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사상의 출발점,《고백록》
“내《고백록》13권은 나의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을 말함으로써 정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자극하여 하느님에게 향하게 하는 데 있다.”
427년에 완성한《재고록》에서 자신의 이전 저서《고백록》에 대하여 평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말은《고백록》이 어떠한 의도에서 쓰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사회가 석양에 지고 중세 사회의 태양이 지평선 위로 동터 오르던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살았다. 유럽의 고대 사회를 이끌어 갔던 로마 제국이 안으로는 경제 파탄과 정치 혼란으로 말기 증세를 드러내고 밖으로는 게르만족의 수많은 침략을 받는 등 나라 안팎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자, 당시의 사람들은 정신적인 방황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를 포함하여 종교에 더욱 강하게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는 암울한 시대를 구원하고 사람들의 정신적 방황을 해결해 주기에는 이론적인 약점이 있었고, 신학 이론을 둘러싼 내부적 분열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더구나 혼란한 세상에서는 올바른 사상보다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상이 득세하기 마련이어서 마니교나 점성술과 같은 여러 이단적인 종교와 사상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었다.
397년에 집필을 시작해 400년에 완성하기까지 약 4년여에 걸쳐 쓴《고백록》은 이와 같은 시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북아프리카의 항구 도시 히포의 주교로 임명된 뒤에 신성 문제와 세례 문제 등으로 분열되어 있던 가톨릭 교회의 일치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시기에 쓰여진다. 따라서《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33년간 살아온 방탕하고 무절제한 인생을 되돌아보는 개인적인 고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고백록》은 성직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자들을 하느님의 세계로 인도하고 성서와 신앙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올바르고 합리적인 신앙생활의 길잡이를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고백록》에는 기독교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삼위일체 문제, 천지 창조에 대한 해석 문제, 신의 절대성에 대한 이론적 해석과 예정설 등을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고백록》은 이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이며 중세 이후 기독교 사상의 기준이 되는 저서라고 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사상(헤브라이즘)과 그리스의 헬레니즘, 특히 플라톤 철학을 결합하여 기독교 사상의 체계를 이루는데, 이는 이후 서양 철학의 모태가 된다. 서양 철학이라는 강은 그리스 사상을 근원으로 하여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강줄기로 합류하고 다시 여러 갈래의 지류로 흘러간다고 비유할 수 있다.
하느님께 귀의하기까지의 긴 여정
원래《고백록》은 전체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1권에서 9권에 해당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하던 젊은 날에 대한 회상과 하느님에의 귀의를 다루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살았던 격정의 시대만큼이나 혼돈과 방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30여 년의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는 34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완전히 회심하기까지 마니교, 회의주의, 신플라톤주의 등의 사상적 여정을 겪었다. 또 육체적 쾌락의 늪에 빠져 한 여인과 오랜 동거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로 귀의하기 전까지 육체적 쾌락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시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이라는 구원의 빛에 도달하기까지 정신적 타락과 육체적 쾌락에의 탐닉, 그리고 진리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탐구심이 뒤섞인 정신적 굴곡의 시기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시기에 겪은 자신의 낯부끄러운 경험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방황의 시절을 극복하고 밝은 삶으로 인도해 준 하느님의 커다란 사랑과 인내를 더욱 뚜렷이 보여 주려 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공감대를 끌어내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하느님에게로 귀의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주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기억과 욕망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인적 사색을 펼치는 10권에 해당한다. 이 부분부터 13권까지는 앞부분과 확연하게 구별되는데, 주로《고백록》을 집필하던 당시의 신학적이고 이론적인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억에 대한 이론은 매우 독특하다. 기억은 망각조차도 기억하고 있을 만큼 엄청난 용량의 보물 창고로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을 뿐만 아니라 지식과 감각, 감정을 보관한다.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앎의 근원을 기억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기억은 보이지 않는 것조차 기억하는 위대한 힘으로서 자기 자신과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프로이트의 무의식 세계까지도 포괄하는 듯한 기억이라는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이라는 영적인 존재를 기억함으로써 결국은 하느님께 귀의하게 만드는 근거로 제시된다.
세 번째 부분은 11권에서 13권까지가 해당되는데, 천지 창조와 시간, 그리고 성서의 <창세기>에 대한 은유적 해석을 다루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겪은 신학 논쟁과 관련해 천지가 ‘하느님-하늘의 하늘-세계-땅-절대 무’라는 중층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이것들 중 하늘과 세계, 땅을 하느님이 창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이며 이런 초월적 존재를 매개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들은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는 삼위일체론을 주장한다.
이 부분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에게 이론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입장 표명의 장이자, 반론의 장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를 달리 해석할 수는 있지만 하느님의 절대성을 부인하지 않는 한 논쟁 상대 역시 하느님 안의 형제라는 관용적 태도를 강조하면서 하느님께 귀의하여 미래에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공유하자는 제안으로《고백록》을 마무리한다.
《고백록》,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
《고백록》의 라틴어 원제 ‘confessiones’는 고백이라는 뜻의 ‘confessio’의 복수형이다. 이는 《고백록》의 고백이 한 가지 이상의 뜻을 품고 있음을 암시하는데, 이 책에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고해, 신에 대한 찬양, 창조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고백록》은 자신의 방황하던 젊은 날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인간과 신에 대한 성찰, 그리고 신에 의한 구원과 그에 대한 찬양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영혼과 육체, 욕망과 절제, 현세적인 삶과 영원불멸의 삶, 인간의 한계와 대비되는 절대자의 문제 등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진실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고백록》은 기독교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뛰어넘어 진리를 추구하고 삶을 고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고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동안 출간된《고백록》은 주로 기독교 서적으로 인식되어 서양 사상의 원류라는 색채가 상당히 퇴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 철학창고《고백록,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은 이런 오해와 잘못을 벗어나서 삶을 고뇌하는 사람, 특히 청소년에게 삶과 영혼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예를 들어, 13권으로 이루어진 원문을 과거에 대한 고백과 하느님에 대한 찬미, 기억에 대한 현재적 사색, 시간과 창조에 대한 철학적 탐색이라는 변별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세 개의 부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부와 각 장의 시작 부분에 그 내용을 요약하여 실어서 청소년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최대한 쉽도록 하였다.
한편 원전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반복되거나 긴 부분은 생략하거나 줄이고 이해하기 어렵거나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조정하여《고백록》을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통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및 사상,《고백록》이 서양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리고《고백록》의 구성 및 내용의 특징을 친절하게 일러주는 해설을 실어서 청소년들이《고백록》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루소, 톨스토이의《고백록》과 더불어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일컬어지는 아우구스티누스의《고백록》은 서양에서는 라틴어를 배우면서 읽는 청소년들의 기초 교양서다. 1,600년 전이지만 한 젊은이가 고민하고 방황했던 경험은 동서와 고금을 넘어서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 감동을 주고 있다. 삶과 진리, 진실과 거짓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고백록,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은 우리 청소년들이 삶의 역경에 부딪히고 진실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마다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인생의 지침서가 되리라 믿는다.
북아프리카 해안의 작은 마을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Aurelius, 354~430년)는 카르타고와 히포, 로마와 밀라노 등지에서 수사학, 성직자, 신학자로 활동하다가 430년 북아프리카의 항구 도시 히포에서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세계사적 대격변기에 분열된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 열띤 강연과 많은 저술 활동으로 평생을 바친 그는 중세 기독교 사상의 모태로 추앙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평생 100여 권이 넘는 신학서 및 철학서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고백록》, 《신국론》, 《재고록》 등은 후대에까지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정은주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지금은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양서를 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공저)와 <페미니즘과 계급 정치학>(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