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완결되지 않은 현 시점에
사유하는 지성 김영란이 안내하는 헌법의 현장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2016년에 펴낸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가 법과 정의에 대한 상식의 철학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헌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보며 헌법이 담은 가치를 말한다. 김영란은 고대 그리스 시대 민주시민을 위한 공연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연극을 진행하듯 헌법 제정의 현장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헌법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의 헌법이 제정되어 간 현장을 소개하며 ▲ 왜 그토록 많은 이가 헌법을 만들기 위해 싸웠는지, ▲ 헌법의 기반인 ‘법의 지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 헌법 제정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상세히 전달한다.
독자는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한 장면씩 이어지는 치열한 헌법 제정의 현장을 관람하며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맛보는 민주주의라는 달콤한 열매가 사실은 수많은 사람의 피를 먹고 자랐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막이 내린 연극 무대를 뒤로하며 독자는 자문한다. 앞으로 우리 헌법이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 개정에 내가 참여할 방법은 또 무엇인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우리나라 헌법 제정과 개정에 관한 역사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이 책의 시작인 대한민국 헌법 개정에 대해 불붙은 논쟁과 맞닿아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새로 만들어진 헌법 제10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적용되는 헌법이다. 대통령 직선제 등 의미 있는 내용을 확립한 헌법이긴 하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개헌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이후 개헌에 대한 적극적 행동도 있었으나, 아직 그 어떤 정치적?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대한민국 헌법 개정은 표류 중이다.
법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틀 안에서 30년을 재직한 공직자이지만, 한순간도 법의 굴레에 매이지 않았던 김영란. 그는 시민을 위한다는 법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자신의 판단 근거로 삼았고 법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한 노력을 자신의 능력 안에서 경주했다. 판관의 자리에서는 법이 보호해야 할 약자의 편에서, 국민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자리에서는 부당함 없는 정의로움을 위해 일했다. 저술가의 자리에 선 그는 법의 편이 아닌 사람을 위한 법에 대해 논하고, 이제 법의 정수 헌법에 이르렀다. 역시 헌법을 보는 그의 시각은 헌법을 위한 헌법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헌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영란은 대한민국에 개헌이 필요하다면, 오롯이 지키고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자고 말한다. 탐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우리가 잊었던 헌법의 시작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그 지난한 길을 떠나 보자고 권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는 개헌에 책임이 있고 헌법에 책임을 물어야 하므로. 그러므로 이 책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써 나가야 할 헌법 이야기다.
모두를 위한 헌법 설명서
저자는 먼저 책 전체를 관통할 주제인 교양교육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시대 벌어진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인용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두고 ▲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지배당하면서 생긴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처벌, ▲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긴 아테네와 달리 자유를 중시한 소크라테스 양심에 대한 처벌, ▲ 윤리적 사유의 역사적 출발점이라는 다양한 견해를 접하며 독자의 시야는 넓어지고, 교양교육을 중시하던 그리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실패한 모습을 보여 주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을 정리했다.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저자의 세심함은 독자에게 헌법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 준다.
이어서 헌법이라는 딱딱한 대상에 대한 독자의 거부감을 풀어 주기 위해 문학과 예술 작품을 들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 대헌장을 승인한 영국 존 왕의 시대에 활약하던 로빈 후드에 대한 《로빈 후드의 모험》, ▲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혼란한 시기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면을 그려 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 영국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이 정착한 초창기 식민지인들의 모습을 담은 《주홍글자》, ▲ 평생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려 노력해 온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 그리고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서 가장 큰 기폭제인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당시 서울의 모습을 이야기한 <1987> 등, 대법관이라고 하면 묵직하고 근엄함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독자에게 저자는 배려로 답한다.
동시에 독자가 던질 질문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우리나라에서 질문은 때때로 스승이 준비한 강의를 제자가 방해하거나 발표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특히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뚜렷할수록 상급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에 많은 이가 질문하는 것을 주저한다. 그러나 질문과 대답을 활용한 교육인 문답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효과적인 교수법 중 하나이며, 소크라테스 역시 자주 애용했다. 저자는 이러한 문답법의 방식을 이용해 독자가 저자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의문을 갖고 사유하도록 돕는다.
민주시민을 위한 교양교육을 이야기하다
우리 헌법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헌법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보다 독재 정권과 권력자의 도구로서 국민을 억압하고 옥죄던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때문에 1987년 제정된 헌법 제10호는 그와 같은 불행한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법률안과 달리 헌법 개정안에만 ‘국민투표’라는 조항을 추가로 달아 두었다. 이 조치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쥔 어떤 위정자가 변심하여 국가의 지향하는 가치와 기초가 담긴 헌법을 혹시라도 자기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로 독재를 방지하자는 의도이다.
그러나 쉽게 바꾸지 못하게 자물쇠를 달아 놓았다는 점은 국민에게 헌법이 어렵고 엘리트만이 다룰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헌법은 시민의 자유로운 논의 대상이 되기보다 외면받았고 평범한 사람과 멀어졌다. 만약 현시점에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헌법은 또다시 절대다수인 일반 시민의 삶을 제대로 담지 못한 채 몇몇 학자와 정치가의 생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그들이 만든 개정안에 가/부 여부만 표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헌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헌 논의를 이해하여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주체적 인간이다.
