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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떠나는 거야 크게보기

그냥 떠나는 거야

풀빛 청소년 문학 1
저자

구드룬 파우제방

발행일

2004-11-15

면수

국판변형

ISBN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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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474-969-6 4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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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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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로드무비 같은 진솔한 성장소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이름은 요나스 클라인뮐러. 올해 열여덟 살이다. 부모님은 이비인후과 의사이고(이 마을에서 꽤 알려져 있고, 집도 꽤 넉넉한 편이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화학만 빼면 성적이 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요나스는 요즘 며칠 전부터 견딜 수 없다.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 그리고 결국 그는 아비투어(우리나라 수능시험과 비슷한 제도)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떠나기로 한다.

전 마치 물음표들에만 매달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 대고 소리치는데 메아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벽들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것 같습니다. 성년은 아직 제게 맞지 않습니다. 전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며 몹시 외롭습니다. …… 부모들의 사회는 문제들을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자기들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문제라고 하면서요. 분노가 입니다. 학교를 보자면 할아버지 시대부터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짓거리들이 싫습니다! 싫어요, 싫다고요! -<본문 중에서>

요나스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곳은 바로 산티아고. 이제부터 요나스는 모든 것을 자신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가 떠난 산티아고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해 보이는 판아메리카나를 품고 있는 칠레다. 하지만 이곳은 5월부터 9월에 겨울이 시작된다. 날씨는 아무 때나 흐렸다 개었고, 여행하는 계절이 아니라서 제대로 갖춰져 있는 식당이나 잠잘 곳도 마땅치 않다.
문고리가 없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그의 배 위에서 새끼를 낳으려던 고양이며, 그에게 지프를 빌려주며 한없이 그를 믿어주었던 카센터 주인,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째 달리다가 병이 난 요나스를 말없이 치료해 주었던 케욘의 할머니, 엘 아마리요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온천과 그의 첫경험 상대 마르타, 지프를 고치려고 들어간 차 수리 공장에서 만난 천사 같은 난쟁이 아이 등등.
요나스는 무수한, 무한한 우연의 사슬처럼 엮어진 사람들과 자연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그 시간 속에서 자신과 세상에 대해 때론 거리를 좁히며, 때론 거리를 넓히며 그렇게 계속 그는 달린다.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그 무엇- 현실의 요나스와 그의 사람들

<그냥 떠나는 거야>의 전체적 흐름은 칠레의 판아메리카나를 타고 처음에는 남쪽으로, 다음에는 북쪽으로 질주하는 한 소년의 시선과 이동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 요나스의 독백과 생각들을 통해 그의 고민을 하나씩 수면 위로 띄워낸다.
늘 가식과 형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비인후과 의사인 자신의 부모, 부모에 의해 조종돼 자신의 의사라곤 전혀 갖지 못하는 불쌍한 친구 팀, 집안에선 내놓은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인 뤼디거 삼촌(삼촌은 게이다.), 그리고 평생을 불쌍한 사람들과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헬라 고모 등.
요나스는 여행 도중 그가 떠나온 세계를 거리를 두고 객관적?구체적으로 되짚어봄으로써 그 끈의 의미를 냉정히 바라보게 된다. 이는 이 여행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집에서는 곧 자정이 될 것이다. 그 사이에 그들은 소파 앞 탁자 위에서 쪽지를 발견하고 또 읽었을 것이다. 클라인뮐러 씨네 집에서 일어났을 흥분을 상상하자 기분이 좀 꿀꿀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진정으로. 그들은 내게 아무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내가 태어나길 원했었다. 아버지는 나를 낳았고, 어머니는 나를 수태하고 출산했다. 둘 다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를 환영했다. 나는 그들 유전자들의 조합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들은 나의 신이었다.
그러나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질식했을 거다. 어쩌면 그들도 이번 일에서 뭔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이 탁한 공기의 공범임을 깨달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이번 사건에서 성장하고, 서로 가까이 다가서고, 자신들의 견해를 의심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다메 아구아’- 나에게 물을 주세요!

이 작품은 이미 우리에게 <핵전쟁 뒤의 최후의 아이들> <구름> <나무 위의 아이들>과 같이 평화와 환경,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 등 뚜렷한 주제의식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아 온 구드룬 파우제방의 청소년 소설이다. 이 작품은 특히 오랫동안 남아메리카에서 생활한 작가의 경험으로 남아메리카의 풍광 및 사람들, 도시의 사실적이고도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그렇다면 파우제방은 과연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요나스는 결국 그가 원하던 가장 고요하고 숨통이 트이는 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 최대의 난관에 부딪힌다. 이제 선택은 그의 몫이다. ‘다메 아구아’, 스페인어로 물을 달라는 뜻인 그 말은 이제 그에겐 현실이며 그가 찾으려는 답이다.
어느 날 아무도 이해 못하는 길을 떠났고, 아무도 이해 못하는 길로 들어섰던 열여덟 살 요나스에겐 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자신이 걸어온 시간에,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갈증,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선 그의 말대로 포기가 아닌 휴식이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그 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
그러기에 요나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급할 때는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계속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무릎을 땅바닥에서 일으키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할 거다, 하고 말 거다! 나는 무릎을 위로 들어올린다. 나는 해낸다. 물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이 똥 같은 몸, 땅에 들러붙어 있는 이 비참한 무게, 이 빌어먹을 살과 뼈의 덩어리,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일어섰다. 나는 다시 일어섰다. 보라색 점인 나. 이봐요, 도로 위에 있는 분들! 나를 봐요! 이봐요, 나를 봐 줘요! 나를 데려가 줘요!
그럼요, 뢰슬러 선생님. 난 포기하지 않아요. -<본문 중에서>

요즘 우리 사회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앞을 보며 달려가고 있다. 자신의 길을 빨리 찾아 달려가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아예 길 자체를 거부하려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이분법적인 사고로 대하고, 그런 틀로 그들을 끼워 맞추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낙오자’, ‘패배자’,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친구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쉽게 결론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어른들은 그들에게 먼저 제대로 된 ‘삶의 물’을 주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