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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주인은 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로 이끄는 사고 나침반

비행청소년 14
저자

오승현 글, 안병현 그림

발행일

2017-06-30

면수

152*215

ISBN

296

가격

9788974744168 44190

가격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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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진짜 합리성은 내 이익이 아닌 우리의 이익,
당장의 이익이 아닌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비행청소년 11번 《내 얼굴이 어때서》를 통해 십 대에게 자신감을 일깨우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독립성과 정치의식을 갖추도록 독려한 오승현 저자가 합리성의 진짜 의미와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책을 출간했다. 비행청소년 14번 《생각의 주인은 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로 이끄는 사고 나침반》이 그것이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압력에 맞서 차별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주체성을 강조한 전편에 이어, 이 책은 생각이라는 내적 사고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 힘의 방향을 바로잡아 사회 전체의 합리성과 공정함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찾게 해 준다는 점에서 두 책은 십 대가 자존감과 주체성, 정치성과 사회성을 갖춘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하나의 세트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각각의 책이 갖는 완결성이 뛰어나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어느 것을 읽든 십 대의 내면을 깨뜨리고 새로운 생각을 여는 깨우침의 뿅망치가 될 것이다.



왕따, 인종차별은 왜 일어나는가
‘그럴 만하니까 왕따를 당했겠지.’ 따돌림을 당하는 누군가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반응하는 방식이다. 그 친구가 성격이 나빠서, 이기적이어서, 분위기 파악을 못해서, 잘난 체가 너무 심해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모두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이 학교든 학원이든 회사에서든 크고 작은 왕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럴 때 그 상황이 늘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고 다른 사람과 달리 잘못한 일이 커서였을까 되물었을 때,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태도를 피해자 유발론이라고 한다. 이것은 현상(결과)만 놓고 거꾸로 이유(원인)를 추리하는 ‘공정한 세상 오류’에 해당한다. 왕따 문제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힘이 약한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려는 심리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왜 집단적으로 힘없는 소수를 괴롭히는 것일까. 그것은 보통의 사람이 강자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약자나 소수자에게 대리 표출하는 수평 폭력에 기인한다. 강한 사람에게 당해 생긴 불만을 나보다 약한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과 행동이며, 정의롭지도 않다.
이런 불합리성이 낳은 왕따 문제는 인종차별 문제로 이어진다. 인종차별은 백인의 백인 아닌 인종에 대한 차별, 우리나라에서는 내국인의 외국인-백인계가 아닌 동남아계나 흑인계-에 대한 차별이다. 특히 경제력이 없는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내국인의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 인종차별은 생긴 것이 다르다는 가장 단순한 이유로 나와 다른, 혹은 우리와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멸시하는 태도다. 예컨대, 얼굴이 검으니 마음도 검어서 거짓말을 일삼을 것이고 범죄를 잘 일으킬 것이다라고 여기는 등 감정적 편견에서 나온 태도다.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호남 지역 출신 사람들을 비호남 지역 사람들이 ‘지역감정’이라는 용어로 치장하여 차별하는 것 또한 자국 내 인종차별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차별하는 사람들이 차별의 이유로 드는 것이 “전라도 사람은 배신을 잘해, 뒤통수를 잘 치고, 겉과 속이 달라”라는 속설이다.
이런 편견들로 인해 이루어지는 지역 차별 그리고 인종차별은 그 성격상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왕따, 즉 집단 따돌림과 유사하다. 현상이 비슷한 만큼 그것을 일으키는 내적 요인 또한 유사하다. 바로 선입견과 편견으로 상황을 비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진실을 왜곡해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게 되어 상처를 입히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약자로 따돌림과 멸시를 당한 사람은 그 상처를 또 다른 약자에게 더한 폭력으로 되갚는 상처의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왕따와 차별이 왜 근거 없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검증된 여러 연구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우리가 늘 합리적인 건 아니다
“딱 한 시간만 반값 세일!” 마트에서 우리의 발길을 멈추고 원래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않으려는 ‘합리적’ 소비를 자극하는 말이다. “딱”, “반값” 등의 말은 합리적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우리 뇌를 자극하는데, 이런 유혹에 현혹되어 구매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지금 사는 것이 광고처럼 돈을 버는 행위일까? “이 정도 혜택 누릴 수 있는 시간, 이제 1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쇼호스트의 채찍과도 같은 재촉에 서둘러 구매 버튼을 누르고서 도착한 상품을 포장도 뜯지 않고 버려두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 ‘벌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 돈 ‘버리러 가는’ 것과 같은 말임을 적어도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책은 합리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듯한 광고와 너도 나도 사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상황에 휩쓸려 구매하는 행위에 깔린 비합리성을 조목조목 분석한다. 소비자의 비합리적 소비 성향을 교묘히 악용하는 판매자의 판매 전략을 어떻게 피해 가서 진정 자유로운 소비 행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팁을 제공한다.
우리의 합리성을 방해하는 것은 한정 판매의 유혹만이 아니다. 6장에서는 언어의 유혹, 숫자의 유혹, 머릿속에서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정보를 근거로 판단하는 가용성 편향, 기준점 오류, 필요 이상의 정보량이 갖는 함정, 향기?맛?소리?접촉 등 감각을 유혹하는 요소, 공복과 포만처럼 머리를 지배하는 몸 상태 등 우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요소들로 인해 우리가 믿고 있는 합리적 의사선택이 얼마나 허위인지 깨우친다. 속이는 세상에서 속지 않고 합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위험 요소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늘 인식하고서 언어의 이면, 감각의 속임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개인적 합리성을 넘어 사회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길
휩쓸리지 않고 규모 있는 소비를 하고, 감각을 속여 소비를 부추기는 유혹들에 대항하여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합리성. 합리성이 필요한 영역은 이렇게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것에서만 그칠까? 책은 진짜 합리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한다. 사막의 파수꾼 미어캣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 그중 한 마리가 돌아가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큰 소리로 신호를 보내 위험을 알린다. 신호를 받은 미어캣 무리는 위험을 피할 수 있지만, 신호를 보낸 파수꾼 역할의 한 마리 미어캣은 바로 그 큰 소리 때문에 위험에 노출된다. 위험에 노출되는 미어캣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이로운 ‘합리적’ 결정이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지만, 바로 그 개별 미어캣의 비합리적 행동으로 인해 미어캣 무리 전체의 생존은 유지된다. 여기에서 집단의 합리성과 개인의 합리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동물 세계를 보면 이렇게 집단의 영속을 위해 개별 개체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는 사례가 많다.
인간이 수익을 위해 작물 재배를 하는 경우, 단기적 수확량 확보를 위해 단일 작물을 심는 경우가 이전부터 지금까지 많지만 그런 단일 작물 생산은 생태계 취약으로 이어져 작물이 병충해에 이기는 힘을 잃고 순식간에 모두 죽으며, 그걸 먹고사는 인간의 대량 아사로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재앙의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개인의 합리성이 모여 사회의 합리성을 이룰 것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의 이익 추구가 크게는 사회 이익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책은 이를 지적하며 인간 세계는 물론 생태계 전체를 통틀어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단초를 제공한다.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공정한 세상을 찾아