물론 여러 여건상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니 국민은 자신들의 대리인을 뽑아 정치에 참여하게 한다. 저자는 《최초의 민주주의》를 인용하며 민주주의에서 통치의 핵심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얼핏 모순처럼 생각될 수 있으나, 이 말의 의미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 지도자는 모든 면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하니 솔직하게 모른다고 고백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되 결정은 국민에게 맡긴다는 의미이다. 이 방법은 지도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방지하고,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시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면서 최종 결정자인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평소 교양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양교육이란 각각 경의, 정의, 숙고이다. 먼저 경의는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능력으로 이를 통해 지도자는 오만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음으로 정의는 양심에 어긋나지 않은 윤리적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고, 숙고는 지식이 없어도 주장과 그 반대 주장 모두에 귀를 기울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옳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코비드19를 비롯해 몰아닥친 여러 현안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헌법 개정에 대한 요구와 움직임이 많이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뜸한 현재를 오히려 세 가지 능력을 갖추기 위한 기회로 여기고 숙지한다면, 헌법 개정에 대한 토론이 활발할 때, 그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헌법의 현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불과 2백 년 전,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국가의 기본 통치 체제는 전제군주제였다. 군주인 왕은 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고 단독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입법, 사법, 행정권이 분리된 현대 국가와 달리 전제군주제를 도입한 나라에서 이 권한은 모두 왕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입법 및 사법 기관을 포함한 모든 국가 기관은 왕의 결정과 명령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곳에 불과했다. ‘왕은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왕권신수설은 국가의 기본 이념이었으며, 왕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어서 왕에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에 의한 통치는 모든 결정에 대한 권한이 왕에게 있어서 의사결정이 빠르고, 왕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면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고 건국 초기 기틀을 튼튼히 잡아 5백 년 왕조를 열었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하던 청나라는 전성기를 달렸고 특히 옹정제는 중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부정부패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로마 역시 5현제가 통치하는 2백 년 동안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리는 빛나는 시기를 이룩했고 그리스와 함께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일구었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왕 역시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든 왕이 항상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또한 전제군주제에서는 왕의 권한이 너무 강력해 제대로 된 정치적 권력 견제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때문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한 인간의 타락은 자신과 주변 몇몇에만 영향을 끼치지만, 왕의 타락은 곧 국가의 파멸로 연결된다. 세종대왕은 역사에 남을 위인이지만, 그의 증손자 연산군은 5백 년 조선 왕조에서 최악의 폭군이었고 왕위에서 쫓겨났다. 혈통만으로는 왕권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는 20세기 초까지 전제군주제를 유지했지만, 한참 전부터 지구 반대편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왕의 권력을 헌법으로 제한하거나 왕을 축출하고 공화정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영국의 존 왕에 맞서 싸운 귀족들은 왕의 지배 대신 법의 지배를 주장하며 대헌장에 서명을 요구했다. 프랑스의 제3신분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민중은 루이 16세에게 구체제의 모순을 개선하라고 요구했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만들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며 독립에 성공했다. ‘왕도 법에 따라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법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주장은 이렇게 시작됐고 차례로 다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
‘왕이 불합리한 권력을 휘둘러 신하를 탄압하면 신하는 얼마든지 이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
세 가지 사례는 모두 변화하는 시대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제만 고수하려는 세력과 그에 반발하는 신흥 세력 간의 다툼이다. 물론 새로운 흐름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젊은이는 강력한 추진력과 매서움을 지니고 있지만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당시 가장 젊고 현대적인 헌법이라는 찬사를 듣지만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 민주주의라는 평가도 받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사례처럼 독일 국민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버리고 전체주의를 선택한다. 경제는 엉망이고 정치 체제가 안정적이지 않은 가운데, 국민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거짓 정보로 국민을 선동하고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할 지식인마저 무너진다면 파멸은 걷잡을 수 없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젊음이나 새로운 어떤 것보다 앞서 말한 경의, 정의, 숙고의 능력이다. 한계를 파악할 줄 알았다면 존 왕은 억압 대신 덕치로 백성들을 돌보고 국가를 다스렸을 것이고, 윤리적이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었다면 영국은 영국인과 미국의 식민지인을 차등을 두어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숙고를 갖추었다면 루이 16세와 독일 국민은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음에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 변화의 흐름을 타지, 휩쓸려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능력은 전제군주제의 주인이 왕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민주공화제의 주인인 국민에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처럼 민중이 주체가 되어 지배층을 상대로 투쟁을 통해 이룩한 상향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광복 이후 진주한 미군에게 영향을 받아 미국의 제도를 정치 지도자들이 도입해 민중에게 전달한 하향식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교육에 대한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광복과 한국전쟁 직후, 국민 개개인의 문맹률도 높고 경제 발전이 최우선 목표이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부진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1987년의 민주화 운동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한 지금은 그동안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변화와 유지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거친 뒤 제정된 헌법 제10호는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국민의 염원인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등,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통치 원칙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6.29 선언 이후 4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사이에 개헌안 작성, 국회 본회의 통과, 공포까지 진행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심도 있고 깊은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현행 헌법은 국민의 권리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 소수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다는 점, 다른 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하나씩 나타나자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결정적으로 2016년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시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레 헌법 개정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이 시기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반영하여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된 뒤 현재는 그 어떤 논의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앞에서 우리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사례를 통해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왕과 그에 맞서 싸우는 민중의 모습을 살펴봤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제만 고수한 채 변화를 희망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거부하며 몽니를 부리는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추하고 그 끝은 대부분 파멸로 귀결된다. 변화는 때때로 두렵고 처음 보는 길을 걷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충분한 교양교육을 통해 기본적 소양을 기른 국민이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학교 교육만이 아닌 부수적인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의 모자람을 보완하고 완전함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민주시민으로서의 모습이 여기서 발현된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했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졌고 소크라테스가 살아생전 중요하게 생각해 자주 인용했던 “너 자신을 알라” 역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체면, 지위, 역할 때문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못하고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묻는 자는 딱 5분만 바보이지만, 묻지 않는 자는 영원한 바보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은 무엇인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모자람을 채울 수 있는지 알려고 하는 자세를 국민 대다수가 갖출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진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