원하는 상, 결혼 적령기에 이른 남녀를 억압하는 사회적 강요, 결혼한 남녀에게 바라는 아내 상, 엄마 상 그리고 아빠 상, 뒤이어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을 옥죄는 사회의 덫은 어떤 것이냐까지 이 책은 아우른다. 성과 성적 정체성을 구분하고 그 형성 과정이 한 인간의 생애 동안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남녀불평등이라는 현실적 상황과 그 상황을 가능하게 한 무의식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이라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남자와 여자가 각기 독립적인 주체로서 살아갈 것인지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가 화합해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 이 책은 양성평등의 대안까지 마련하고 있다.
문학작품이 페미니즘을 만날 때
이런 방대한 내용이기에 이 책이 매우 복잡하고 따분하고 어려울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확언하건대 그렇지 않다. 애초 이 책의 기획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문학작품과 주인공의 삶을 통해 여성/남성 대 여성성/남성성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보이자는 것이었다. 매우 민감하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그다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양성평등,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와 문제를 주인공과 그 주인공들이 만들어 내는 소설적 스토리를 통해 거부감 없이 끄집어내 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이 책의 필자인 임옥희 교수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공동대표로서 오랫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연구하면서도, 사회학 전공자가 아니라 영문학 박사로서 문학작품의 내적 연구를 활발히 해 왔음은 물론 문학의 사회학적 환원에 깊이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년기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갖춰야 할 것으로 아이들 세대가 받아들이게 한 역할을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동화 중심의 옛이야기가 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서 이 책에서는 〈백설 공주〉를 들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 여자, 길을 잃고 헤맬 때는 난쟁이들의 보호 아래 살다가 목숨을 잃고 사경을 헤맬 때는 백마 탄 왕자님의 도움을 한없이 기다리는 백설 공주. 그리고 그 백설 공주를 죽이기 위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독사과를 직접 개발하는 악녀 왕비. 이 두 캐릭터는 성처녀와 요부라는 대비되는 여자의 모습이다. 이 극단적인 캐릭터는 여성에게 올바른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다는 사실과, 바람직한 여성상은 모험을 하는 왕비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남자의 도움을 기다리는 백설 공주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 암시는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무의식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그들의 의식을 성장할 때까지 지배하게 된다. 백설 공주는 물론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라푼젤 등등 수많은 동화들이 바로 유년기의 무의식을 만들어 내는 주범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것을 듣고 자란 아이가 성장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다시 읽혀 줌으로써, 동화식 사고방식은 무의식적으로 지금껏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한국의 대표 소설 《춘향전》은 어떤가. 한 남자를 위해 권력자의 뻔뻔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수절하는 춘향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절개를 지킨 여인의 상징,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이런 긍정적 해석도 있지만,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 고치려 한 여자라는 식의 해석도 있다. 어찌 됐든 다양한 해석의 중심은 춘향이라는 인물과 그 수절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춘향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더 넓다. 조선시대에 만연한 남녀유별과 남존여비, 그리고 차별대우 받는 여자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기생이라는 신분, 이런 신분사회라는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 《춘향전》이다. 춘향이 정식 부인이 되지 못하는 기생이라는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수절을 외쳤던 건, 사회적 여건을 고려하면 어불성설이지만, 그것으로 신분제 사회, 남녀불평등이라는 문제를 과감하게 노출시킨 역할을 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사랑과 결혼을 누군가의 선택과 강요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졌다는 의미에서 춘향이 신여성의 모델로 손색이 없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중요한 건 춘향이가 그렇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이다.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은 그 작품이 탄생한 사회에 대한 분석과 함께 그 작품이 지금의 사회에까지 주는 기나긴 여운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주인공의 삶의 배경에 된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주는 영향까지도 연결시켜 나아가 보기를 이 책은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결혼의 의미와 모순에 대해서는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과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로, ‘엄마’와 모성성의 의미는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으로 고찰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 예를 들어 여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자기만의 방》에 대한 분석이 그 답을 주고 있고, 남성성이 도대체 어떻게 탄생하여 굳어지고 지금에 이르러 다르게 변화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멜빈 버지스의 작품 《빌리 엘리어트》가 논의의 출발점에 자리하고 있다.
미래세대의 주인공으로서 청소년은 양성평등이 곧 삶의 문제로 맞닥뜨릴 세대임에도 요즘의 한국 사회의 분위기 안에서는 그것을 간접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발설하면 왕따의 처지에까지 몰릴 위험부담이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살고 있다. 그들의 현실적 문제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거부감 없이 그들의 인식 범위 안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인지, 이 책은 처음부터 고민했고 그 고민을 문학작품을 통해 양성평등을 이야기하겠다는 포부로 해소했다. 여성운동가들이 고민한 양성불평등의 역사적 흐름과 대안의 모색이 이 책에서 조금도 복잡하지 않고 민감하지 않고 거부감 없이 녹아들고 있다는 것이 이번 기획의 커다란 성취다.
여자와 남자, 다시 인간이 되어 만나는 길
남성에게서도 여성호르몬이 나오고 여성에게서도 남성호르몬이 나오듯이 인간은 여성, 남성이 되기 이전에 양성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남성들에게 있는 여성적 특징을 없애야 남자는 남자답게 되고, 여성들에게 있는 남성적 특징을 억제해야 여자는 여자답게 된다. 그렇다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삶 안에서 양성의 모습이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것인가? 인간 남녀는 유사성이 많음에도 왜 서로 상반된 존재인 것처럼 여길까? 사회가 남녀를 마치 서로 건널 수 없는 섬처럼 그토록 구별 짓고 싶어 한다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 이 책은 그 이유를 문학작품을 통해 면밀히 하지만 명쾌하게 통찰해 간다. 그리고 말미에 이르면 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 또한 제시한다. 남성 가장 대 여성 가정주부라는 틀, 독립적 남성 대 의존적 여성이라는 틀, 군대 가는 남자와 아이 낳는 여자라는 틀…, 수많은 대립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사회의 ‘틀’을 깨라고. 그 틀을 깨는 것은 무엇보다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상상하라고 주문한다. 그 상상력의 원천은 시대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문학작품에 있을 수 있다.
왜 우리는 화장하고 치마 입고 뜨개질하고 요리하는 남자아이, 해커, 첩보요원, 오지탐험가가 되고 싶어 하는 여자아이를 상상하기 힘들까? 왜 발레 하는 남자, 권투 하는 여자, 중장비 여자 기사, 남자 베이비시터, 의사인 엄마, 가정주부인 아빠를 스스럼없이 상상하기 힘들까? 《발레 하는 남자, 권투 하는 여자》는 우리의 상상력의 부재에 대해 알게 만들고, 그 이유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답 또한 친절하게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새로운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기에 이를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 차별 대신 차이가 우선되는 사회, 배경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회, 발레 하는 남자와 권투 하는 여자를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우리와 또 그런 우리가 주인공인 사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