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남자》, 사상과 이념의 대통합을 꿈꾸다
변방에 사는 사람 가운데 꾀가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집에서 기르던 말이 도망가서 오랑캐 땅으로 가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자 그 아버지가 말했다. “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겠소?” 몇 달이 지나서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람들은 축하의 말을 전했는데, 그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어찌 화가 되지 않겠소?” 그 집에는 좋은 말이 많았고 그의 아들은 말타기를 좋아했는데, 하루는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이것이 어찌 복지 되지 않겠소?” 그로부터 1년 지난 뒤에 오랑캐 사람들이 대거 변방으로 침입했다. 젊은 장정들은 활을 당기며 전쟁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변방 근처의 사람 가운데 죽은 자가 열 명 가운데 아홉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유독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부자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흔히들 길흉화복을 점칠 수 없는 오묘한 인간사를 비유할 때 드는 말 ‘새옹지마’. 바로 위의 고사가 새옹지마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고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 유방이 세운 한 나라에 무제가 8대 황제로 즉위한 즈음, 회남왕 유안이 다방면의 학자들과 함께 정치?신화?천문?지리 등 다양한 내용을 총망라하여 백과전서 형식의 철학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회남자》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는 도와 우주 만물의 근원은 물론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의 내용이 있고, 군주의 통치술이나 도에 대응하는 방법, 삶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 등 정치 및 처세에 관한 내용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형 및 계절의 변화와 같은 천문학적인 내용이 있는가 하면 신화적인 내용 또한 들어 있다. 새옹지마의 고사는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18편 〈인간훈〉에 등장한다.
다방면의 학문을 통틀어 이야기하는 백과전서와 같은 방대한 《회남자》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개의 배경이 존재한다. 첫 번째 배경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추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부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재를 등용하거나 그들을 후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거나 명분을 쌓으려 노력했다. 유능한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통해 자신들의 위업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는데, 여불위의 《여씨춘추》는 제자백가 사상을 총괄해서 가장 방대하고 완벽한 저술을 만드는 목적에 의해 완성된 것이었다. 《회남자》 또한 회남왕 유안이 여러 인재를 끌어모아 그들을 후원하여 만든 결과물이었다.
두 번째 배경은 황제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학자의 간접적 대응책으로서의 기능이다. 한 나라 건국 초기에는 지방 분권과 농민 우대 정책을 통해 안정을 취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왕권 강화를 위해 공신 숙청을 단행하는 등 중앙 집권을 향한 발걸음도 이어졌다. 제후국의 성장과 발전은 곧 한 제국의 존립에 위협을 가할 커다란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 집중형 통치 형태는 점점 더 강해졌고, 8대 한 무제는 강력한 일원 국가를 꿈꾸며 유학을 한나라의 정치적 지도 이념으로 세워 사상의 일통주의를 꾀하려 했다. 유학의 근간이 되는 엄격한 신분 질서의 차별과 형식적 예법이 강력한 황제권 위엄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지방의 일개 왕 유안은 학자로서 유가와 도가, 일통주의와 다원주의,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 통일성과 다양성, 중화와 이적 등 서로 대립하는 사상과 이념의 대통합을 꿈꾸었다. 이런 소망을 다양한 사상의 합리적 취사선택에 과학적 내용, 신화?역사적 내용으로 뒷받침하여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또 모든 것을 비난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 총체적 작업을 해낸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회남자》다.
