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할머니와 잭은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술래잡기도 하고, 하하 호호 바닥을 뒹굴며 놀기도 한다. 너무나 다정해 보이는 이 두 사람은 어쩐지 쏙 빼닮았다.
먹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내리는 어느 금요일, 할머니와 잭은 감자 인형을 만든다.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 둘은 함께 있어 행복해 보인다. 잭과 할머니도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잭은 오지 않는다. 금요일이 몇 번이나 지났지만 잭은 오지 않는다. 잭이 남기고 간 감자 인형, 아니 잭과 할머니가 함께 만든 감자 인형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차츰차츰 시들해지고 차츰차츰 쭈그러져만 간다. 점점 보기 흉할 정도로 감자 인형은 변해 간다. 하지만 그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할머니와 잭이 만드는 비밀스런 금요일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보자.
감자를 캐며 행복을 캐다
풍만한 몸매에 파란 색 꽃무늬 원피스, 빨간 구두에 휘날리는 파마머리까지 한 눈에 봐도 발랄하게 보인다. 바로 잭의 할머니다. 이런 할머니와 함께 하는 건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감자를 가지고 인형 만든다. 노끈으로 땋은 머리도 만들고, 예쁜 천으로 치마도 입히고, 병뚜껑으로 모자도 씌우고, 압정과 이쑤시개까지 동원해 멋진 남자 감자 인형과 여자 감자 인형을 만든다. 할머니는 여자 감자 인형, 잭은 남자 감자 인형. 인형들도 웃고, 잭과 할머니도 웃는다. 둘이 함께 있는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얼마 후 잭은 오랫동안 할머니 집에 오지 못하게 된다. 할머니는 몇 번의 금요일이 되도 오지 않은 잭의 빈자리가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 빈자리의 아픔은 감자 인형을 통해 외형의 변화로 표현된다. 머리와 온몸에 뿔(싹)이 나기 시작하고, 귀엽고 깜찍했던 감자 인형들은 이제 더 이상 행복한 감자 인형들이 아니다. 꼭 잭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어딘가에서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할 잭의 모습 같다.
결국 뿔이 난 감자는 어쩔 수 없이 땅에 묻히게 되지만, “세상에나! 세상에나! 세상에나!” 할머니도 놀랄 정도로 쑥쑥 자라난다. 그리고 또 다시 많은 감자들을 만들어 낸다. 네 알의 감자가 수백, 수천 알이 되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태어난다. 바로 사랑과 우정도 아픔과 시련을 겪으면서 더 깊어지고 커지는 것처럼.
말라 죽어 있는 감자 줄기를 보면서 그 땅속을 파 볼 수 있었던 것은 둘이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땅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이나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해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함께 보이지 않는 행복을 캐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둘은 함께 희망과 커져있는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흐린 날씨에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감자를 캤던 즐거운 표정의 할머니와 잭처럼, 우리 아이들과 콧노래를 부르며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할머니의 감자>는 감자를 소재로 하여 할머니와 손자(세대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재치 있게 포착해 군더더기 없이 유쾌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특히 감자에 싹이나 쭈글쭈글해지고 엉망이 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점층적으로 강조해서 표현한 장면은 파멜라 엘렌 특유의 오랜 그림책 경험과 재치 있는 유머를 엿볼 수 있다.
파멜라 엘렌
1934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둘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린이 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엘렌은 지금까지 2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아르키메데스의 목욕>은 엘렌의 첫 번째 어린이책으로 1980년에 출간되었다. 엘렌은 <누가 배를 물에 빠뜨렸지>, <버티와 곰>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CBC 그림책 분야에서 1982~1983년 연속해서 상을 받았다. 또 <한밤중의 사자>로 뉴질랜드 도서관 협회에서 주는 러셀 클락 상의 일러스트레이션 부분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수상했다.
엄혜숙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했고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기획 편집자, 번역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아르키메데스의 목욕>, <박물관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등이 있고, 직접 쓴 책으로는 청소년 문학 가이드 <보름간의 문학여행>과 그림책 <낡은 구두 한 짝 무얼 할까?>, <두껍아 두껍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