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기사 <전쟁이 가뭄 때문? 모든 것을 기후 탓 하지 마시오>
- 한겨례 기사 <'기후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기후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지구 온도 내리기와 탄소 중립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정치적 시야를 협소화시키고 환원주의적 사고에 갇히게 하는 ‘기후주의 이데올로기’
극단적인 기후 정치와 왜곡된 기후 과학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줄,
기후 변화에 대한 날카롭고 도발적인 담론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대규모 산불과 대홍수, 심각한 가뭄 등 극단적인 기후 변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뒤이어 펄펄 끓는 지구 온도를 내리기 위한 행동 촉구와 탄소 중립을 위한 실천이 언급되고, 우리는 다시금 기후 위기를 초래한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지구 온도가 올라 지구가 끝나기까지 ‘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종말론적인 기후 위기 문제 앞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게 되었다. 어느새 기후 변화는 인류의 모든 사안들과 연결되어 그 자체로 전부가 되었다.저명한 기후 과학자인 저자 마이크 흄은 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기후 탓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 즉 인류의 사회적?정치적?생태적 현상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이 다름 아닌 ‘변화하는 기후’임을 주장하며 모든 것을 이에 종속되게 만드는 ‘기후주의(Climatism)’를 경계할 것을 제안한다. 기후주의라는 거대 서사가 시리아 내전의 원인이나 유럽의 난민 문제, 독일의 대홍수 문제를 집어삼켰고, 이것이 그와 연관된 정치나 정책, 사회 제도 문제를 외면한 채 기상 현상을 다른 맥락과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 주위에 만연하고 교묘하게 스민 기후주의 이데올로기와 종말론적인 기후 정치, 그리고 그에 압력을 받아 왜곡되는 기후 과학의 위험성에 대해 짚어내며, 기후 변화 문제를 일상의 정치에 접목해서 맥락 있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리아 내전, 대형 산불,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모든 게 ‘기후 변화’ 탓이라는 그럴듯한 핑계
기후주의는 우리 미래를 옥죄일 힘을 어떻게 얻었는가
최근 인류는 기후 변화, 기후 위기와 싸워 왔다. 정치인과 운동가뿐만 아니라 유명인과 연예인까지 나서서 뜨거워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기후 변화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런데 홍수나 가뭄 같은 기상 현상 외에 전쟁이나 사회 문제 역시 기후 관점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한 예로, 2011년에 시작되어 12년 간 약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리아 내전의 원인을 두고 〈시리아 테러 사태의 발단은 기후 변화〉라는 식의 언론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역시 “기후와 관련된 가뭄이 내전으로 비화한 시리아의 초기 불안을 부채질했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한 정치 집단들이 기후 변화가 시리아 내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논지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한 심각한 가뭄 때문에 시리아의 농민 노동자들이 터전을 잃었고, 그들이 도심지로 모여들면서 정치적 불안을 야기했다는 이유다. 심지어 장 클로드 융커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유럽에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을 ‘기후 이민자’ 또는 ‘기후 난민’이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식의 틀짜기(framing)는 관련자들이 기후 변화라는 인과적 서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하여 논점을 돌리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고와 논리의 흐름이 가진 호소력 덕분에 최근 반박이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약 십여 년 전부터 이러한 식의 ‘기후 환원주의’의 결함과 위험성에 대해 지적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후 환원주의의 새로운 변종, 즉 ‘기후주의(climatism)’ 이념의 출현을 알린다. 기상 현상이 역사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경제적?생태학적 체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따라 성립된다는 맥락을 무시하고 오로지 ‘기후 변화 억제’의 정치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행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기후주의는 여타 이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방식에 색을 입히는 색안경과 같다. 이미 공공 생활의 많은 영역에 만연한 기후주의는 그렇게 힘을 얻었고, 그에 도전하는 것은 기후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가장 중요한 것이 된 기후 문제에 의문을 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기후주의는 우리의 미래를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다.
기후 변화가 운석 충돌과 맞먹는 재앙이라는 공포 정치와
지구의 미래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기후 과학의 환상이 만들어 낸
극단적이고 종말론적인 기후주의의 매력
지구 종말을 풍자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혜성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과학자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지도자들 때문에 지구는 종말에 이르는데, 감독은 이 영화가 기후 변화로 인류가 맞닥뜨린 실존적 위협을 다룬 우화임을 밝혔다. 영화에 따르면 기후 변화는 마치 운석 충돌처럼 단번에 지구를 멸망시킬 ‘재앙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동시에 과학자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기후주의가 가진 고약한 매력과 문제점을 알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운석 충돌처럼 극적인 위협이 아닌 훨씬 더 복잡하고 더딘 문제다. 저자는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 문제에 대한 복잡함과 힘듦을 포괄적이고 일관적이며 설득력 있는 거대 서사로 단번에 설명할 수 있다는 이러한 점이 바로 기후주의의 덫이자 매력이라고 말한다.