# 《회남자》, 어떤 형식이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회남자》는 전체 2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마지막 21편 〈요략〉은 앞에 나오는 20편의 글을 요약해서 정리한 것이어서 실제 내용은 20편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편의 제목은 전체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모든 제목 끝에는 ‘훈(訓)’이라는 글자를 붙여 교훈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1편 원도훈은 도의 근원에 대해, 2편 숙진훈은 도의 실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3편 천문훈은 동양의 천문학적 지식을 내포하며, 4편 지형훈은 지형과 지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5편 시칙훈은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상호 연결시켜 설명하며, 6편 남명훈은 세상을 넓게 보는 방법에 대해, 7편 정신훈은 만물 속에서 인간의 유래에 대해, 8편 본경훈은 세월이 가도 불변하는 진리에 대해 언급한다. 9편 주술훈은 군주의 통치술에 대해 설명하며, 10편 무칭훈은 도가적 도덕에 대해 논하고 있다. 11편 제속훈은 절대적 진리에 대해, 12편 도응훈은 인간이 도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13편 범론훈은 음양과 만물의 조화로움에 대해 논한다. 14편 전언훈은 내면을 고요하게 하는 수양방법을 말하며, 15편 병략훈은 전쟁에서의 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16편 설산훈과 17편 설림훈은 다양한 고전에서 인용한 일화를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며, 19편 수무훈은 배우고 수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20편 태족훈은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20편의 이 간략한 소개만으로도 얼마나 다양한 주제와 경계 없는 학문의 넘나듦이 이 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포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책의 저술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방사와 유생이었기 때문이다. 즉 도가와 이것이 종교로 발전한 황로 사상뿐 아니라 유학 사상 역시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더구나 방사는 신선의 술법을 연구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천문?지리?의학 등 자연 과학 분야를 담당하던 사람들이었기에 천문학적 지식은 물론 지형과 지리, 계절의 변화, 음양론 등이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회남자》의 주요한 사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인간이 어디서 생겨났는가? 우주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고 하는 물음들에 대해 음양론을 통한 기의 움직임으로 답하고 있다. 즉 기의 세계관을 받아들여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기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설명한다. 둘째,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도가의 입장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로 설명한다. 천지 만물은 인간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몸체로 존재하니 자연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 반대도 성립된다고 보았다. 셋째, 이러한 천지와 인간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중국의 신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신화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뜻인데, 이러한 중국의 신화는 단순히 신비로움을 극대화시킨 이야기만이 아니라 천문?지리 등에 대한 고대인들의 탐구 정신이 들어가 있어서 그들의 과학적 해석이 독창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넷째, 이상적 인간과 정치에 대해 마음을 텅 빈 상태로 만들어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인 도가적 성인을 이상적 인간으로 상정하고 이 성인이 다스리는 무위의 정치가 바로 이상적 정치의 모습임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정치의 요체는 군주와 백성이 수레와 바퀴처럼 조화롭게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라고 한다.
# 소통과 어울림의 진면목을 보여 준 위대한 고전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와 다문화의 한복판에 서서 소통과 어울림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다양한 사고와 문화, 학문이 공존하는 동시에 서로를 교차해서 그 차이를 변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전 지구가 결국 하나의 물을 마시고 동일한 공기를 숨 쉬고 토양과 하늘을 함께 쓰고 있다는 자각에서 어쩌면 매우 다급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기에 기원전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회남자》는 진정한 소통과 어울림이 무엇인지 그 모범적 답안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나의 사상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가 사상을 비롯해, 정치?신화?천문?지리 등 여러 내용을 싣고 있으면서 그 다양한 내용들이 실은 자연이라는 커다란 질서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또 인간이 이러한 자연과 유기체적 질서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비록 우리에게는 덜 알려져 있는 책이지만 풀빛 청소년 철학창고에서 수많은 고전 중 50권의 한 권으로 청소년들에게 소개하려는 이유는 《회남자》의 목적의식이 지금의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과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철학창고 32번으로 출간된 《회남자, 생각의 어우러짐에 관한 지식의 총서》는 이러한 취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집필과 편집 과정에서 많은 고심을 하였다. 먼저 원서 《회남자》가 안고 있는 분량의 방대함을 최소한도록 줄였다. 그렇지만 원서의 원 구성을 그대로 따라감으로써 이 책만 읽어도 《회남자》가 무슨 책인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원문의 내용을 추리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는 그 많은 분량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면서도, 청소년들의 이해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선별하였다. 마지막 〈요략〉편의 각 편에 대한 내용을 20편의 서두에 정리해서 실음으로써, 각 편을 이해하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본문에 앞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을 인물과 용어 편으로 나누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낯설고 까다로운 개념들을 먼저 숙지하도록 도왔다. 책의 마지막에는 엮은이 유안의 생애와 이 책이 나온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여 책의 필연적 태생의 의미를 알려 주었고, 이 책의 개괄적 내용과 핵심 사상이 무엇인지를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청소년 시기에 다양한 사고와 그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것은 민주적인 소양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오늘날의 시대적 과제를 2천 년 전에 앞서 보여 준 《회남자》,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청소년들을 위해 쉽고도 재미있게 재구성한 《회남자, 생각의 어우러짐에 관한 지식의 총서》는 청소년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훌륭한 자양분이 될 고전 중의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