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막막하고, 외로운
내 소중한 모든 날을 껴안는 따뜻한 손
한 손에는 위로를, 또 한 손에는 격려를 담은
너른 책의 품에 안겨 보라
풀빛의 청소년 교양시리즈 [비행청소년] 19번 《나는 내 편이니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10대를 위한 독서 테라피》가 출간되었다. 독서가 당장 내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순간에 책에서 위안을 찾고, 희망을 찾고, 지혜를 찾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려운 그 순간 책을 찾는 사람은, 조금은 수월하게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싶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한 10대를 위해 이 책은 만들어졌다. 흔들리고 막막한 10대의 이런 날, 저런 날에 맞게 책을 처방하는 방식으로 엮었다. 지금까지 ‘책 권하는 선생님’으로, ‘책 권하는 책을 쓰는 작가’로, ‘책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클럽 운영자’로 살면서 많은 이에게 책을 권해 온 저자 박현희가 특별히 10대의 모든 날에 맞게 책을 처방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화해하고 싶을 때,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을 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을 때, 과연 어떤 책을 보며 길을 찾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 한 권에 담긴 스무 편의 책을 길잡이 삼아 10대의 소중한 모든 날이 찬란하게 빛나기를 소망한다.
쓸모없는 독서의 쓸모
절대반지처럼 영험한 효력을 가졌다며 책 읽기의 쓸모를 홍보하는 자기계발서들이 있다. 꼭 절대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의 효용, 독서법 등을 안내하는 책들도 많다. 혹은 주요한 고전들을 요약해서 수많은 책을 맛보기처럼 진열한 책도 꽤 많이 보인다. 이 책들이나마 독자에게 가닿기를 기대한다면 요행을 바라는 것일까. 그만큼 책 권하는 일은 쉽지 않고, 읽지 않던 사람이 읽게 되는 기적도 흔치는 않다. 저자 박현희는 이 책을 시작하는 장에서 《데미안》으로 밤을 새운 중학생 박현희를 기억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훔치듯 빌린(그때는 대출이 불가한 시대였기에) 그 책을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어느새 작은 창문으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온 새벽과 마주했다. 그렇게 맞은 새날, 온종일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밤을 새운 피곤함은커녕 거부할 수 없는 전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단박에 알아챘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은 나는 읽기 전의 나와 더는 같을 수 없다고. 살아가는 내내 책이 주는 달콤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예감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읽기 전의 나와는 다른 나로 늘 새로이 살아가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다.
중학생 박현희가 지금의 박현희가 된 이 한 장면은 그 현장에서 그가 느낀 짜릿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쉬 공감할 수 없다. 뭐야, 겨우 《데미안》 한 권에 남은 인생이 어떨지 확신해? 이런 의아함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라는 도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비슷한 경험을 다 가지고 있다. 잠깐 해 보았을 뿐인데 테트리스 막대기가 자는 내내 눈앞에서 떨어질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그에 빠져 있다가 뻐근한 어깨와 마디마디 쑤시는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고양이세수를 할 때, 휘핑크림 멋들어지게 올려진 카라멜마끼아또를 입안 가득 품었다가 눈을 감고 목구멍으로 살짝 밀어 넣을 때, 우리는 이 기쁨을 오늘로 끝내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부모님 몰래, 선생님 눈을 피해, 이 소중한 순간을 연장할지 궁리에 궁리를 더한다. 이왕이면 내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것만 같은 애틋한 친구와 함께하고픈 소망을 더해. 그게 저자에게는 책이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짜릿할 만큼 행복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저자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 소중한 순간이 그다음의 나를 새롭게 바꾸었다는 데 있다. 그 변화가 더 의미 있는 것은, 성형수술로 커진 눈이나 높아진 코, 깎인 복부 살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라는 데 있다. 비록 남들 눈에는 여전한 박현희겠으나 중학생 박현희는 밤사이 성장한 자신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후로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며 이전의 나와 다른 자신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체감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 하지만, 사람은 늘 바뀌는 존재니까. 그리고 그 변화의 결과가 결국 발전의 동력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책에서 열여섯 장면에 담긴 그의 고민과 그 고민을 풀어 간 힌트를 만난다. 그답게 해결의 실마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현명하게 풀어낸 또 다른 저자들의 스무 권의 책에서 찾아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그가 있기에, 오늘도 우리를 골치 아프게 혹은 마음 아프게 하는 문제들을 스무 권의 책을 모조리 읽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이 삶에서 겪은 어려움과 부당함에 대한 의문을 “실은 말이야…” 하면서 우리를 친구 삼아 고백하고는, 자기가 누구의 도움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차분히 그 사람 말을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숨도 못 쉬고 손에 침 묻혀 가며 남의 일기장을 넘겨 보는 것처럼, 이 책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감을 끌어낸다. 혹여 그가 건넨 힌트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그에게 도움을 준 스무 권의 책을 하나씩 꺼내 펼쳐 보길. 더 나아가 자신만의 힌트를 또 다른 책에서 찾아 나가길. 그게 이 책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니까.
당신의 오늘은 안녕한가요
새 학년이 된 첫날이면 으레 요구받는 자기소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대체 나를 뭐라고 소개하지? 결국은 앞선 친구를 따라 뱉는 말. “그냥 평범합니다.”
