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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소통으로 향하는 끝없는 질문과 대답 크게보기

의산문답, 소통으로 향하는 끝없는 질문과 대답

청소년 철학창고 34
저자

홍대용 지음

옮김

이종란 풀어씀

발행일

2015-07-20

면수

153*212

ISBN

244

가격

9788974747732 44150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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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醫山問答)》은 18세기 동아시아 사상계를 빛낸 뛰어난 학자이자 북학파 실학자였던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의 대표작이다. ‘청소년 철학창고’ 서른네 번째 책으로, 고전 읽기의 참다운 맛을 느끼고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원문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려 번역했다. 또한 읽기 편하도록 원본의 대화체를 극본체로 재구성하고 문단을 나누어 제목을 붙였으며,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과 그림, 도표를 작성하는 등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은 중국과 조선의 경계에 놓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을 배경으로 가상 인물인 ‘허자’와 ‘실옹’이 토론을 펼치는 대담 형식의 글이다. 주자 성리학에 매몰되어 객관적 진리를 보지 못하는 당시의 조선 지식인을 모델로 한 ‘허자’와 서양 과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학문을 터득한 ‘실옹’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홍대용 자신의 철학적 입장과 실학 정신, 과학 사상 등을 서술하고 있다. 30년의 독서를 통해 유학에 통달했다고 자처하던 허자가 실옹을 만나 지금껏 자부해 왔던 학문이 헛되고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는 내용이다. 실옹은 허자에게 사람과 만물이 똑같다는 인물균 사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역외 춘추론을 명쾌한 논리로 설명한다. 또한 우주론과 천체론을 비롯해 생명의 기원, 자연 현상이나 지구 생태의 근원, 유교의 장례 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논의를 벌인다.
책 곳곳에 오늘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 280여 년 전 홍대용이 고민했던 세상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의산문답》, 우주의 이치로 세상의 이치를 꿰뚫은 홍대용 사상의 결정체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저작집《담헌서(湛軒書)》에 들어 있는 유일한 소설로, 홍대용의 철학과 사상을 가장 독창적으로 드러낸 책이다. 홍대용이 이 책을 언제 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북경을 다녀온 뒤인 1766년 이후에 자신이 보고 들은 신세계의 경험을 토대로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당시 조선 유학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함께 홍대용 평생의 연구 성과들을 종합한 사상서라고 할 수 있다.
한자 1만 2천12자로 쓰인《의산문답》은  ‘허자(虛者)’와 ‘실옹(實翁)’이라는 두 가상 인물이 나누는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 가운데 ‘의산’이란 조선과 중국의 경계 지역에 있던 의무려산(醫巫閭山)의 준말로, ‘의산문답’은 바로 이 산에서 문답한 내용이라는 뜻이다. 30년 동안 유학을 연구해 자신의 학문에 자부심을 지닌 조선의 학자로 설정된 ‘허자’와 서양 과학을 받아들여 객관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실옹’이 학문에 관해 토론을 펼치는 형식의 글이다. 실옹은 허자를 향해 인간 중심주의를 부정하고, 화이(華夷)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별자리나 묏자리로 인간의 앞날을 점치는 미신적인 태도 등은 모두 헛되고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을 명쾌한 논리로 설명한다. 결국 홍대용은 허자를 통해 전통에 매몰되어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어진 조선 유학의 허구성을 상징적으로 보이고자 한 것이다.
《의산문답》의 주제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당시 조선의 주자 성리학자들처럼 우물 안 개구리로 고루하고 독선적이며 편협한 세계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학문, 특히 서양의 자연 과학에 대한 지식 등을 널리 받아들여 열린 학문 태도를 갖자는 것이다. 또한 지구 자전설과 무한 우주설, 수정된 사행설 등 다양한 자연 과학적 지식과 이론이 제시되어 있으며, 음양론이나 오행론, 풍수지리설과 점성술 등 전통적인 사상이나 이론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그 밖에도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 양명학, 생명의 기원, 신비한 대기, 태양빛과 음양의 조화, 바람?구름?눈 등의 자연 현상, 지구 생태의 근원, 법률, 유교의 장례 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렇듯《의산문답》에는 18세기 중반까지 전해진 동양과 서양의 중요 이론이나 사상이 홍대용 특유의 관점으로 종합되어 있다. 홍대용은 전반적인 사상의 전환을 꾀하면서 인간과 자연과 지구와 우주와 그 역사라는 거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며 새로운 사상과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  여러 분야를 통합해 시대의 통념을 뛰어넘는 혜안(慧眼)을 보여 준 지식인, 홍대용


