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베두인” 카를로 베르크만
-자유란 축적하는 데 있지 않고 사막처럼 비우는 데 있다
사막의 주민들은 카를로 베르크만을 “최후의 베두인”이라고 부른다. 베두인은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가 베두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이유는 대부분의 베두인이 사막 밖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한 현재에도 그는 여전히 낙타와 함께 사막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막을 자기 삶의 꿈으로 여겼다.
그가 처음으로 사막을 접하고 사막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이집트로 범선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크레타 상공을 지나고 북아프리카 해안이 나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사막을 보게 되었다. 땅으로 점점 번져 나가는 빛바랜 노란색을 얼마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그 위로는 비포장도로의 가는 선들이 여리고 다정한 듯 보였다. 저렇게 넓은 데가 있다니! 단조롭게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면 볼수록 나는 점점 더 흥분되었다. 사막은 전혀 황무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겐 오래전부터 친숙한 땅처럼 보였다. 고향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사막과 인연을 맺은 베르크만은 1982년 겨울, 북부 코르도판에서 상이집트로 가는 대상 행렬과 함께 사막을 횡단한다. 그 과정에서 베르크만은 사막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대상 행렬의 규율을 익히기도 하며, 낙타몰이꾼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리고 낙타의 되새김질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 점차 ‘사막의 배’ 낙타와 친숙해진다. 이러한 사막에서의 생활을 통해 베르크만은 문명 사회의 꽉 짜여진 일상과는 다른 삶에 대한 대안을 발견한다.
성공의 좁은 길만 뻗어 있는 일상에 대해 나는 점점 더 거리감을 느꼈다. 그래서 빨리 결정을 내렸다. 우선 싼 집으로 이사하고 생활비를 최소로 줄였으며, 생명보험에서 주택부금에 이르기까지 쓸데없는 것들을 몽땅 내던져 버렸다. 다시 이집트에 도착하여 낙타와 함께 있게 되자, 내가 제대로 처신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사막이 죽은 듯 굳은 듯 모래와 돌만 있는 풍경일지라도 내겐 그야말로 복음과 같았다. 자유란 축적하는 데 있지 않고 사막처럼 비우는 데 있다는 복음 말이다. 사람들은 물건들을 계속 축적하면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물건들이야말로 한 인간의 여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을 횡단한 대상 행렬과의 첫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베르크만은 이제 혼자만의 사막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 여행은 단순한 사막 횡단이 아닌, 사막 곳곳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사막에 숨겨진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떠나다
-사막은 내 판타지를 위한 마르지 않는 그릇이다
이집트, 수단, 리비아가 만나는 삼각형 지대에 있는 제벨 우와이나트에는 이곳이 과거 만 년 동안 동사하라의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문화적 보고였음을 증명해주는 예술품들이 풍성하다. 베르크만은 1986년 겨울에 이곳으로 직접 암각화를 보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간다. 바위에 그려진 암석벽화들은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보고이다. 이를 통해 한때는 초지였던 사막에서 고대인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생활했는가를 알 수 있다.
베르크만은 사막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형상의 암석벽화를 통해 고대 문명의 단면을 밝혀내고자 했다. 그래서 아라비아에서도 “불바다”로 통하는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선 그는 모래폭풍과 변덕스러운 날씨, 험한 비탈길과 구릉지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강도떼의 위협과 끝없이 펼쳐진 모래바다를 뚫고 옛 길의 흔적들을 찾아다닌다.
나는 바위와 틈새와 돌출 암벽을 조사하고, 가젤영양과 산양과 기린 떼, 오리, 타조, 뿔이 긴 소의 그림을 사진 찍었다. 돌에 새겨진 짐승과 짐승을 돌보는 여자, 목동, 사냥꾼의 그림이 계속되고 있어서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몇 걸음 더 나아가니 동굴처럼 우묵하게 패인 곳의 입구에 춤추는 전사들이 그려져 있었다. 전사들은 팔을 치켜들었다. 한 명은 손에 창을 들었다. 이 그림은 강하고 행복한 시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기막힌 조화 때문에 특별한 미적 매력을 풍겼다.
이 일대에 인간들이 살았다는 걸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록 문자를 알지 못했어도, 자신과 연관되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건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암석에 새겼다.
고대인들의 삶의 흔적을 담고 있는 사막을 베르크만은 ‘내 판타지를 위한 마르지 않는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이나 ??천일야화??에 나오는 이야기, 또는 선배 탐험가들의 보고 등과 자신이 발견한 암석벽화들을 토대로 고대의 무역로와 이동 수단, 이동 방법 등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1999년 겨울, 다시 사막으로 떠난다.
점토 항아리 루트의 수수께끼를 풀다
-죽은 듯 굳어 있는 땅 사막을 돌아다니는 것은 거대한 야외 박물관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베르크만은 게오(GEO) 잡지사의 지원을 받아 “항아리들의 원조” 지역인 아부 발라스로 자신의 가설을 확정해줄 고대의 점토 항아리를 찾아 다시 뜨거운 사막 속으로 들어간다. 옛 길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사막 곳곳에 놓여 있거나 쌓여 있는 점토 항아리의 생성 연대를 확인하고, 그 항아리의 기능을 밝혀내며 베르크만은 계속 나아간다.