하루를 쪼개고 쪼개어 단 5분이라도 틈이 있다면 그것을 무언가로 채워 넣어서 공부 계획을 실천해 보라는 자기주도학습 다이어리 의무 기록. 이렇게나 빈틈없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왜 대체 나는 전진이 아니라 뒤로만 밀리지? 게을러서? 엄습해 오는 죄의식과 자괴감.
오늘은 정말 차마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없을 만큼 민낯의 얼굴이 부끄러워 마스크를 쓴 채 교실에 앉는다. 아, 내 얼굴 싫어.
개교기념일 한낮에 들른 떡볶이집. “또 땡땡이냐, 이 시간에 학교는 왜 안 가고 여기 있어.” 떡볶이가 딱 먹기 싫어져 나와 버린다. 뭐라 한마디 못 하고 도망치듯 나온 내가 미워진다.
우리의 오늘은 이렇듯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안녕?이라는 질문에 안녕하다고 말하기엔, 오늘은 꽤 안녕하지 않다. 숨지도, 불편하다고 말하지도, 부당하다고 외치지도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모든 날이 다 푸르를 수는 없지만, 어떤 날은 내 정신 상태가 위태로워질 만큼 난감할 때가 있다. 더 심각한 건 그런 날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유사한 일이 반복해서 내 앞에 당도한다는 사실. 그냥 참고 지나가는 일이 더는 불가능해질 때, 그런 날을 이겨 낼 방법은 없을까?
어느 날, “저는 평범합니다”라고 훅 뱉어 내고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썩 개운치 않다면 이즈미야 간지의 《뿔을 가지고 살 권리》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라고 저자는 권한다. ‘보통이 좋아라고 말하는 병’이라는 이 책의 원제가 말하듯, 우리 사회는 ‘보통이 좋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고, 보통이 아니고 평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제재가 뒤따르니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보통이 되려고 노력한다(본문 28쪽)고 책은 정리한다. 그러면서 ‘뿔을 가지고 살 권리’를 이야기한다. 뿔이 없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인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뿔을 가지고 태어났다. 뿔의 모습은 다양하다. 아이돌이 열광하는 교실 속에서 홀로 오페라를 사랑하는 것으로, 축구에 미치는 남자 청소년들 속에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생겨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왜 좋은지 모르겠고, 다들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에 나 홀로 심취한다. 곤란하다. 그는 결코 무리에 섞이지 못할 것이며, 놀림거리가 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뿔을 가진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할까?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과 섞이는 것을 방해하는 뿔을 잘라 버릴 것이다.(본문 28~29쪽)
만약 “저는 평범합니다”라는 말 뒤에 숨은 우리 속내가 이런 것이라면 우리는 사회가 공통으로 겪는 ‘보통이 좋아라고 말하는 병’을 앓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뿔을 자르는 대신 병을 이겨야 한다. 어떻게 이길 수 있냐고? 이즈미야 간지의 주장에 덧붙여 《나는 내 편이니까》의 저자 박현희는 이렇게 반문한다. 뿔이 있는 사람이 절대다수이고 내가 소수인 것이 아니라, 실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뿔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겠냐고. 내가 태어났을 때 뿔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이유가 그들 모두 뿔을 절단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아무도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니 뿔을 가진 그대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고 충고한다. 더는 평범하지 않은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살 권리를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
또 다른 날, 매일 죽을힘을 다해 사는데 게으르다는 죄의식에 휩싸인다고? 저자는 이옥순의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를 펼쳐 보인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게으름을 문제 삼는 자는 역사적으로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요, 식민지 원주민을 채찍질하는 유럽인이고, 노동자의 노동을 먹고사는 고용주이다. 우리의 게으름은 우리 아닌 다른 이의 편익에 부응하지 못한 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일에는 고유한 속도가 있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가장 적당한 속도가 있다. 지금까지 너무 빨리 달려서 문제였다. 너무 지쳤다면 잠시 쉬어도 좋다고 저자 박현희는 부연한다.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 모두에게 있다. 거울을 자주 보지 말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살면 나아진다고? 저자는 그게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지지대 삼아, 저자는 우리 몸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말고 우리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라고 충고한다. 땀 흘려 산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사람의 예를 들며, 내 몸으로 무엇무엇을 할 수 있어 좋아, 라는 방식으로 삶을 태도를 바꿔 보라 말한다.
위로와 격려를 담은 너른 책의 품에 안겨 보라
10대를 막막하게 하는 수많은 날이 있다. 시작하는 날, 새로운 만남이 두려워지는 날, 내가 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날, 더 노력하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지는 날, 먹고사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봐 걱정스러운 날, 멋진 미래를 상상하고 싶은 날, 기적을 바라는 날…. 이 모든 날이 공통으로 향하는 것은 더 좋은 세상에서 더 멋진 내가 되어 살고 싶은 바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혼자서는 싸우기 힘든 난관에 봉착했다면? 황당하고 곱씹을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을 당했다면? 친구와 수다를 떨며 위로를 얻고 그 순간을 잊어도 좋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꼰대처럼 충고를 앞세우며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담지 않는 어른이 주위에 있다면, 그들에게 조언을 구해도 좋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사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책이라는 현명한 조언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강제로 우리를 그 앞에 불러세우지는 않지만,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되는 그곳이지만, 그 품은 넓고 따뜻하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한번 다가가 보면 어떨까.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나는 내 편이니까》라는 만만하고 다정한 친구 손을 잡고 그 성으로 한 발짝 내딛어 보길. 그곳을 빠져나와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