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끼 입은 토끼를 따라간 아이의 네 나라 별난 구경?
조끼 입은 토끼를 따라간 아이라면 열이면 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릴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도 그런 아이가 있다. 바로 웅철이다. 웅철이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로 잘 알려진 주요섭 선생님이 지은 장편 동화 <웅철이의 모험>의 주인공인데, 앨리스처럼 조끼 입은 토끼를 따라갔다가 ‘땅속 나라’, ‘달나라’, ‘해 나라’, ‘별나라’를 구경하게 된다.
어느 날 동네 친구들인 애옥이와 복실이와 차돌이와 소꿉장난을 하던 웅철이는 갑자기 복실이와 차돌이가 싸우는 바람에 소꿉장난을 그만하게 된다. 그 대신 웅철이는 애옥이와 함께 애옥이 큰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러 뒷산으로 올라간다. 애옥이 큰언니는 웅철이와 애옥이에게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읽어 주는데, 웅철이는 이야기 속의 말하는 토끼 이야기를 듣고는 “토끼가 조낄 입다니! 시곈 또, 웬 시계, 하하.”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머리 뒤에서 “왜요, 토끼는 조끼도 못 입나요?” 하고 말하는 낯선 소리가 들린다. 어리둥절해서 보니까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복돌이네 집에서 기르는 토끼다. 토끼를 쫓아 복돌이네 집까지 따라간 웅철이는 복돌이네 토끼에게 땅속 나라 구경을 가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제안을 받아들인 웅철이는 토끼가 준 알약을 먹고 토끼장 속의 땅속 나라 구경을 시작으로 달나라 해 나라 별나라 구경을 시작하게 된다.
?웅철이가 만난 세상, 그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들
땅속 나라에 도착한 웅철이는 눈뜬 쥐들의 겨울 양식으로 호콩(땅콩)을 만드는 장님 쥐들도 만나고, 손가락만 한 사람들인 풀의 정령들도 만난다. 그러다가 우연히 꽃의 정령 나라와 개미 나라와의 전쟁을 보게 된다. 웅철이는 처음에는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토끼로부터 지금 개미 나라에서 빼앗으려는 나비 수렝이를 빼앗기면 올해는 바깥세상에서 나비 구경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놀라고 화가나 꽃의 정령들을 도와 개미 떼를 물리친다.
그리고 수많은 잠자리 떼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달나라에 도착한 웅철이는 달나라에서 익히 잘 알고 있던 계수나무 아래의 절구 찧는 토끼 할아버지를 만난다. 말로만 듣던 절구 찧는 토끼 할아버지를 만난 웅철이는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절구 찧는 할아버지가 교과서에서 배운 토끼랑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에 나왔던 그 토끼라는 거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는 그때 두잠을 자는 바람에 거북이한테 져서 지금 벌을 받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강가에 놀러나간 웅철이는 위험에 처한 새끼 용을 구해 주지만 그 일로 인해 불개 나라로 잡혀가 사형에 처해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사형장에서 구출된 웅철이는 이번에는 해 나라에 도착한다. 그런데 해 나라는 모든 것이 그림자로만 되어 있는 나라이다. 새까맣게 그슬려서 그림자가 된 웅철이는 해 나라에서 이상한 일들을 보게 된다. 한쪽에서는 배고픔에 시달리는 그림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이 넘쳐나 썩어나갈 정도로 흥청망청 놀고먹는 그림자들을 본 것이다. 그것을 보고 실망한 웅철이는 해 나라 과학자협회의 도움으로 로켓을 타고 해 나라를 떠난다. 그리고 또 다른 나라인 별나라에 도착한다. 별나라에는 어른이라고는 한 명도 없고 아이들만 사는 깨끗하고 자유로운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웅철이는 그곳에서 별나라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웅철이는 자신이 타고 온 로켓을 별나라 아이들에게 자랑하려다 그만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과연 웅철이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 우리 판타지와의 새로운 만남, 그 즐거움과 벅참 그리고 함께 느끼기
이미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부터 최근의 <해리포터>시리즈까지 판타지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굉장히 친숙하고 인기 있는 장르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언제 처음으로 판타지 동화가 나왔을까?
