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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달루시아 크게보기

나의 안달루시아

저자

전기순

발행일

2017-01-10

면수

130*195

ISBN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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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74748005 0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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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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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또 하나의 스페인, 안달루시아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에 대한 가장 친밀한 인상기
_지극히 주관적인 시선 속에 담긴 지극히 객관적인 안달루시아의 원형
“한 도시를 아는 것은 세상을 아는 것이다”


■ 오랜 친구, 안달루시아

벚꽃이 피는 어느 봄날 나는 집을 떠나 안달루시아로 갔습니다.
안달루시아 가로수 길에서 열매가 매달린 오렌지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산들바람에 습기가 들어차는 초여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파란 공책 몇 권이 남았습니다.
이 책은 봄과 초여름 사이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며 기록한 풍경과 인상입니다.
때로는 역사적 흔적이 인상을 앞선 경우도 있고, 때로는 인상이 내면의 충격으로 변한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인상이 어떤 책을 끄집어내거나 무의식을 건드려 꿈으로 끝나기도 했습니다. 안달루시아는 나의 오랜 친구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에게 나의 친구를,
내가 알고 느끼고 대화했던 친구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이 글이 꼭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언제까지 그곳만 갈 수는 없으니까요.

모두에게는 물리적인 고향 이외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며 애착이 가는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우연히 여행하며 마음속에 그곳의 인상을 담고 살다가 현재가 힘들어 위로가 필요할 때나 자신도 모르는 방랑벽이 불쑥 솟아올라 이곳 아닌 그 어딘가를 원할 때 고이 접었던 인상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날아가는 어떤 곳. 때론 그곳이 국내 어디일 수도 있고, 비싼 비행기표를 감수하고라도 떠날 수밖에 없는 외국 어디일 수도 있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 스페인 문학과 영화,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 왔던 필자에게 그 어떤 곳은 어느 순간 ‘안달루시아’가 되었다. 그것은 그에게 어쩌면 스페인과 간접적으로 함께했던 온 삶이 만들어 낸 필연적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 넓은 스페인 중 특별히 안달루시아가 오랜 친구가 되었던 것은 우연과 운명이 교묘히 섞인, 알 수 없는 끌림이자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이기도 하다.


■ 세월의 단층 안달루시아 땅에 선 한 이방인    
안달루시아. 그곳은 ‘스페인 남부지방에 위치한 자치구’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지만, 그 지역이 안고 버텼던 수많은 세월의 굴곡과 그 굴곡들이 켜켜이 쌓이고 지워지며 휘고 굽어져 퇴적된 지금의 지층을 수직으로 잘라 그 변화무쌍한 단면을 확인하게 되면, 그냥 스페인의 남부지방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곳은 그냥 ‘안달루시아’다.
드넓게 펼쳐진 초록색 올리브 농장과 길 양옆으로 심긴, 주황색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나무. 평온하고 아늑하고 느긋한 곳으로 안달루시아를 기억하게 하는 따뜻한 광경이다. 이 평온함은 수많은 압제와 끊임없는 권력쟁탈의 기록마저 액자 속 그림처럼 느끼게 한다. 이곳은 기원전부터 서로 다른 이름과 그만큼의 다른 문화를 지닌 국가들이 교차로 지배해 왔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대서양에 접하는데, 불과 58킬로미터의 짧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면 아프리카 대륙이다. 코앞이 아프리카이고, 바로 건너편에 그리스, 또 이스라엘이 있다. 여러 문명의 교차로인 셈이다. 기원전 12세기에는 페니키아가, 기원전 5세기에는 카르타고가, 이후 로마가 통치하였다. 5세기에는 반달족의 침입이 있었고, 8세기부터는 사라센 즉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으며, 15세기에는 카스티야에게 점령당했다. 그리고 스페인에 귀속되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싸움은 이런 역사가 낳은 산물 혹은 역사를 만든 원인이었다.
이 모든 역사의 기록을 머릿속에 입력해 가지고 있던 필자가 직접 그 역사의 흔적이 새겨진 안달루시아 땅에 들어서서 지금을 눈으로 훑고 두 다리로 걸었을 때,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 역사는 역사고 지금은 지금일까. 여느 평범한 관광객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세비야 대성당은 웅장해서 세계 3대 성당의 하나이고 알람브라 궁전은 <알람브라의 추억>이라는 선율이 저절로 떠오르는 아름답기만 한 유적지일까. 수세기에 걸친 역사의 모형들 앞에서 필자는 지금으로 위장해 과거를 되짚고, 나로 위장해 그들을 그려 내 보인다. 아주 보잘것없는 여행객으로서 사진기 대신 공책과 펜을 꺼내 그들의 삶과 삶이었던 삶을 유추해 기록해 본다.


