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민낯 젠트리피케이션, 그 원인과 해법을 탐구하다
화려한 도시의 한복판에 드리운 차가운 그림자
내쫓기는 사람들에게 온기와 둥지를 되돌려 주자
장소와 소유, 도시의 참뜻을 찾자
<사회 쫌 아는 십대> 시리즈 05번이 출간되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긴밀히 연결된 문제를 다룬 《젠트리피케이션 쫌 아는 10대: 도시야, 내쫓기는 사람들의 둥지가 되어 줄래?》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말로 ‘둥지 내몰림’으로 표현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자기 뜻과는 관계없이 강제로 삶과 생활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걸 가리킨다. 최근 성장하는 도시의 이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삶터와 일터에서 내쫓기는 일이 무시로 벌어지면서 사회의 큰 이슈로 떠오른 이것.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단어가 과연 낯선 만큼 우리와 상관없는 동떨어진 문제일까. 이 책은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내 이웃의 문제요 내 문제라는 문제의식으로 마련되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여러 모습을 그려 보이면서, 어떤 연유로 이것이 이렇게 공고화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살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필자 주변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 평범한 우리네 현실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적인 탐구와 풍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튼튼한 논거를 마련하여 원인과 해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십대 청소년이 쉽게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사례를 선별하고 에세이 형식으로 내용을 다듬었다. 거기에 예술적이고 회화적인 삽화가 공감의 튼튼한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의 빛 그리고 그늘
여기, 어떤 사람이 동네 한 귀퉁이에서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며 식구들과 단란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건물주가 임대료를 몇 배나 올리거나, 이제 이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이니 그냥 나가라고 한다. 여기, 오래된 어떤 마을이 있는데 많은 주민이 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전체를 싹 밀어 버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결정이 난다. 세입자들은 보상도 없이 모두 쫓겨난다.
도시는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공간이지만 이런 안타까운 일이 무시로 벌어지는 곳이다. 이런 ‘일’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자기 뜻과는 관계없이 강제로 삶과 생활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걸 가리킨다. 우리말로는 ‘둥지 내몰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얼핏 보면 겉으로는 휘황찬란하게 빛나지만 이런 어두운 그늘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참모습이다.
도시는 그동안 양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불거졌고, 그 가운데 최근 들어 큰 주목을 모으는 게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사람, 지역, 도시 등에 일으키는 다양한 폐해가 갈수록 커지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아주 중대한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다. 어디서든 쫓겨날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살고 일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넓혀서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에는 도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이 세상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지금까지 사회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땅이나 집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삶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그러므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제대로 알면 이 세상과 우리 삶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십대를 위한 사회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늘 부딪히고 겪는 문제이기에 현실적이고, 지금 당장 그 해결점을 찾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곤경에 처할 위험이 있기에 대단히 중요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룬다. 학술적인 내용이어서도 시험에 나오는 문제여서 요약 정리해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내 이웃의 문제요 내 문제이기에 지금 알아야 하는 현안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도시와 사회의 현주소를 또렷이 보자. 또한 앞으로 가야 할 길도 가늠해 보자.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둥지에서 내몰리는 사람들
2018년 6월 7일 서울 강남의 어느 골목길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뒤쫓아 가 망치를 휘두른 폭행 사건이 일어나 이후 연일 언론의 주요 기사로 떠올랐다. 1심에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폭행 사건의 주인공은 알고 보니 이 책의 필자가 한때 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러 자주 찾았던 서울 서촌의 한 유명한 족발집의 사장이었다. 한때 소문난 맛집의 나름 성공한 사장이었다가 한순간 폭행범이 된 사연, 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족발집 사장 김 씨는 20년 동안 열심히 일한 돈을 모아 서촌의 먹자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건물 일부를 임대해 족발집을 차렸다. 이후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가게가 번창했는데, 거기까지는 보람 있고 희망이 있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건물주가 바뀌면서 보증금과 월세 모두를 기존의 몇 배에 해당하는 높은 금액을 요구했다. 알고 보니 새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려서 건물 가격을 높인 다음 되파는 방식으로 부를 쌓아 올린 사람이었다. 즉, 턱없이 높은 임대료 요구는 김 씨에게 당장 나가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은 무조건 건물주 편이었다. 나가지 않겠다고 버틴 세입자 김 씨에게 남은 건 포악한 강제집행과 그 과정에서 몸에 얻은 큰 부상뿐이었다. 억울함과 원통함에 사무친 김 씨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급기야 새 건물주를 찾아가 폭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필자와 연관된 또 다른 에피소드. 2010년 1월 9일 필자는 어느 장례식에 참석한다. 필자는 장례식에 참석한 1만 명이 넘는 사람 중 하나였고, 그들과 함께 서울역 광장에서 치러진 영결식장에서부터 서울 용산구 남일당 상가 건물 앞까지 행진을 한다. 이 장례식은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약 1년 전 2009년 1월 19일 새벽, 서른 명이 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남일당 상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망루를 지어 농성에 들어간다. 이들은 건물 주변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쫓겨날 처지로 몰린 철거민들. 주로 식당 등을 운영하며 생활하다가 생계수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들은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없어 강제 철거에 몸으로 저항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다음 날 새벽, 수백 명의 경찰을 투입해 강제 진압 작전을 개시했고, 물러설 곳이 없던 철거민들은 이들에 맞서다 갑작스러운 화재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2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용산참사’라 불리는 이 가슴 아픈 사건은 사고 직후 희생자들을 방화범으로 둔갑시키는 한편 참사의 주범인 경찰 책임자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2019년 1월에 용산참사 10주기 희생자 추모제가 있었는데, 남일당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거대한 초고층 주상 복합 건물이 쑥쑥 올라가는 것과 상반되게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이와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 마련도 없는 실정이다. 필자가 족발집 이야기와 용삼참사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전혀 다른 두 이야기는 모두 동일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한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돌봐줄 이 없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사회 도처에 깔려 있다. 왜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라는 어미의 돌연변이 자식이고, 이 자식은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는 수많은 버려진 변종들을 양산하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양적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그 성장의 영역에서 한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바깥으로 내몬다. 도시는 성장하지만 있는 집마저 빼앗겨 갈 곳 없는 사람들, 이것이 도시의 진짜 모습이요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불리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탐구, 원인부터 해법까지
《젠트리피케이션 쫌 아는 10대》는 필자 자신의 주변에서 무시로 이루어지는 내몰림의 현상을 구체적으로 끄집어내면서 그것이 결국 평범한 우리네 현실이라는 것을 피부에 와닿도록 그려 보인다. 이런 현실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의 진짜 모습이자 복잡하게만 들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런 현실에 마주한 뒤에는 역사적으로 이 현상이 어떻게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 다양한 원인과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와 제도와 사람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차근히 나열한다.
