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에게 바치는, 생명과학자의 겸손한 헌사
“보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생명은 있다.
보이지 않는 생명과 다른 모든 생명이 서로 이어져 있다.
연결 고리의 어딘가에 우리 인간도 서성이고 있다.”
《생명을 보는 마음: 생명과학자의 삶에 깃든 생명 이야기》는 생명과학자이자 생태작가 김성호가 자연과 함께한 60여 년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새 아빠’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새에 빠져 살며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들을 다수 펴냈고, 관찰과 생명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들도 여러 편이지만, 이 책은 그가 온 생애를 바쳐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들의 삶과 함께했으며 머리와 몸과 마음이 정성으로 가득 차서 바라본 생명에 대한 마음의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자연과 함께하고 관찰한 자신의 온 삶을 이 책에 모두 쏟아부었다고 고백한다. 스스로는 ‘생명 이야기’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으나 《생명을 보는 마음》은 동물, 식물, 미생물을 아우르는 생명 전체에 대한 연구서다.
그러나 ‘연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있다. 책을 펼쳐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비록 직접 가닿지 못했으나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자연에서 뒹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자연과 함께한 인류의 유전자는 내 몸 세포 어딘가에 숨어서 어머니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자연에 대한 독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가 김성호의 글은 결국 자연에서 배운 힘이자 자연에서 터득한 지혜 그것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지만 자연스럽게 흐르는 글은 그것 자체가 이미 자연이다.
동물에 대한 마음은 10개의 장에, 식물에 대한 마음은 4개의 장에, 작은 것들에 대한 마음은 3개의 장에 나누어 펼쳐진다. 가장 커다란 기준으로 생명을 세 영역으로 분류하고서 이들에 대해 기술한다. 동물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에 만나 때론 친구도 되었던 다양한 동물들을 시작으로, 새?야생조류?반려동물?멸종위기종?야생동물?동물축제 속 동물?동물원 동물?실험동물?바이러스를 망라한다. 식물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험 속 식물을 시작으로 식물에 대한 학문적 정리를 하면서 왜 식물이 위기 상황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미생물에 대해서는 세균?진균?원생동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그 작은 것들과 우리가 맺는 관계가 새롭게 다가온다.
때론 학문으로 접한 내용을, 때론 개인의 연구 결과를, 때론 관찰 기록의 결과를 가지고 이들 생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장을 펼쳐도 개인의 경험이 묻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제3자적 연구 자세는 없다. 그가 모든 생명을 만나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자신이 한 번이라도 겪어 보고, 관찰하고, 알기 위해 애쓰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은 내용은 이곳에 쓰지 않았다. 마음이라는 알맹이 없이는 감히 생명을 언급하지 못하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생명이든 그 생명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행동, 친구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은 본문에 수록된 사진들 중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 장의 사진 안에는 그것을 찍기까지 그 생명과 작가가 함께한 수십 년 수천 시간이 담겨 있다. 자연은 함부로 다룰 대상이거나 즐길 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수많은 수식어 이전에 이 책을 펴내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자신 안에 이미 있던 자연과 생명에 대해 경외감과 존경심을 새로이 만나는 것. 그러니 이 책은 생명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에 공감하게 만드는 통로다.