흔히 이원수 선생님의 <숲 속 나라>(1949년)을 우리 나라 판타지 동화의 시작으로 알고 있는데, 주요섭 선생님은 이미 1937년에 <소년>지를 통해 <웅철이의 모험>을 발표했다. 만약 이것을 기준으로 삼는 다면 주요섭 선생님의 <웅철이의 모험>은 우리 판타지 동화의 역사를 십 년 이상 앞으로 당겨 놓을 만한 중요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60년을 뛰어넘은 새로운 만남, <웅철이의 모험>의 어제와 오늘
우리 어린이 문학의 역사를 보면 의미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린이 독자들이 모르는 작품들이 발견되곤 한다.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작품으로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주요섭 선생님이 1930년대 아이들을 위해 쓴 판타지 동화 <웅철이의 모험>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웅철이의 모험>은 문학사적 의미를 떠나서 내용이나 재미에 있어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웅철이의 모험>은 웅철이라는 아이가 친구네 토끼를 쫓아 땅속 나라, 달나라, 해 나라, 별나라를 구경한다는 큰 줄거리의 갖고 있지만, 우연히 토끼를 쫓아 현실이 아닌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웅철이의 모험 속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옛이야기나 설화, 상상의 동물, 당시 시대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여러 요소 등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콩 닦아 줄게, 나무새기 나라.”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보듯이 아이들이 그 당시 즐겨 하던 놀이를 통해 콩이 어떻게 나는지를 땅속 나라 장님 쥐들을 통해 재미있고 알기 쉽게 들려주고 있다. 또한 풀의 정령들을 통해서는 비록 풀이 눈에 보일 때는 풀 자체이지만 땅속에서는 손가락만 한 사람들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인화 시켜 보여 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달나라와 해 나라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이야기나 설화들을 통해 그 당시(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인 식민사회의 계급적 모순이나 가진 자와 못가진 자와의 불평등, 그리고 우울한 사회상에 대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유머와 풍자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별나라에서는 어른이 없는 아이들만 사는 세상을 보여 줌으로써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아이들과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있다면 이 어려운 현실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와 믿음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웅철이의 모험>은 비록 요즘 판타지 동화에서 보이는 흥미진진한 사건과 개성 있는 캐릭터로 무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주요섭 선생님이 당시에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판타지 형식으로 녹여 내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려는 고민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시대를 되새겨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그 자체로 재미있게 읽고 신나게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글쓴이>주요섭
1902년 평양에서 태어나 상하이 후장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교육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1921년 단편 <깨어진 항아리>로 문단에 데뷔한 뒤 초기에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중기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한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자연주의적 경향, 다시 말기에는 사회고발적인 현실의식을 담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인간의 원초적인 정서인 사랑과 1930년대 한국적 여인상을 통해 당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우리 소설 문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달나라 늙은 토끼, 달리기 경주에 져서 벌받는 거래
웅철이의 모험
주요섭 글|유성호 그림|풀빛|120쪽|9000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를 삼킨 불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별주부전’ 등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신화와 설화, 동화 요소들이 흥미진진하게 교차하며 이야기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판타지 작품. 그런데 이 동화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 우선 발표 연도가 일제시대다. 1937년 4월 ‘소년’ 창간호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연재됐다. 작가는 ‘사랑손님과 어머니’로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주요섭. 흔히 이원수의 ‘숲속나라’(1949)가 한국 판타지 동화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발굴로 우리나라 판타지의 역사가 10년 이상 앞당겨진 셈이다.
70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요즘 인기를 끄는 국내외 판타지 못지않게 발랄하고 속도감이 넘친다. 주인공 웅철이가 애옥이네 큰언니가 읽어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다가 깜박 잠이 든 사이 벌어지는 환상모험. 앨리스의 토끼가 아니라 소꿉친구 복돌이네 집토끼를 따라 땅속 나라, 달나라, 해나라, 별나라로 신기한 여행을 떠난다.
이들 네 나라에서 웅철이가 마주치는 장면들은 재미있는 한편, 아이들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인간들에게 속는 줄도 모르고 사시사철 땅 속에서 호콩(땅콩) 열매를 만드는 장님 쥐들의 이야기, 아이들이 풀을 뽑아 죽일 때마다 땅 속에 있는 풀의 정령들이 죽는다는 이야기. 달나라에서는 낮잠을 자다 거북이와의 달리기 경주에 져서 평생 절구를 찧고 사는늙은 토끼를 만나는가 하면, 불개나라에서는 죽을 고비를 겪는다. “지구에서는 너희 사람들이 우리 개들을 종으로 부린다던데, 그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줄은 알고 있느냐?”
▲ 잠시 행복을 맛보는 나라는 별나라다. “어른이 없으니 아이들을 때리거나 못살게 구는 일 없이 아이들 마음대로 노는 자유의 나라…, 누구나 배고픈 일 없이 실컷 맘대로 자유롭게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나라”. 별나라 아이들이 지구에 사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대목은 식민지시대를 힘겹게 살아내야 했던 어린이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구 나라 아이들은 배도 고프고 병도 들고 얻어맞기도 한대. 그래도 밤이 되면 아이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별나라에 불이 켜졌나 안 켜졌나 세어 보곤 한단다.”
‘콩 닦아(볶아) 줄게 나무새기(채소) 나라’라는 동화의 첫 문장처럼 작품을 읽는 동안 여기저기서 만나는 우리 옛말과 사투리들이 반갑다. 요즘의 세련된 판타지들처럼 극적인 요소를 갖췄거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고 정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소박한 우리들 이야기여서일까?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입력 : 2006.08.25 22:42 06' / 수정 : 2006.08.26 09:2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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