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집》, 조선 중기 이후 한국적인 성리학의 토대를 다지다!
송도삼절로도 잘 알려진 화담 서경덕(1489~1546)은 조선 중기에 한국 성리학의 토대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정리한 문집이 바로《화담집》이다.
성리학은 고려 말 안향에 의해 받아들여져 조선 건국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게 된다.
그 후 성리학은 조선 사회를 지배는 이념이 되었고 중기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의 학문적 연구가 발전해가면서 크게 두 가지 흐림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는 주자의 이론에 따라 리(理, 도덕 법칙)를 강조하는 흐름으로 그 중심에는 이언적이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북송 시대 성리학자 장재의 이론에 따라 기(氣. 인간과 자연 변화의 근원)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그 중심에 바로 서경덕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 성리학에 있어서 리를 중심에 둔 철학을 발전시킨 이언적과 기 철학에 시작점에 있던 서경덕이 성리학을 한국적으로 토작화시킨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경덕은, 당시 신분 질서 유지와 이를 통한 사회 안정화에 적합한“리”를 강조하는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기”를 중심으로 자기 나름의 철학적 체계를 쌓아갔던 독자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기 철학은 이이와 임성주 등으로 이어졌으며 한국적 성리학의 완성을 이끌어낸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기 철학의 출발점이자 한국적 성리학의 토대를 이루는 역할을 해낸 서경덕의 사상이 담긴《화담집》은 그 만큼 학문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화담집》, 변화를 중심에 둔 서경덕의 기 철학, 이상보다는 현실 개혁적 성격 강해
성리학에서 리를 강조하는 철학과 기를 강조하는 철학이 실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조선 시대까지 전통 사회에는 모두 농업이 기본 산업이었다. 농업은 땅을 경작해야 하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가 있는 곳에 머물러 살았다. 따라서 농업 사회의 구조는 정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 같은 상황은 불변의 도덕 법칙을 강조하는 철학이 자리 집기에 아주 좋은 토양이 되었다. 조선 시대 내내 사농공상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상업을 천시하고 억누른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사회 구조 면에서 산업적으로는 땅에 묶여 있고 사람 관계에서는 불변의 도덕 법칙에 묶여 있는 것이 다스리기 좋은 토대인 것이며 그 바탕의 이데올로기가 리를 중시하는 철학이었다.
하지만 기를 강조하는 철학은 기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이동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회적 이동이란 한 군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상업의 강조로도 나타나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신분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다는 신분제 타파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기 철학은 늘 평온해 보이는 농업 사회에서 볼 때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는 불온한 사상으로 보이기 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업의 강조, 해외 통상의 중요성 강조, 신분제 타파 등의 측면에서 근대로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는 현실 개혁적인 사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화담집》, 관념론적 자세가 아닌, 과학적 탐구로 우주 만물의 법칙을 세우다
조선 중기, 주류를 이루던 성리학자들은 세상의 이치를 도덕론적 관념으로만 해석하려고 하거나 또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리와 기의 조화, 즉 개념만으로 우주 만물의 법칙을 설명하려는 형이상학적 학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서경덕은 자연과 인간을 보다 과학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주 만물의 법칙에 대해 철학적인 답을 구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촛불, 온천, 바람 같은 구체적인 자연 현상에서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뀌는 1년의 순환과 삶과 죽음으로 구분되는 인간 삶의 변화까지를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서경덕의 독자적인 기 철학 체계다. 기 철학은 모든 것을 변화의 관점으로 본다. 서경덕은 기가 어딘가에서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며 계속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서경덕이 만물 변화의 원인을 기의 변화로 본 것은 북송 시대 성리학자 장재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자연 과학을 결합한 독자적인 자신의 학문 틀을 만들어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서경덕은 우주 자연의 모든 변화는 기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기 안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고 보고 이를 뜻하는‘기자이(機自爾)”라는 독창적인 용어를 만들어낸다.
기자이는 어떤 계기에 이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뜻으로, 꽃 필 때 되면 꽃 피고 바람 불 때가 되면 바람 불며 비올 때가 되면 비가 오는데 이런 변화가 모두 시간적인 계기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경덕은 기가 처음부터 이 세상을 꽉 채우고 있되 없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매 시간적인 계기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잎을 떨어뜨리고 새싹을 돋게 한다고 보았는데, 오늘날로 본다면 서경덕이 말한 기는“에너지”에 대입할 수 있고,“기가 항상 존재하되 변화한다.”라고 보는 것은 오늘날“에너지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대입할 수 있다. 따라서 서경덕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그 안에서 자연의 법칙을 찾으려 했던 물리학자였던 셈이다.
김교빈 선생님은 성균관대학교 동양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인문콘텐츠학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현재 호서대학교 문화기획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민족의학연구원 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동양 철학 에세이》(공저), 《한국 철학 에세이》, 《한국 철학 스케치 1,2》(공저), 《이언적》 등이 있고, 역서로는 《중국 고대 철학의 세계》, 《중국 의학과 철학》, 《기의 철학》 등이 있다.
차례
청소년 철학창고를 펴내며
들어가는 말
《화담집》의 이해를 돕는 길잡이
제1편 시문(詩文)
제2편 잡저(雜著)
제3편 서(序)
제4편 명(銘)
나오는 말
《화담집》, 기에서 찾은 세상의 이치
화담 서경덕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