따뜻한 공감으로 촘촘히 짜인 과학자의 냉철한 사유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라 일찍 잤다. 일찍 자니 또 일찍 일어난다. 이른 아침, 동서남북 어디로도 막힘이 없는 들녘에서 맞는 풍경과 정취는 특별했다. 바로 전날까지 지냈던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탁 트인 녹색의 싱싱한 들판, 알맞게 물기 머금은 흙의 냄새, 벼 잎마다 맺혀 있는 맑은 아침이슬, 낡은 짚 누리에서 퍼져 오는 잘 썩은 볏짚 냄새, 너무 진하지 않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의 풍경, 벌써 활짝 피어나 살며시 향기까지 퍼뜨리며 서 있는 연꽃 무리, 저수지 넘어 공손히 엎드려 절하는 모습의 정겨운 초가집 몇 채,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아침 짓는 연기, 초가집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며 천천히 솟아오르는 잘 익은 감빛의 아침 해…. 이 평온한 모습들은 그 시간 이후로 한 장의 그림으로 어우러져 나의 가슴에 온전히 자리하고 있다. 살고, 살아가고, 또 더러 살아지며 힘겨운 시간을 지날 때마다 스스로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꺼내 펼쳐 보는 그림이다.” -본문 208~209쪽
생명과학자이자 생태작가의 길을 걷는 김성호의 오늘을 만들어 낸 토양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시골 외가에서의 경험이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시작하면 바로 내려가서 개학 전날 돌아오곤 했다. 가까이는 집 안과 마당에서 태어나 자란 동물과 식물, 집 밖으로 나가면 넓게 펼쳐진 논과 밭, 산과 내, 담수습지와 해양습지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생명체가 그에게 지구라는 넓은 집을 함께 쓰는 존재였다. 그저 심심할 때 신기해서 구경하는 이질적인 종이 아니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벗이고, 정을 나누는 가족이며, 때론 자신과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 안에서 서로 다른 생김새로 태어나 함께 자라는 생명. 그 안에 그와 그 아닌 다른 모든 존재가 함께라는 것. 이것이 김성호라는 사람이 자연을 받아들이고 모든 생명을 존경과 경외의 마음으로 존중하는 태도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학자로서 생명을 다루는 그의 학문 태도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근원이고 울타리이며 판단의 준거가 된다. 무엇이 사람에게 이로운가가 아니라 어떻게 접근할 때 사람도 살고 생태계 전체가 상처 없이 순환의 고리를 이어 가며 공존할 수 있는가가 연구의 방향이 된다. 그러므로 그 어떤 연구보다 더욱 냉철하다. 인간이라는 생태계의 작은 일부가 연구의 방향키가 될 수 없기에, 어떤 것에도 기울지 않고 모든 생명체에 공평한 잣대를 사용하기에 그렇다.
“수많은 새가 어딘가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의 경우 10억 마리, 캐나다에서는 2500만 마리가 매년 희생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800만 마리 정도가 매년 충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 날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고 있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이 인간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75~76쪽
그가 야생조류를 바라보며 갖는 문제의식은,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2만 마리의 새가 유리창 등에 부딪혀 죽고 있음에도 그 사고가 당장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기에 그대로 두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다. 그는 조사했다.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을 막기 위해 취하는 조치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정말로 충돌을 막는 효과가 있는지. 결과는 절망스러웠고, 현실성 있는 충돌 방지를 위한 길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길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길을 만드는 마음이다. 길을 만드는 진정성이 제대로 된 길을 닦아 나가게 한다. 이 문제에서도 그가 남긴 한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죽음이라도 그 죽음이 인간으로 비롯하였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새의 죽음이 분명 새만의 죽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본문 84쪽)
삶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쌓여 단단한 생명과학서가 완성되다
만약 어린 시절 시골 외가에서 지냈던 기억만으로 김성호가 생명이라는 육중한 단어를 들고 왔다면 누구도 고개 돌려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기실 그의 삶은 온전히 생명과 함께였다.
“며칠 동안 새의 뒷모습만 쫓아다니다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가 나에게 오지 않으니 내가 새에게 다가서기로 한 것이다. 위장 천을 뒤집어쓰고 기어서 새에게 접근해 보았다. 효과가 없지는 않았으나 분명 효율은 떨어졌다. 또다시 방법을 찾았다. 내 몸을 감추고 기다리는 길을 택했다. 자연의 모습을 닮은 움막 하나를 짓는 것이었다. … 주변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모아 골격을 세운 뒤 갈대와 환삼덩굴 줄기를 덮어 움막을 완성했다. 새들이 움막 바로 앞까지 온다. 문제가 있다.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았더니 편하기는 한데 물 위에 떠 있는 새와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 … 마지막 길로 간다. 움막 안의 바닥을 판다. … 강의 수면 높이에 맞춰 바닥을 파내고 보니 얼음장 같은 물이 스며들어 옷은 금방 젖어 들고 우들우들 떨렸지만 견디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었다.” -본문 45쪽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못 견뎌 30분도 안 돼 밖으로 나왔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몸 시린 움막 안에 스민 마른 갈대와 환삼덩굴의 냄새가 향기로웠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것도 눈높이를 맞춰 야생의 새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엿보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슴 떨림을 느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그곳을 지키며 새들이 바로 코앞에서 날갯짓을 하고, 물을 박차며 창공으로 날아오르고, 어느 결에 다시 나타나 미끄러지듯 수면 위로 내려앉고, 서로 애무를 하고, 잠수 능력이 있는 새들은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 다음 물고기를 한 마리씩 물고 나오고, 누가 물고기를 잡으면 서로 빼앗으려 다툼이 벌어지고, 잠수를 할 수 없는 새들은 얕은 곳에서 꽁무니만 물 위로 내민 채로 물구나무를 서서 강바닥을 뒤져 조개 하나를 집어 올리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 모든 시간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조심조심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한 생명을 알기 위해 그 생명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그가 기울인 노력은 사랑이라는 단어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내 마음이 내킬 때, 내 상황이 허락할 때, 내가 편리한 방식으로 다른 존재를 알려는 일방통행의 관심. 동물을 인간이 관찰하기 쉽게 가두고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만들어 유지하고, 생태체험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동물축제의 동물을 함부로 만지고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이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이기적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존중이 먼저여야 하듯, 인간과 전혀 다른 생김새와 속성을 가진 뭇 생명에 다가가는 일에는 내 편의가 아닌 그 생명의 삶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을 김성호는 몸소 보여 준다. 내 몸이 시려도, 내 생체 리듬이 깨져 피곤해도, 때론 내 일상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생명을 만나는 일, 그의 한평생은 섬세함으로 채워진 생명 존중 그 자체다.