특히 기후주의는 다른 이념들과 다르게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권위와 지위를 받는다. 저탄소 기술이 화석연료가 이룬 편리를 금세 대체할 수 있고 인류의 기술이 지구의 기후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 준다는 점에서 호소력을 가진다. 더구나 ‘지구를 지키려는 자’와 ‘지구를 파괴하는 자’로 손쉽게 선악을 구분하는 기후주의의 이원론적 관점은 자신들의 이익에 기후 변화 문제를 활용하는 일부 정치당국과 시민 활동가 등의 수혜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극단적이고 종말론적일수록 기후주의의 매력과 영향력이 커지는 이유다.
“이때를 놓치면 너무 늦습니다”
시간 부족 담론에 쫓기는 인류
단일한 목표만 좇는 정치적 시야의 협소화
기후 위기는 다른 위기들과 비교되어 다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종말론적인 기후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종말론적 입장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집단 정체성을 만들어 정치 활동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도리어 공포감과 두려움, 체념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기후 위기 콘텐츠와 카운트다운을 향해 똑딱거리는 기후 위기 시계의 위협 속에서 지구가 이른바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시간 부족 담론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불안감과 무력감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수많은 ‘마지막 기회’들은 실질적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을 억누를 위험도 있다. 사실상 2006년 당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언급한 ‘기회의 창’부터 2017년의 기후 과학자 한스 요아힘 셸른후버의 ‘결정적 시기’, 2019년의 영국 찰스 왕세자의 ‘결정적인 창’으로 표현된 기회들은 이미 지나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미 끝장난 시간’에 살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담론들은 대중의 냉소를 불러오며 쉽게 인류의 미래를 종결시키고 결국엔 공공 정치의 목을 조르고 만다.
저자는 기후주의가 초래하는 ‘시야의 협소화’도 지적한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팜유 농장을 확대했는데, 이는 도리어 원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서식지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바이오연료의 바람직성을 평가할 때 다른 사안들을 고려하지 않은 협소한 시야 탓이다. 이처럼 기후주의는 하나의 정책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훨씬 더 넓은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벼랑 끝’은 없다
지구가 끝장난다는 공포를 넘어 대응으로 가야 하는 이유
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칫 자신이 기후 변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기후 위기에 대응할 필요성을 외면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한다. 기후 과학자인 저자는 기후 변화에 관한 학문적 연구를 해 오며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2007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하는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그는 기후 변화는 실존하고 기후 변화로 생기는 위기가 심각하며 이런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과 적응 방안을 찾을 필요성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주장을 둘러싸고 제기될 법한 의문들에 대한 반박을 이 책의 말미에 게시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 및 사회과학 연구의 올바른 방법과 기후 정치에 필요한 균형 있는 관점을 제안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시한부주의를 완화하고,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며, 다원적 목표를 추구할 것을 촉구한다.
설사 지구 온도 2도 상승을 막지 못한다하더라도 지구는 끝장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온도에 집착하는 종말론적 기후주의에 휘둘려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지구 온도는 상승했으나 인류의 복지와 정치 안정, 생태적 온전성 측면에서 더 나은 미래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멸망을 막는 것이 아닌,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로 나아가는 데 있어 기후 변화는 유일한 요소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요소도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살 수 있다. 기후 위기 멸망론의 과도한 공포 앞에 이성을 잃고 저항하거나 반대로 이성을 놓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기후 위기 멸망론이 지나치게 과장된 얘기라면?이 책은 만연해 있는 기후 위기 멸망론의 터무니없는 허구성을 폭로하고 사상처럼 굳어가는 ‘기후주의(Climatism)’의 폐해를 명확히 짚어 준다. 냉철한 이성의 힘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고 싶은 사람들의 필독서!_김백민(기후과학자, 부경대학교 환경해양대학 교수)
역사는 마이크 흄을 20세기 말~21세기 초의 기후 변화 담론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현명한 인문학적 대변자로 판단할 것이다._대니얼 새러위츠(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