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활용 수거함에 넣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베트남 농민의 집 마당에 쌓이고 있다
재활용, 친환경 로고가 가리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가정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관광지에서도 우리는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효과적인 재활용을 위한 분리 배출법에 관심이 높아졌다. 음식물이 남지 않게 포장 용기를 깨끗이 씻어 버리는가 하면, PET, PP, PS, PVC 등 플라스틱 종류까지 살펴 분류하며 환경을 위해 애썼다는 작은 위안을 얻는다. 재활용 수거함에 잘 넣었으니 이제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의 눈앞에서 치운 그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재활용을 위해 애쓴 노고가 무색하게도,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마치 연금술사가 납을 금으로 바꾸려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버려진 쓰레기도 무한하게 가치 있는 물건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재활용 신화’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산뜻한 재활용 로고에 가려진 세계는 매우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재활용 신화 속에서 우리는 죽지 않는 ‘플라스틱 좀비’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인류학자이자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저자는 ‘플라스틱 마을’로 불리는 베트남의 민 카이 마을에서 플라스틱 재료의 생애주기를 따라가며 재활용 신화의 진실을 추적했다. 친환경 정책과 재활용 산업의 모순, 쓰레기 식민주의로 인한 불평등의 실태를 담은 이 르포에 주목하라. 재활용 쓰레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제자리를 찾기 위해 눈을 떠야 할 때가 왔다.
다시 태어나도 또 쓰레기?
더러운 플라스틱 봉투는 깨끗한 플라스틱 봉투로 재활용된다
플라스틱, 인류세의 또 다른 화석이 될까?
베트남의 작은 마을, 민 카이로 가는 도로 갓길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쓰레기 더미들이다. 이 더러운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열악한 시설의 재활용 공장으로 이동해 세척 후 열가소성 폴리머와 섞여 녹는 등의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알갱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플라스틱은 다시 ‘깨끗한’ 플라스틱 봉투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플라스틱 쓰레기는 한번 생성되면 결코 사라지거나 달라지지 않는 고유의 물질이 되어 버린 듯하다. 친환경 제품이나 분해가 되는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할 것이라 기대했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이다. 저자는 플라스틱을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따라 진화한 합성 재료라고 말한다.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플라스틱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면 지구 생태계의 모든 측면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빙하 코어부터 도심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봉투를 거쳐 바다에 생겨난 플라스틱 섬까지, 없는 곳이 없다. 이는 곧 ‘인류세’의 흔적이기도 하다. 먼 훗날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들이 우리를 플라스틱 종족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아일랜드의 쓰레기가 베트남 농민 손에 들린 이유,
플라스틱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사회·환경적 불평등을 불러오는 쓰레기 식민주의
2018년, 중국은 플라스틱을 포함한 24종의 유해 물질 수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수십 년 동안 미국, 일본, 호주, 유럽 등지에서 오는 폐기물 거래의 중심 고리였던 중국의 선언에 갈 곳 잃은 쓰레기 컨테이너들은 베트남의 항구로 몰려 왔다. 쓰레기는 이미 세계화되었고 그 방향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컨테이너에 실려 온 쓰레기 사이에서 우리가 언젠가 버렸음직한 낯익은 전단지와 한글이 적힌 포장 비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발행한 잡지가 쭈그려 앉아 쓰레기를 분류하는 베트남 농민의 손에 들려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난 농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재활용업에 종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노인의 땅도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의 부지로 쓰이기 위해 팔려 나갔다. 쓰레기에 점령당한 민 카이 마을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온갖 쓰레기들이 쌓여 부패하고, 또 플라스틱 알갱이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수는 쌀국수를 만드는 데 쓰던 마을의 강물까지 앗아갔다. 유해 가스가 나오는 공장에서 마스크도 없이 맨몸으로 일하는 주민들의 건강도 불평등의 또 다른 지표다. 쓰레기 더미 위에 거대한 주택을 짓고 부를 늘려 가는 사람들과 농민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저자는 인터뷰마저 비협조적인 기득권층과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담아왔다.
친환경 소재 운동화를 신고,
포장 용기의 재활용 로고를 살피는 당신에게
이제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을 해야 할 때!
플라스틱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이유
요즘 친환경 제품에 붙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100% 생분해되는 비닐봉투’, ‘생분해 수세미’ 등의 제품 소개글에서 완벽히 땅으로 돌아가 분해된다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엄청난 혁신이다. 자연적으로 사라진다니!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 또한 우리가 친환경적 소비를 했다는 작은 위안을 얻는 정도에 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생분해되려면 일정 조건을 충족한 환경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런 조건의 매립지는 국내에 없다. 또한 우리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순간, 매립의 여지조차 없이 대부분 소각되고 만다. 그렇다 보니 당신의 친환경 소비는 구매 당시에만 뿌듯함을 선사할 뿐이다. 한참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 플라스틱’ 역시 생분해가 어렵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엘리즈 콘트레르는 ‘오늘날 절반도 안 되는 44퍼센트의 폴리머만이 화학적 특성으로 실제 생분해된다’고 말한다.
재활용 로고로 대표되는 녹색의 순환은 저자의 말대로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는 민 카이 마을 주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의 생애주기를 추적하면서 순환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재활용 로고에 가려진 실제 세계에서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극단적 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쓰레기통의 비닐봉투를 모으는 베트남 농민의 가난과 불평등만 남아있다고 말이다. 한번 생성된 플라스틱은 결코 친환경적으로 변모할 수 없기에 이제는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끝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재활용 로고에 담긴 플라스틱 순환의 고리를 서서히 끊어야 한다.
“쓰레기 문제, 특히 재활용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제대로 알고 싶은가? 혹은 환경문제를 둘러싼 복합적인 구조와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은가? 이 책은 이런 공부에 썩 맞춤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민 카이 마을에 범람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중에는 한국에서 내가 버린 것들도 포함돼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뿐만 아니라 지구 다른 곳에서도 또 다른 민 카이 마을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다. 이 책은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_장성익(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작가)
“우리는 재활용 표시가 붙은 상품을 구입하며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소비한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만, 생각과 달리 재활용은 지구를 구하기에 역부족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재활용 산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 기업은 이런 사실을 숨긴다. 그렇다면 재활용은 좋은 해결책일까? 이 책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경제적, 역사적,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인간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바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함께 생각해 보자. 재활용, 순환 경제가 인간을 살릴 수 있을까?”_이지유(『기후 변화 쫌 아는 10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