그가 온 마음과 몸을 다해 하루하루를 생명과 함께한 거룩한 기록이 바로 《생명을 보는 마음》이다. 어떤 이는 이 책을 보고 “생명윤리학 개론”이라 칭했고, 어떤 이는 “자연을 대하는 과학적인 태도의 근원을 절절히 보여 준다” 했으며, 어떤 이는 “김성호가 생명을 보는 마음은 그가 생물학을 하는 마음”이라 평했다. 어떻게 표현했든 무릇 학문의 기본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생물을 다루는 생물학, 그 학문의 요체를 알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학문의 면면을 확인하고 싶다면 다름 아닌 이 책을 보아야 한다.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전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향한 채찍질
“어느 결에 60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나의 삶은 자연에 깃들인 생명으로부터 멀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시골 외가에서 생명과 더불어 놀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생물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었기에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시간이 있었고,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가르치며 산 시간이 있었으며, 생명이 있는 것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다 그 끝에서는 나의 삶은 어떤지를 물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결국 오늘 하루와 지난 60년의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그 모든 하루의 소중한 기억을 함께 나누고자 썼습니다.” -여는 글
어느 곳을 펼쳐도 책은 우리를 잊었던 자연의 품으로 안내한다. 동시에 다른 것으로 여겼던 수많은 다양한 생명체를 똑같이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눈을 되찾게 한다. 그런데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평처럼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만 기대하면 큰 오산이다. 저자는 생명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분명한 지식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자신이 만나 온 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 뒤에는 생물다양성이 망가지고 멸종위기종이 늘어 가는 현재에 대한 경고가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커다란 구호 아래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 발전과 지구 지속이 동시에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놓치지 않는다. 죽어 가는 지역경제를 되살린 성공한 동물축제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생명을 죽이는 축제를 생명을 살리는 축제로 부활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동물 실험을 인정하면서도, 동물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함께 노력할 것을 권유한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사후 처리 살처분을 어쩔 수 없는 해결책으로 인정하기보다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살처분당하는 동물의 입장, 살처분을 담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현재의 살처분 방식을 최소화하는 예방적 해결책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론에만 그치지 않는다. 생태에 대한 교육 기능은 물론 동물에 대한 연구 기능과 종 보존 기능 어느 것 하나 수행하지 못하는 기존 동물원을 보며 슬퍼한 그는, 전주동물원 다울마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온기 없는 동물원을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동물원으로 거듭나도록 직접 나섰다. 원생동물을 직접 관찰하거나 학생들과 원생동물 관찰 실험을 하면서도, 관찰 뒤에 원생동물을 그들이 살던 곳으로 되돌려 주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애쓴다.
김성호가 생명을 대하는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생명의 경중을 인간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도 그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논하는 그의 목소리는 매섭다. 한낱 미물인 인간이 감히 위대한 생명을 논할 자격은 없지만, 생명을 향한 사랑을 노래할 자격이 있다면 작가 김성호가 아닐까 싶다. 생명이라는 다양한 음표가 과학이라는 악보 위에 펼쳐진 《생명을 보는 마음》의 노래에 오늘 귀 기울여 보기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