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우리에게 왜 《도덕경》인가?
무릇 병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여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싫어하니, 도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 병기란 상서롭지 못한 도구여서 군자가 사용할 수단이 아니나,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경우에는 그저 담담하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승리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승리를 미화하는 사람은 살인을 즐기는 자다. 사람 죽이기를 즐겨 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지 못한다. (……)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애도하는 것이 마땅하며, 전쟁에 승리했어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예를 다해야 한다.
1945년 5월 7일, 5년 8개월에 걸친 참혹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을 무렵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읽고 있던 《도덕경》 31장의 대목이다. 2500여 년 전에 쓰인 동양의 한 저작이 20세기 서양에서 일어난 전쟁 한복판에서 전쟁의 종식을 기원하는 어느 사상가의 서재에서 읽혔다는 사실은 이 책의 가치와 진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뿐만 아니다. 《도덕경》이 서양에 처음 소개됐던 18세기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약 250여 종의 번역본이 나왔고, 1995년 한 해 동안 약 90여 종의 도가류 서적이 출간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하니, 《성서》를 제외하고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과연 《도덕경》은 어떤 책이고 무엇을 담고 있기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늘 지금, 여기의 서가에 꽂혀 많은 이들의 삶과 더불어 존재하는가.
《노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도덕경》은 《장자》와 함께 도가 사상의 대표적 저작이다. 《도덕경》은 춘추 시대에, 《장자》는 그다음 시대인 전국 시대에 쓰인 것으로 둘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있으나 100개가 넘는 국가들이 영토 다툼을 벌이고, 몇몇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중국 전역이 영토 분쟁의 거대한 전쟁터라는 시대적 상황은 이들 철학의 동일한 출발점이었다.
도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관 출신들이다. 정치의 성공과 실패, 나라의 흥망성쇠, 세상의 행복과 불행 등에 관한 이치를 기록하다가 마침내는 그 요체를 깨닫게 된다. 근본을 깨달아 스스로를 비우고 낮고 약한 처지를 받아들이니 군주의 통치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도가류의 이러한 처신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나 《역경》에서 말하는 겸손의 덕에 부합되는 태도로써 이들의 장점이라 할 만하다.
제자백가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는 반고의 《한서》〈예문지〉에 실린 내용이다. 반고의 평대로 노자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다가 근본을 깨닫고 낮고 약한 처지, 즉 겸손의 덕에 부합되는 태도를 이상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그것은 수많은 세력과 국가가 자신의 잘남과 힘을 자랑하며 무력으로 다른 세력을 규합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세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물리적인 힘으로 타인과 타 국가를 자신의 밑에 두게 하는 당시의 세력 싸움은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큰 싸움과 경쟁을 양산하여, 결국 세상을 끝없는 전쟁의 폭풍 속에 가둘 뿐이라는 것이 노자가 바라본 당시 세태에 대한 통찰이었다. 노자는 이러한 혼란을 막는 방법이란 싸우려는 자세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겸손함을 갖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기려고 마음먹으면 그 상태는 이미 싸울 준비를 갖춘 것이므로, 싸움을 그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기고 지려는 마음 자체를 갖지 않을 때 싸움도 경쟁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는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개개인은 물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또한 그것이 경제력이든 군사력이든 물리적 힘의 우위를 갖지 않으면 자신의 것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싸울 태세를 애초부터 하지 말라는 노자의 말씀은 세상을 등지라는 현실 도피적 해결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마음가짐이 초지일관 힘의 쟁취라는 지금의 상태와 동일하다면 경쟁으로 얽힌 인간관계와 세상살이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도가류의 사상서가 현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는 이유는 오늘날처럼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되면서 발생한 인간 소외와 환경오염, 자연 파괴와 자원 고갈로 전 인류에게 위기가 닥치자 그 대안의 모색에 나서면서였다. 하나를 더 가지려는 마음가짐이 결국 모든 것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자성이 하나를 포기해서 모두를 살린다는 더 큰 마음가짐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커 보이는 하나이고 나 혼자서 갖고 싶은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을 가짐으로써 결국 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여 더 시급한 대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구촌을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할 현실 대처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사람이 아닌 자연에게 항상 겸손할 것을 강조했던 노자의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현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도덕경》을 읽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삶과 그에 대한 성찰이요 나와 내 이웃의 미래를 여는 산실이다.
