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갔던 곳을 저도 가고 싶어요.
선생님이 보았던 것을 저도 보고 싶어요.""
어느 날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너도 할 수 있단다, 얘야.
여행에서 중요한 건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란다.""
늙은 여행자는 두 눈을 빛내며 말했습니다..
―본문 <여행자의 보물> 중에서-
<이븐 바투타의 여행> 14세기 모로코 탕헤르의 전통적인 이슬람 명문사족 가문에서 태어난 이븐 바투타는 약 30년 동안 12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행을 했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대륙에 걸쳐 거의 모든 이슬람 국가들과 중국, 러시아 초원에서 탄자니아 해안까지 여행한 그의 모험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모험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1997년 미국의 '라이프'지는 인류의 지난 1,000년을 만든 위인 100명 선정에서 여행가로는 이븐 바투타와 마르코 폴로를 뽑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비하면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얼마 전 국내에서 <이븐 바투타 여행기1·2> 완역본이 출간되었지만 그 방대한 분량의 책은 어른이 다가가기에도 쉽지 않다. 그러나 제임스 럼포드는 세세한 여행의 기록을 넘어 이븐 바투타가 진정 여행을 통해 느낀 감정들과 여행 그 자체의 참뜻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서 방대한 여행기를 어린이책으로 탄생시킨다.
<제임스 럼포드가 탄생시킨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여행이란 여러분을 외롭게도 하고, 친구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여행이란 여러분에게 수많은 모험의 길을 보여 주고, 여러분 마음에 날개를 달아 줍니다.""
""여행이란 여러분의 느낌을 표현할 수 없게 했다가 나중에는 여러분을 이야기꾼으로 바꿔 줍니다.""
""여행이란 여러분에게 수백 개의 길을 보여 줍니다.""
""여행이란 수많은 낯선 곳을 고향처럼 느끼게도 해 주지만, 고향에 가면 이방인처럼 느끼게도 합니다.""
지구가 평평하고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때, 이븐 바투타라는 소년이 지구의 끝인 어둠의 바다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어둠의 서쪽 세상을 벗어나 동쪽 세상으로 가는 꿈을 꾼다. 수많은 밤 상상의 배를 타고 간절한 마음으로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곤 했던 소년은 마침내 스물한 살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룬다. 제임스 럼포드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임스 럼포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면서 예술과 역사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작가이다. 12개국 이상의 말을 공부한 그는 평화봉사단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아시아,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한 후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럼포드는 1355년 이븐 바투타가 궁정서기인 이븐 주자이에게 들려 준 이야기를 토대로 페르시아 세밀화처럼 다채롭고, 모로코의 타일 벽처럼 신비롭게 이븐 바투타의 모험을 이 책에 녹여 낸다. 먼저 표지를 보자.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미색 바탕에 금빛 말과 그 말을 타고 있는 이븐 바투타. 그리고 빨간 별로 표시된 도시들. 이는 이븐 바투타가 앞으로 여행할 그 머나먼 길의 광활함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표지를 넘기면 면지가 나온다. 여기서 12장의 스냅 사진과 같은 그림이 양면에 걸쳐 펼쳐지는데, 이는 여행의 기록을 더욱 생생하게 전해 주고자 하는 제임스 럼포드의 재치있는 연출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본문에서는 갖가지 독특한 액자 형태를 통해 중요한 사건을 강조하고, 빨간 별(여행한 도시)을 따라가고 있는 띠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 페이지마다 아랍 고유의 문양과 문자, 무늬 등이 화려하고 강렬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색감 또한 금빛의 채색으로 화려함을 더욱 강조하거나, 붉은 색과 푸른색의 극적인 대비로 서술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장식적 요소는 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을 풍부히 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본문 마지막 장에 각주로 설명되어 있다.) 특히 1325년 세계 지도나, 모로코 지도는 저자가 직접 고(古)지도를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그 시대의 이슬람 지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이븐 바투타가 중국에 도착한 장면은 동양화 특유의 수묵담채화를 연상케 하며 곳곳에 한문을 배치시키는데, 이는 제임스 럼포드가 동양인이 아님을 미루어 볼 때 상당한 공부와 자료 조사를 거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과 의상, 모습 등은 위의 사진 자료에서 보듯이 럼포드가 직접 보고 그린 수많은 스케치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세기의 여행자 이븐 바투타에 대한 제임스 럼포드의 열정의 결정체다. 제임스 럼포드를 통해 이븐 바투타의 이야기는 오래 전에 사라진 여행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생을 여행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로 우리 가슴속에 기억될 것이다. 어린 독자들은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이븐 바투타와 여행을 함께 할 수 있고, 고학년 이상 독자들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은 2001년 중동도서상 우수상, 2002년 로버트 F. 시버트 정보책상 어너상을 받았고, 2001년 미국 도서관 협회의 '주목할 만한 책', <스쿨라이브러리 저널>의 최우수 도서, 뉴욕 공공도서관의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에 선정.