■ 때론 환상적인, 때론 감미로운 안달루시아 여정
안달루시아에서 그의 여정은 이렇다. (말라가 주의) 말라가 => 네르하 => (코르도바 주의) 코르도바 => (세비야 주의) 세비야 => 하얀 마을들: (카디스 주의) 아르코스델라프론테라, 알고도날레스, (말라가 주의) 론다 => (그라나다 주의) 그라나다. 이 몇 개의 도시는 안달루시아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지만, 안달루시아가 스페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없듯 안달루시아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없는 그 지역만의 묘한 분위기와 특별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각각의 지역이 품어내면서 자신을 감싸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각각의 지역에 걸맞은 문체로 서로 다르게 그려 낸다.
말라가에 있는 알카사바에서 그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양피지를 떠올린다. 로마인들은 페니키아인의 요새를 지우고 로마극장을, 무어인들은 로마극장을 지우고 알카사바를 세웠다. 기독교인들은 메스키타를 완벽하게 무두질하고 말라가 대성당을 그려 놓았다…. 알카사바는 시간의 미로인 것. 그리고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에서 이틀을 보낸 그는 말라가 태생 피카소에 대해 편지 형식의 글을 쓰며 예술과 혁신에 대해 질문하고 또 답한다. 말라가는 그가 스페인 유학 시절 만났던 친구와 우정을 쌓은 개인적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의 과거(역사)와 개인적 과거(추억)가 뒤엉켜 만들어진 특별한 감상이 말라가에서 자유롭게 펼쳐진다.
말라가에서 동쪽으로 51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네르하에서 필자는 우연히 가톨릭 수호성인을 기리는 순례행진 로메리아에 참석한다. 서로에게 이웃인 말라가와 네르하에서 필자는 서로 다른 종교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에게 네르하는 로메리아로 불거진 살인청부의 환상 혹은 광기의 시간으로 남는다.
필자 개인에게는 배고픔으로 기억되는 코르도바가 다음 행선지. 자신에게 닥친 허기를 필자는 압데라만 1세와 알만소르로 대표되는 코르도바 이슬람 역사를 되짚고, 그때를 대표하는 시인 이븐 하즘을 만나며 채운다. 그는 카메라 요정에 이끌려 천 년 전으로 날아가 기사가 되어 당시 허용되지 않았던 육체적 사랑에 탐닉한다. 모두 시에스타가 만들어 낸 환상인데, 당시 문학계를 휩쓸었던 기사도 사랑에 대한 패러디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카르멘과 세비야 대성당으로 유명한 세비야. 찬란하게 빛났지만 또 허무하게 붕괴했던 이곳을 필자는 유머와 허풍 뒤에 삶의 허무를 깊게 감추고 있는 곳이라 표현한다. 벨라스케스 같은 천재적인 화가들, 돈 후안과 카르멘의 유령들이 출몰하는 곳이라고도.
안달루시아 내륙에는 새하얀 집들을 끌어안고 있는, 들판 위에 불온하고 솟아오른 언덕 마을들이 있는데, 아르코스델라프론테라와 론다가 그런 마을이다. 하늘과 구름이 유난히 아름다운 아르코스는 필자에게 거칠고 연애에 빠지고 싶은 곳이며, 죽음만이 기다리는 투우장을 향해 가파른 산을 오르는 투우와 절벽으로 상징되는 곳이 론다이다. 하얀 마을들에서 필자는 가톨릭교로 개종한 무슬림의 후예를 만나고, 헤밍웨이의 삶을 뒤적이고, 매력적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를 기억한다.
마지막은 스페인 이슬람 문명의 최후의 시기를 완성한 건축물 알람브라가 있는 그라나다. 필자에게 폐쇄공포증을 일으키게 하는 도시이지만 알람브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무어인 건축가들의 시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라나다 정서를 가진 천재 시인, 그러나 비운의 주인공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삶과 시를 재현해 낸다. 마치 사실처럼. 거기에 와인과 플라멩코가 어우러진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독자를 빠져들게 만든다.


■ 그의 오랜 친구에서 나의 새로운 친구 안달루시아로…
필자는 말한다. 봄과 초여름 사이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면서 “때로는 역사적 흔적이 인상을 앞선 경우도 있고, 때로는 인상이 내면의 충격으로 변한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인상이 어떤 책을 끄집어내거나 무의식을 건드려 꿈으로 끝나기도 했”다고. 유럽의 한쪽 끝에 너무도 소박하게 자리한 안달루시아에서 그가 보고 듣고 먹고 느끼며 마음에 담았던 안달루시아 인상기는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글자만이 안달루시아를 그려 내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순례자처럼 다녔던 그 길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지금 있는 곳이 그가 서 있는 그곳과 같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곳에서 그가 천 년 전에 보았던 시인도, 빠져들었던 사랑도, 나누었던 대화도 과거가 아닌 지금의 형태로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과연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이 책을 기록으로 남기며 소박하게 꿈꾸었던 것은, 안달루시아의 자그마한 여러 지역이 물안개처럼 뿜어내는 각각의 온기와 냄새와 습기와 색깔을 온전히 재현해 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담는 그릇이 그 지역을 살려 내 그린 각각의 문체였다. 때로는 꿈인지 현실인지 종잡을 수 없는 회상으로, 때로는 추억인지 소설인지 묘연한 내용으로, 때로는 과거인지 현재인지 알 수 없는 시점으로 필자는 안달루시아의 뿌리와 줄기와 열매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 놓는다. 열매인 줄 알고 따 보니 그것은 줄기였고, 줄기라 생각해서 끌어내 보니 땅속 깊이 박힌 뿌리가 흙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안달루시아는 그저 그런 스페인 지방의 하나가 아니고, 그것은 수천 년 역사와 문화와 삶이 어우러져 빚어낸 세상이었다. 이 여정을 따라가 보면 말이다.
드퀸시의 말로 그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한 도시를 아는 것은 세상을 아는 것이라고. 그 한 도시 안달루시아에 사과한다. 이토록 엉성하게 너를 찾으러 가서 미안하다고. 그러나 그가 그토록 헤어지고 싶어 했던 오랜 친구이자 연인 안달루시아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는 꼭 한번 만나 깊이 악수 나누며 새롭게 사귀고 싶은 친구로 탈바꿈한다. 더는 그만의 안달루시아가 아니다. 이 미련한 추억이 이제는 우리 모두의 ‘나의 안달루시아’가 되는 통로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