《도덕경》, 무위자연의 세계로 가는 길
《도덕경》은 상편인 〈도경〉 37장과 하편인 〈덕경〉 44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글자 수는 5천 자 정도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도덕경》은 도와 덕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노자가 말하는 ‘도’와 ‘덕’은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며, 붙여진 이름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시작되고, 이름이 있는 것에서 만물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변함이 없는 무로써 그 오묘함을 보려 하고, 변함이 없는 유로써 움직임을 보려 한다. 이 둘은 같은 것인데 세상에 나와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1장)
노자는 ‘도’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면서 도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도는 보이지도 말할 수도 없는 영원불변한 존재로 천지 만물의 근원이다. 그리하여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세상 만물의 근본이자 만물을 움직이는 운행 원리인 도이기에 도는 인간이 따라야 하는 마땅한 규범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도를 따르는 사람”이나 “대도를 행하면”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렇듯 도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면, 덕은 도가 현실에 적용된 구체적 모습이다. 51장에서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른다. 만물을 키우고 자라게 하며, 안정시키고 편안하고 하며, 돌보고 키워 준다.”라고 덕에 대해 언급하였다. 춘추 시대의 사상가 관중이 “덕은 도의 집”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너무나 크고 깊어 형상이 없는 도에 상대해 덕은 행위를 통해 분명한 증거로 나타나며 인간 사회에서도 보편적 윤리 규범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도는 인간과 인간이 사회관계를 맺으면서 지켜야 하는 윤리적 규범이 아닌 무위의 규범, 즉 자연의 도를 따르는 자세나 태도를 의미한다.
바로 이런 점은 공자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과 확연하게 대별된다. 공자는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규범을 인(仁)이라 칭하고 실천을 통해 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노자는 유가의 인 사상은 그 범위가 협소해서 그 자체로 올바른 규범이 아니라고 보았다. 인이라는 것이 인간 세상이라는 영역에 국한되어 있기에 인간을 포함하는 널따란 자연의 규칙에서 보자면 그 또한 매우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의 혼란은 결국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도’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한 탓에 있기 때문에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라는 경계를 허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억지로 도모하지 않고 말을 앞세우지도 말며 소유하려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며, 결과에 이르러도 안주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법칙, 즉 도에 따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무위의 덕이라고 일렀다. 노자에게 자연과 무위는 도와 덕의 다른 표현이다. 자연으로 돌아감, 혹은 자연과 인간의 상생은 결국 도의 원리를 깨닫는 일이며,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상태를 인정하고 인위적인 어떤 것도 더하지 않는 무위란 바로 도의 작용인 덕과 같은 말이다. 노자의 철학을 무위자연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자연과 무위가 노자 사상의 핵심인 도와 덕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쉽게 풀어쓴 만큼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청소년 철학창고 《도덕경》
풀빛 청소년 철학창고의 《장자》가 출간된 지 올해로 8년이 되었다. 도가 사상의 흐름대로라면 노자의 《도덕경》이 먼저 나왔어야 하니 순서도 바뀌고 시기도 늦은 감이 드나, 그만큼 《도덕경》 번역과 해설에 기울인 노력이 크다. 《도덕경》은 《장자》와 달리 그 내용이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출간된 《도덕경》 번역본을 보아도 우리말임에도 그 의미를 종잡을 수 없고 판본마다 그 세밀한 뜻이 서로 대척되는 등 일반 독자는 물론 청소년이 읽기에는 그 양에 비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 철학창고 31《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 길》은 바로 번역의 난해성을 없애고 그 정확한 뜻을 쉽게 전달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 총 81개의 장을 원문 번역과 그에 대한 해설의 형식으로 원전의 구성을 최대한 살려 내면서도, 해설 없이 번역문만 읽어도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어의 선택과 표현에 만전을 기했다. 또한 번역문에 대한 해설은 시대 상황에 대한 명확하고 간결한 설명과 현대적 적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했다. 《도덕경》 원문을 보며 책을 꼼꼼히 읽고자 하는 독자를 위해 원문 전체를 책의 마지막에 실었다. 음독과 함께 《도덕경》 원문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번역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책의 시대적 배경과 책에 등장하는 핵심 개념을 앞에 실어 책을 읽기 전 배경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했고, 40쪽에 달하는 해설을 통해 도가 사상의 시대적 배경, 노자 및 당시 중요 인물 설명, 《도덕경》에 대한 서지학적 설명 및 내용 풀이 등을 친절하고 담백하게 정리하였다. 급변하는 현대에 변하지 않는 만물의 이치와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덕목을 지적한 《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 길》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작지만 또렷한 별빛처럼 마음의 길을 열어 주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