서로 다른 원인이 있는 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습도 저마다 다르고 해법도 다양하다. 그렇기에 길고 낯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처럼 그것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법도 매우 복잡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실은 원인도 해법도 매우 간명하다. 돈이냐 사람이냐. 사람보다 돈을 좇는 사회의 욕망이 결국 사람을 삶터에서 내몰아 이 냉혹한 현실이 된 것처럼, 해결의 방향도 돈이 아닌 사람에 두면 된다. 물질이 아닌 사람을, 소수의 사람이 아닌 사람 전부를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머지 방법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상당히 뒤처져 있어.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이른바 ‘천민자본주의’에 푹 젖어 있는 탓이야. 천민자본주의란 한마디로 천박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를 일컫는 말이야. 물질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물신주의가 지배하고, 이기적 탐욕과 적대적 경쟁이 판을 치며, 많은 사람이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 같은 것들에 집착하는 태도 등이 주요 특성이지. 돈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부와 권력이 극소수에게 집중되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깊어지는 건 그 당연한 결과야.”(본문 141쪽)
도시든 도시 안의 어느 마을이든,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이것이 세상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다. 사람들이 쫓겨나고,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깨지면 세상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십대는 물론 모든 이에게 도시와 마을을 살리는 방법, 모두가 터 잡고 살며 장소를 일구는 길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안내하기 위해 쓰였다. 이 책이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열띤 사회 토론의 장 <사회 쫌 아는 십대>
<사회 쫌 아는 십대>는 초등과 고등 사이, 거대한 지식의 산 앞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십대, 특히 중학생을 위해 기획된 시리즈로, 다양한 사회 문제 중에서 시사점이 있고 활발한 토론거리가 될 주제를 뽑아 한 권 한 권에 담았다. 점점 더 독서와 토론이 교육의 중요 목표가 되어 가는 이때에,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사회 쫌 아는 십대> 시리즈는 심혈을 기울였다.
첫째, 주제 선정. 협소한 듯 보이는 한 책의 주제는 그 안에 광범위한 분야를 내포하기도 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놓쳤던 문제의식을 되찾아 주기도 하며, 청소년이 찬반 혹은 중론의 입장에서 그 사안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부해 자유롭게 그러나 논리를 갖고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는 토론거리들로 선정했다.
둘째, 전문성. 각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하며 행동해 왔던 전문가가 집필을 맡았다.
셋째, 독자 친화성. 억지로 하는 독서는 불가능하다. 읽는 재미가 아는 재미를 이끈다. <사회 쫌 아는 십대> 시리즈는 십대의 입장에서 공감이 가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일까를 가장 고민했고, 먼 얘기가 아닌 십대의 이야기, 십대의 입말을 최대한 살려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했다. 적당한 분량감에 내용을 살리는 삽화를 적절히 넣어서 단숨에 한 권을 읽어 낼 수 있게 했다.
넷째, 유쾌한 지식 놀이. 단편적인 지식에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을 실생활에 접목해서 응용하며, 한 분야의 지식을 다양한 분야와 연결시켜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친절한 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01《최저임금 쫌 아는 10대》를 시작으로 02《시장과 가격 쫌 아는 10대》 03《국제거래와 환율 쫌 아는 10》 04《유튜브 쫌 아는 10대》(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05《젠트리피케이션 쫌 아는 10대》가 출간되었다. 이후로 기본소득, 시민불복종, 헌법, 소수자, 난민, 힙합 등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숙해질 주제들을 가지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갈 예정이다. 교과서로는 재미와 깊이, 사고의 확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십대 청소년이라면 <사회 쫌 아는 십대>를 계속해서 만나며 지금까지의 갈증을 해소하고 더욱 성장할 기회를 갖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