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의 웅장한 산맥, 후설의 현상학
많은 연구자들은 후설의 현상학을 전통적인 의식 철학의 한 유형으로 간주하면서 현상학과 그 이후에 등장한 다양한 유형의 현대 철학 사조를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설은 헤겔의 관념론이 붕괴한 후 철학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20세기 초에 “철학이란 모든 것의 뿌리를 다루는 학문이다.”라는 철학의 근본적인 이념을 부활시키며 현상학을 전개해 갔다. 이렇게 등장한 후설의 현상학은 사변적인 방법에 치우쳤던 헤겔의 관념론이나 실증 과학의 방법에 의지하면서 철학이 다루어야 할 본래적인 사태를 직시하지 못하는 실증주의 철학과는 달리 철학이 다루어야 할 사태 자체로 눈을 돌리고자 한 철학이다.
후설은 평생에 걸쳐 “사태 자체로” 다가가기 위해서 현상학적 심리적 환원,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 생활 세계적 환원 등 다양한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현상학을 전개시켜 나갔고 이를 통해 현대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후설은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등의 현상학뿐 아니라 철학적 해석학, 생철학, 비판 이론, 탈현대 철학, 분석 철학 등 다양한 현대 철학 사조의 전개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점에서 후설의 현상학은 현대 철학의 여러 준봉 중의 하나의 준봉이 아니라, 수많은 준봉들을 품고 있는 웅장한 산맥과도 같다.
현상학과 여러 현대 철학과의 관계를 심층적이고 독보적으로 해석
이 책은 후설의 현상학과 철학적 해석학, 생철학, 비판 이론, 탈현대 철학 등 다양한 현대 철학 사조 사이의 관계를 해명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후설의 기분의 현상학, 상호주관성의 발생적 현상학, 세대간적 현상학 등의 문제를 다루고 이를 통해 후설의 현상학이 전통적인 의식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 주면서 그 이후에 수록된 논문들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제2부는 후설의 현상학의 실천적 측면과 비판적 합리성의 문제를 다루고 이를 통해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하버마스 등의 철학자가 후설의 현상학에 대해 가하는 비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후설의 현상학과 비판 이론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고 있다.
제3부는 딜타이의 생철학에 대한 후설의 비판, 후설의 현상학이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미친 영향, 후설의 현상학적 입장에서 볼 때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 등을 해명하면서 후설의 현상학과 생철학 및 해석학 사이에 현상학적 해석학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제4부는 다원성의 문제와 타자의 문제를 조명하면서 소위 탈현대 철학의 주창자들이 후설의 현상학에 대해 가하는 비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해 후설의 현상학에 그 어떤 유형의 탈현대 철학보다도 더 뚜렷하게 탈현대적 계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제5부는 질적 연구와 인성 교육의 문제를 다루면서 후설의 현상학이 인접 학문의 철학적 토대와 관련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해명하고 있다. 인접 학문의 철학적 토대와 관련된 논의는 현대 철학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인데, 후설의 현상학은 이 점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상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접 학문의 철학적 토대에 대한 논의는 응용 현상학의 과제에 속하는데, 독자들은 제5부를 읽어나가면서 응용 현상학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다른 어떤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중요하고 많은 사실들을 해명하고 있다. 감정의 현상학, 상호주관성의 발생적 현상학, 세대간적 현상학 등 후설의 현상학의 새로운 측면들, 다방면에 걸쳐 확인할 수 있는 후설의 현상학과 다양한 현대 철학 사조 사이의 밀접한 관계, 후설의 현상학이 인접 학문의 철학적 토대를 위해 지니는 결정적인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해명한 책은 국내학계에서뿐만 아니라, 국제학계에서도 처음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 중 일부는 이미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국제학계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후설의 현상학뿐만 아니라 후설의 현상학과 관계된 다양한 현대 철학 사조에 대해 보다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후설의 현상학과 다양한 현대 철학 사조 사이에 보다 더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여러 현대 철학의 사조를 현상학과 접목시키고자 시도한 이 책은 21세기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남인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부퍼탈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50회 대한민국학술원상(인문사회과학분야, 2005), 철학연구회 논문상(1994), 1991년도 독일 Wuppertal 대학교 최우수 박사학위논문상(1992)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Edmund Husserls Phanomenologie der Instinkte(Dordrecht/Boston /London: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3, Phaenomenologica Bd. 128), 『현상학과 해석학』(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가 있으며 「상호주관성의 현상학: 후설과 레비나스」, 「감정의 현상학: 후설과 레비나스」, “Unterschiedliche Problemfelder einer Phanomenologie der Intersubjektivitat”, “Das An-sich Sein und verschiedene Gesichter der Welt”, “Edmund Husserl's Phenomenology of Mood”, “Practical Intentionality and Transcendental Phenomenology as a Practical Philosophy”, “Static-Phenomenological and Genetic-Phenomenological Concept of Primordiality in Husserl's Fifth Cartesian Meditation” 등 다수의 논문을 국내학술지와 국제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철학과 현상학 연구』, 『철학』 등을 비롯한 몇몇 국내학술지와 Continental Philosophy Review(Kluwer Academic Publishers), The New Yearbook for Phenomenology and Phenomenological Philosophy(Noesis Press), Phenomenology and Cognitive Sciences(Kluwer Academic Publishers), Orbis Phaenomenologicus(Konnigshausen & Neumann) 등을 비롯한 몇몇 국제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