그런데 개인이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사회가 먼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며 좋은 가정을 꾸려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라는 어른들과 세상의 확신 있는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기업에 가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질문 이전에, 과연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결과에 도달한다는 명제가 옳은지 틀린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은 제각기 다르다. 누구는 뛰어난 머리를, 누구는 재력 있는 부모를, 누구는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떤 이는 신체와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고, 또 어떤 이는 돈도 백도 능력도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 이렇게 출발선이 모두 다른 이들을 같은 줄에 세워 동일한 과녁을 향해 달리라고 한다면 이는 공정한가? 동일한 이율이어도 큰돈이 굴릴 수 있는 이자의 절대치와 작은 돈이 만들어 낸 이자의 절대치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가진 사람의 지위와 재산은 더 큰 이익으로 성장하고 되물림되며, 나쁜 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되물림되는 것이다. 개별 조건의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동일한 평가 방식은 그 자체로 공정하지 못하며, 공정하지 못한 경기는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끝없이 부풀리고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논거로 든 수많은 연구가 증명하듯 인간은 동식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기심보다 이타심을 좋아하고, 다수의 이타심으로 세상은 유지된다. 그러나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모두를 이끌 때, 그 합리적 개인으로 뭉쳐진 사회는 온전히 유지되기 힘들다. 경쟁을 통해 사회의 발전을 이룩하려 하지만, 경쟁이 이룩한 발전의 실체는 소수와 약자의 아픔과 상처를 무참히 밟고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그 안에는 공정함도 정의로움도 사회의 지속가능한 힘도 생략되어 있다. 합리성을 말하는 이 책에서 공정함을 논한 이유다.
경쟁을 부추기는 지금의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현재의 방식에 순응하지 않고 이 세상이 제대로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십 대의 합리적 생각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고 더 좋은 대학에 진입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더 좋은 점수를 강요하는 세상이 과연 바람직한지, 불공정한 세상을 바로잡는 길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십 대가 합리적 생각이 무엇인지 그 진실을 탐구하면서 타인과 함께하는 나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생각의 주인이 되는 길, 이 책 《생각의 주인은 나》가 현명한 길잡이로서 역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