나귀가 묘사된 단지 표면의 오목한 곳에 모래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림이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손으로 모래를 파냈다. 이게 뭐지! 내 가운뎃손가락에 뭔가가 닿았다. 엮어서 짠 얇은 끈이었다! …… 혹시 모래 속에 나귀의 마구 일체에 대한 증거가 파묻혀 있지 않을까?
비문을 바위에 새기려고 하다가 나는 거의 닳아 없어진 나귀의 윤곽이 있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 아래쪽의 모래에 처박힌 석판에 이런 종류의 또 다른 그림이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보았다. …… 대단한 개가를 올렸다! 므리에서 무하타 야콥까지의 대상로 전체를 각 미터별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왕국 때 이미 완전히 말라버린 사막을 관통하는 길, 무척 긴 이 길에 나귀가 다녔을 거라는 추측을 사실로 입증해줄 수 있는 사진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옛 대상로는 마치 갈퀴로 그은 것처럼, 돌과 바위가 있는 땅에 가느다란 직선으로 나 있었다. 그 누구든 이것이 낙타 대상로가 아니라 나귀 대상로라는 걸 확신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점토 항아리가 있는 장소들을 잇는 루트를 따라가면서 그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시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데 이용한 수단이 낙타가 아닌, 바로 ‘나귀’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를 통해 베르크만은 이집트 고고학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겨울 뜨거운 사막과 고고학의 세계로 떠나다
-사막은 나의 갈망이 숭고한 것을 만나고, 무한한 존재의 전능함을 손으로 만져보는 접촉의 장소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바다 사막의 매력에 흠뻑 취해 사막에 발을 들여놓은 카를로 베르크만은 자신의 관심사를 사막 자체에 한정시키지 않고, 그 사막이 품고 있는 고대 문명의 생생한 보고(寶庫)로 넓히면서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막 횡단 수단과 경로를 밝혀낸다. 《최후의 베두인-사막의 비밀을 찾아서》는 그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사막 기행문이 아니다.
또한 베르크만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사막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자신의 행렬을 위협하는 모래폭풍과 변덕스러운 사막의 날씨 등을 섬세한 비유적 표현들에 담아 전달한다. 그리고 그가 만난, 더 이상 사막에서 살진 않지만 여전히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베두인의 ‘후예들’로부터 배운 문명 사회의 삶과는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깨달음도 들려준다. 그는 ‘독자를 베두인의 문화나 사막의 광활함과 고독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이야기꾼’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사막을 돌아다니고 있다.
“최후의 베두인” 카를로 베르크만과 함께 이 겨울, 뜨거운 사막과 고고학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카를로 베르크만(www.carlo-bergmann.de)은 1948년 출생했고, 독일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카이로에 갔다. 1982년 수단에서 출발한 첫 대상 행렬의 체험 이후 한해의 절반을 사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사막에 정통한 전문가라는 명성도 얻게 되었다. 사막의 문화와 주민들, 그리고 자연 현상 등에 친숙한 덕분에 이집트학과 고고학의 능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낙타몰이꾼으로서도 자긍심이 대단하다. 현제 텔레비전 방송에도 출현하고 있으며, 게오(GEO)의 저명한 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모명숙은 독일 뮌스터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독문학)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강사와 출판사 주간을 지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하인리히 만의 소설 《머리》에 나타난 지성인 문제?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아인슈타인의 그림자》《바빌론 성 풍속사》《운명》《완손잡이의 뛰어난 우뇌 능력을 벤치마킹하라》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
들어가는 글
-북부 코르도판에서 상이집트로 가는 대상 행렬: 1982/1983년 겨울
- 불바다 속을 가다: 1986/1987년 겨울, 제벨 우와이나트 탐험
- 점토항아리 루트: 아부 발라스의 수수께끼, 1999년 초 1999/2000년 겨울의 탐험
한겨레신문 : '베두인'은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독일 출신의 경영학도로 1982년 범선을 타고 이집트로 여행을 떠났을 때 사막의 매력에 빠져든 뒤부터 사막에 숨겨진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다니는 지은이를 사막 주민들은 '최후의 베두인'이라 부른다.
지은이는 대상 행렬과의 사막 횡단 동행, 혼자만의 사막 여행 등 여러 차례의 사막 여행을 통해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막 횡단 수단과 경로를 밝혀낸다. 이 책에는 그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베르크만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사막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비롯해 자신의 행렬을 위협하는 모래폭풍과 변덕스러운 사막의 날씨 등을 섬세한 비유적 표현에 담아 전달한다. 또 사람들이 황무지처럼 여기는 사막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는지를 직접 찍은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베두인의 '후예들'로부터 배운, 문명 사회의 삶과는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깨달음도 들려준다. - 윤영미 기자 (200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