제임스 럼포드
제임스 럼포드는 아프리카, 아시아,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한 특이한 그림책 작가이다. 한 주제를 잡으면 열정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이 책 외에도 <구름을 만든 사람들> <은바늘이 헤엄칠 때 > <별 아래 섬> <지식을 찾는 사람> 등이 있다.
김경연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김경연 선생은 ‘독일 아동 및 청소년 아동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문학관련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동문학가이며 번역가인 선생은 많은 어린이책 번역하고 좋은 외국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행복한 청소부』『바람이 멈출 때』『애벌레의 모험』『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여우를 위한 불꽃놀이』『신나는 텐트 치기』『생각을 모으는 사람』『잠자는 책』『루카―루카』『빨간 나무』등이 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낙타 타고 중세 아랍으로"" (동아일보 2003년 8월 9일)
이슬람? 아이가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을 나이는 지났다. 이 아이에게 이슬람 세계에 대해 뭔가 얘기해 주고 싶다면 권할 만한 책이다.
이븐 바투타(1304∼1368)는 모로코 출신의 여행가로 30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장장 10만여km를 여행했다. 바투타가 대탐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 문명의 전성기에 많은 학자와 여행가 상인들이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귀중한 기록물을 많이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700년 뒤 미국의 그림책 작가 제임스 럼포드는 바투타의 여행담을 글과 그림으로 다시 들려준다. 12개국 이상의 말을 공부하고 아프리카 아시아를 여행한 럼포트는 바투타가 남긴 여행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아름답게 되살려 냈다. 독자들은 바투타와 함께 다채롭고 신비로운 아라비아 지도와 문자, 무늬, 그림을 감상하며 중세 이슬람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책을 펴면 처음 세계지도가 나오는데 바투타가 여행을 시작한 1325년 지도다. 그리고 바투타가 여행을 떠난 모로코 탕헤르부터 하얀 띠가 나타나기 시작해 여행을 마칠 때까지 이어진다. 하얀 띠에는 간단한 줄거리가 씌어 있으며 바투타가 머무르는 곳에서는 하얀 띠가 액자모양으로 바뀌어 좀더 많은 내용이 담겨진다. 독자는 바투타와 함께 하얀 띠를 따라 이동하면서 여행하면 된다.
나일강을 건너고 예루살렘을 지나 델리에서 살고 다시 몰디브에서 머무르다 중국에 다다른다. 여기에 죽음의 고비 같은 모험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여행가 바투타는 곳곳에서 여행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깨달음을 토로한다. '여행이란 여러분을 외롭게도 하고 친구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여행이란 여러분에게 수많은 모험의 길을 보여주고 여러분 마음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여행이란 여러분의 느낌을 표현할 수 없게 했다가 나중에는 여러분을 이야기꾼으로 바꿔 줍니다' '여행이란 수많은 낯선 곳을 고향처럼 느끼게 해 주지만 고향에 가면 이방인처럼 느끼게도 합니다'.
모로코 술탄(통치자)의 부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바투타는 여행에서 겪은 얘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선생님이 갔던 곳을 가고 싶다""는 한 아이에게 늙은 여행자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너도 할 수 있단다, 얘야. 여행에서 중요한 건 첫걸음을 내디디는 것이란다.""
럼포드는 글과 그림 곳곳에 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 한문을 배치하는데 그가 서양인임을 감안할 때 상당한 자료조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 권말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글과 그림에 나온 사람 장소 사물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더 나아가 역자와 편집자는 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 한문의 출처와 풀이를 다는 성의를 보였다. 1325∼54년 행로를 나타내는 지도도 넣었다.
바투타의 행로를 따라 읽으며 앞뒤 표지 안에 넣은 스냅사진 같은 그림들을 비교해 보노라면 그동안 낯설게 여겨졌던 이슬람 세계가 한층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 김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