《의산문답》을 쓴 홍대용은 북학파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인문학자이자 자연과학자로서 성리학, 천문학, 수학, 음악, 정치, 경제, 군사와 병법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여실히 드러낸 백과사전형 지식인이다. 그는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과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사회와 역사와 세계와 우주를 포괄하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했다.
홍대용은 과거 시험에 합격해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여느 유학자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남다른 뜻을 품었다. 이는 집안 어른들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것을 보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에 이름난 주자 성리학자였던 김원행(金元行)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경기도 남양주의 석실 서원에 들어가 오랫동안 공부했다. 석실 서원은 선비로서의 품성 연마를 중요시하고, 세속의 공허한 학문을 비판하고 실용적인 학술을 강조했으며, 자연 과학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배움터였다. 이곳에서 홍대용은 공허한 이론만 떠들어 대는 학문이 아닌 참된 학문의 길을 모색하고, 자연 과학적 소양을 계발하면서 학자로서의 삶을 지향했다.
그 뒤 실학자이자 문학가로서 훗날 많은 작품을 남긴 박지원(朴趾源)과 사귀면서, 서얼 출신으로 과거조차 볼 수 없었던 젊은 후배들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과도 친하게 지냈다. 모두 뒷날 북학파로 불리는 실학자들로 성리학보다는 실용적인 학문 연구에 더욱 주력하던 이들을 만나면서 아마도 홍대용의 마음에 주자 성리학만 고집하지 않는 태도의 변화가 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또한 홍대용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전남 화순에 은거한 과학자 나경적(羅景績)을 만나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함으로써 구체적인 결실을 맺었다. 혼천의는 우주와 지구와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기기로, 홍대용은 혼천의를 통해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지구라는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문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그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펼쳐 보았을 것이다.
이후 1765년 중국 사신의 수행원 자격으로 북경에 가서 다양한 문물을 둘러보고 여러 중국 학자와 인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류했으며, 서양 선교사들도 만나 보았다. 특히 서양 과학과 기술에 대해 물어보고 천문대?자명종?나침반 등을 구경했으며, 망원경을 통해 태양을 관측하기도 했다. 이 중국 여행은 홍대용의 생각과 관점이 확 바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홍대용은 부친의 삼년상을 마친 뒤 서울로 거처를 옮겨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다. 이즈음 박지원을 비롯해 젊은 지식인들과 어울려 다양한 분야를 함께 연구하고 토론했는데, 특히 홍대용의 중국 견문과 새로운 사상에 대한 모색이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 북학파 실학을 싹트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홍대용은 이처럼 과학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열정, 다방면을 아우르는 학문의 깊이와 폭넓은 관심, 모든 일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이해, 넓고 다양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 등을 갖추고 여러 분야를 통합해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는 높은 통찰력을 보여 준 18세기의 빛나는 지식인이다.


 ?  《의산문답》에 담긴 홍대용의 사상


홍대용은 중국 여행을 포함해 자신의 학문적 결실과 철학을 집대성해서 엮은《의산문답》을 통해 무수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먼저, 학문을 대하는 유연하고 열린 태도와 자세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허자는 홍대용이 서양 학문을 접하기 전 주자 성리학자로서의 모습 또는 사신 일행으로 중국을 여행하기 전까지의 모습을 상징하는데, 허자는 주자 성리학을 절대 진리이자 유일한 학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새로운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실학자)을 상징하는 실옹을 만나 서양 학문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주자 성리학에 여러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더불어 이단으로 여기던 노자와 장자의 사상, 양명학 등도 새롭게 바라본다. 이처럼 홍대용은 스스로 진리라고 여겼던 학문조차 성찰과 반성을 통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두 번째로는 당대 유학자들의 위선과 주자 성리학의 그릇된 말류(末流)를 비판한다. 이를테면 위선은 잘못된 학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허례허식을 마치 예의를 갖춘 것처럼 생각하거나 공자나 주자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겨 다른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유학의 본래 정신을 버리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것 등이 말류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사람과 만물은 동등하다는 인물균(人物均) 사상을 주장한다. 이는 만물이 동등하다는 상대적 가치관을 통해 화이론(華夷論)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상대적 가치관은 존재하는 만물 모두가 나름대로 다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의 존재나 원리만이 최고라는 것을 거부한다. 이런 상대적 가치를 더 밀고 나간 것이 세계의 중심은 없고, 우주의 중심도 없으며,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도 없이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화이일야(華夷一也) 사상이다. 홍대용의 이런 생각은 지구가 둥글며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자연 과학적 지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로는 서양의 새로운 자연 과학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사물과 자연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홍대용은 서양의 과학 이론들을 접하면서 음양 오행론을 비롯해 천원지방설, 분야설 등 전통적인 우주론과 천체론 가운데 많은 부분이 틀렸다는 확신을 갖는다. 물론 홍대용은 서양의 이론들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검증하려고 노력했으며, 비과학적인 이론은 수정하는 등 매우 합리적인 탐구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지전설과 무한 우주설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나온 믿음인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제안한다. 점성술이나 풍수지리설처럼 미신적인 요소를 지닌 이론들을 비판하는 근거는 사물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 홍대용은 학문적 또는 종교적 맹신이나 독선, 온갖 편견이나 그릇된 믿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그의 학문 자세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자세일 것이다.     
《의산문답》은 분명 과거인 18세기에 쓴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상들을 살펴보면 오늘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게 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문화란 서로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것인데, 남의 것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것이 최고라고 고집하는 것도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찬 자랑하려는 마음, 남을 이기려는 마음, 권세를 부리려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을 꾸짖는 또 다른 가르침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