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또 다른 날
<오늘의 일기>는 한 아이의 하루 생활을 다룬 이야기이다. 매일 반복되는 아이의 일상을 단순하게 나열해 놓았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느 날과 다른 특별한 하루가 숨어 있다. 과연 그게 뭘까?
하나, 황당한 상상력의 세계로의 초대
황당한 상상력이라고? 이 말을 이해하려면 우선 첫 장부터 펼쳐 봐야 한다. 첫 장을 펼치면 눈을 동그랗게 뜬 한 아이가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옆에는 어디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뛰어나옴 직한 아저씨가 시끄럽게 쇠망치를 두들기고 있다. 도대체 왜? 아저씨가 두들기는 쇠망치 소리는 다름 아닌 6시 30분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이다. 아마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는 쇠망치를 두들기는 소리만큼 크고 무시무시하게 들리지 않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아이는 걸어서 내려가는 대신 새 모양의 갑옷을 입고 날아서 밑으로 향한다. 힘겨운 계단을 한 번의 날갯짓으로 해결해 버린다.
점심시간과 수업 시간에도 즐거운 상상 놀이는 계속된다. 아이들은 화려한 만찬이 차려진 학교 식당에서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웨이터 아저씨의 정중한 시중까지 받으며 점심을 즐긴다. 또 도서관 수업 시간에는 해적 모자를 쓴 선생님의 지휘 아래 책으로 만든 배를 타고 흥미진진한 해적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작가는 왜 다소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하루를 펼쳐 놓았을까?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영 개운치 않다. 작가의 이런 상상 뒤에는 우리 아이들의 하루가 결코 이렇게 신나고 즐겁지 않다는 또 다른 반어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둘, 상상력 속에 숨겨진 유쾌한 웃음
입맛이 없다는 아이의 아침 식탁을 보자. 글에서는 고작 삶은 달걀 한 개라고 했는데 식탁 위에는 어른보다 더 큰 달걀이 떡하니 놓여 있다. 과연 입맛이 없는 아이만이 느낄 수 있는 아침 식탁의 풍경이다.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동네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 역시 만만치 않다. 웬 공룡 한 마리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세상에 공룡이라니? 나이가 많다는 것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가의 재치가 엿보인다.
새로 전학 온 친구도, 학교까지 데리러 온 엄마의 코끼리 차도, 아빠가 만든 불타는 카레도 작가는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글과 그림의 독특한 만남 앞에서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넘길 것이다.
■ 아이들이 꿈꾸는 오늘은?
요즘 아이들의 하루는 어떤가? 엄마의 잔소리에 겨우 일어나 빈속으로 간신히 교문을 통과해서 학교 끝마치기 무섭게 학원 두세 군데를 돌면서 바깥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캄캄해지면 집에 돌아와 파김치가 된 몸으로 잠자리에 들지 않는가? 당연히 이런 아이들의 하루는 어른들보다 더 바쁘고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들에게 오늘은 어제와 똑같은 날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일기>의 하루는 다르다. 그 속에는 아이들이 꿈꾸는 또 다른 세상이 숨어 있다. 잔소리 대신 장난 같은 몸짓으로 나를 깨워 주는 어른, 날아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집, 따분한 이론 대신 실험으로 채워지는 과학 시간, 흥미진진한 우주 이야기가 함께하는 점심시간, 책으로 배를 만들고 떠들썩한 해적 놀이까지 즐길 수 있는 도서관, 포근하게 온몸을 감싸 줄 것 같은 애완동물 사자까지. 날마다 오늘 하루가 이런 것들로 꾸며진다면 매일매일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울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자신이 원하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원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꿈꾸는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로드 클레멘트 글 그림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어린이책 작가로 유머 넘치고 엉뚱하고 과장된 그림들이 매력적이다. 또, 동물 세계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일러스트레이터로도 유명하다. 작품으로는 <박물관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할아버지 틀니> <에뮤 에드위나> <에뮤 에드워드> 등이 있다. 199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책위원회의 상을 받았다.
김경연 옮김
서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일 아동 및 청소년 아동 문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일 판타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주제로 박사 후 연구를 했다. 옮긴 책으로는 <행복한 청소부> <바람이 멈출 때> <귀를 기울이면> <빨간 나무> <엘리베이터 여행> <책 먹는 여우> ‘핀두스의 특별한 이야기’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어린이 책]무릎에 사자 앉히고 책 읽었어요…‘오늘의 일기’
◇오늘의 일기/로드 클레멘트 글 그림·김경연 옮김/32쪽·9000원·풀빛(초등학교 저학년)
○월 △일 곱슬머리 왕눈이의 일기.
아침 6시 30분.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거인이 자명종을 울려 깨워 줬다. 멋진 갑옷으로 갈아입고 공룡이 모는 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과학 시간엔 종일 실험을 했다. 파리 선생님이 어려운 책은 볼 필요 없이 실험만 잘하면 된다고 하셨다. 오후엔 도서관에서 빌롭스 선생님이 읽어 주시는 해적 이야기를 들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엄마가 코끼리를 타고 데리러 오셨다. 저녁땐 소방관 아저씨가 불을 끄러 들렀다. 아빠가 저녁 식사로 카레를 만들었는데 하도 매워서 불이 났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사자를 무릎에 앉히고 난로 옆에서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곱슬머리 왕눈이의 엉뚱한 하루 일과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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