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우리는 창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그때의 우리가 전하는 동학 농민 운동 이야기
1894년, 평화롭던 전라북도 고부군의 관아가 불타올라요. 땀 흘려 번 돈을 빼앗고, 차별을 일삼는 탐관오리에게 화난 백성들이 들고일어선 동학 농민 운동이 시작된 것이지요. 《녹두밭에 앉지 마라》 속 백유도 동학 농민군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요. 모두가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말이지요. 《녹두밭에 앉지 마라》는 농민군이 된 형 백유와 그런 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 고비가 전하는 역사 동화입니다.
고비와 백유는 서로밖에 모르는 형제예요. 그러던 어느 날, 백유가 동학 농민군이 되어 집을 떠나지요. 고비는 믿을 수 없었어요. 자신을 끔찍이 여기는 형이 자신만 두고 떠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비는 형을 찾기 위해 황토현, 황룡촌, 우금티에 찾아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농민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왜 창을 들게 되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저항의 역사를 지나왔어요. 그중에서도 동학 농민 운동은 백성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지요. 평범한 백성들이 어떻게 동학 농민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동학 농민 운동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일어났는지 열세 살 소년의 발자취를 따라 알아보아요.
1894년 전라북도 고부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두 같은 이유로 벼랑 끝에 내몰렸던 우리
1890년대 조선은 엉망진창이었어요. 백성들은 농사지어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나라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매일같이 세금을 걷어 갔지요. 주인공 고비가 사는 전라북도 고부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요. 아니, 오히려 더 심했어요. 탐관오리로 유명한 조병갑이 군수로 부임하면서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부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잡아 가두었거든요.
고비는 동진강 상류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어요. 고비를 따라온 친구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그물을 쳤어요. 조병갑 때문에 몸져누운 아버지의 몸보신을 위해 나선 왕발이, 부모님이 조병갑에게 맞아 죽어 친척 집에 얹혀사는 밥값을 내야 하는 대두. 그리고 조병갑이 시킨 고된 일을 하다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을 먹여 살리는 형에게 물고기를 선물하고 싶은 고비까지.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탐관오리의 횡포에 열세 살 소년 소녀들이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먹을 것을 구한다는 사실은 같았답니다.
그때 관아의 이방과 포졸들이 백유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와요. 물고기잡이에 여념 없던 고비는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가지요. 이번에도 역시나 이방은 억지를 부리며 죄 없는 백성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고비는 화를 참지 못해 물고기가 담긴 항아리를 이방에게 던지고, 포졸들은 어린 고비 대신 백유를 잡아가지요.
“당장 체포해. 나랏일을 방해한 죄, 관아에 덤빈 죄, 절대 넘어갈 수 없어!” (29쪽)
고부 봉기에서 우금티 전투, 태인 전투까지
열세 살 소년을 따라 생생히 마주하는 역사적 현장
동학은 조선 후기에 최제우가 만든 종교예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아 어렵게 사는 백성들의 삶을 구제하고, 동시에 서양 세력의 침략 위험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요. 동학은 핍박받던 백성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고, 동학교도들은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백유가 체포되고 며칠 뒤, 고부 관아는 동학교도와 농민들에 의해 불타올랐어요. 동학의 사상을 거스르고 백성의 노력을 가로챈 조병갑에게 들고일어난 것이지요.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지만 백유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는 말만 남긴 채 몇 달째 감감무소식이었지요. 형의 행방을 쫓던 고비는 말목장터에서 소식을 모으고, 황토현 전투를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황룡촌에 따라갔어요. 형을 찾아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많아지는 농민군을 두 눈으로 볼수록,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주할수록, 고비는 점점 형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침내 고비와 백유는 우금티 전투에서 만나고, 형제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또 한 번의 전투를 함께 준비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고비는 떨려오는 몸을 다잡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 주기 위해 깃발을 흔들며 크게 노래를 불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131쪽)
익숙한 노래에 담긴 가슴 아픈 역사
막을 내린 동학, 또 다른 시작이 되다
처음에 농민군은 조선 관군을 상대로 싸웠어요. 하지만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조선 정복을 위해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관군과 일본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군과 싸우게 되지요.
“맞아. 예전에는 관도가 내 머리를 태웠는데, 이제는 일본 놈이 내 머리를 태우려고 하잖아. 우리를 못살게 구는 탐관오리와 양반 그리고 일본 놈들까지 몰아내야 해.” (92쪽)
고비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전투를 준비하며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노래를 불러요. 이 노래는 단순히 농민군의 힘을 돋우기 위한 노래가 아니었어요. 일본군을 뜻하는 파랑새가 동학 농민군을 뜻하는 녹두밭에 앉지 않기를 바라는, 농민군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노래였지요.
주인공 동고비와 동백유의 이름에도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했던 백성들의 마음가짐이 담겨 있어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진흙을 메워 가며 둥지를 짓는 새 동고비처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길을 안내하는 동고비가 되길. 어둠을 밝히는 동백기름처럼, 어둠으로 뒤덮인 조선을 구하는 동백유가 되길 바란 것이지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동학 농민 운동은 농민군의 패배로 끝이 났어요. 수만 명의 조선군이 무기 열세로 몇천 명의 연합군에게 전멸하다시피 했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굴하지 않았어요.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여기며, 이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맞서 3·1 운동을 벌였지요. 《녹두밭에 앉지 마라》를 통해 암담한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품을 수 있기를, 아쉬운 결과를 맞이해도 긴 여정에서 도약하기 위한 한 단계라고 생각하는 깨달음을 얻기를 바랍니다.
가깝지만 먼 〈근현대사 100년 동화〉 시리즈
〈근현대사 100년 동화〉는 가깝지만 먼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동화로 담은 시리즈예요. 잘 몰랐지만 꼭 알아야 할, 알고 난 후에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우리 근현대사의 10가지 사건을 소개하지요. 지금의 우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사건들을 통해 과거를 바로 보고, 현재를 다시 보아요.
●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녹두밭에 앉지 마라》
●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 1919년 3·1 운동 《3·1 운동 일기》
● 1923년 관동 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괴물들의 거리》
● 1943년 일제 강제 징용 《지옥의 섬, 군함도》
● 1948년 제주 4·3
● 1950년 6·25 전쟁
● 1960년 4·19 혁명 《4월의 소년》
● 1970년 전태일 열사 사건 《11월 13일의 불꽃》
●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 글 손주현
대학에서 국어와 예술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린이 학습과 관련된 회사도 다녔습니다. 어린이와 함께하는 것을 더 찾아보다 동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가 옛것을 통해 바른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지요. 《창경궁에 꽃범이 산다》로 제23회 MBC 창작동화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지은 동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 잡는 감찰 궁녀》, 《조선 과학수사관 장선비》, 《백제의 신검 칠지도》 등이 있고, 《동물원에서 만난 세계사》, 《요리조리 세계사》 등의 정보책도 있습니다.
▶ 그림 신슬기
그림 그리기와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에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마음을 여는 열쇠 수리공》, 《햇빛 에너지 마을에 놀러 오세요》, 《무서운 놈》, 《비밀 전학》, 《그래, 네가 바로 우주야》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